The chance of meeting you and me that you are my soulmate is 1 in 65 hundred million..
I'm waiting for you_
When you willing to do something the Luck is going to follow you.
어딘가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것을 잠시 잊었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손가락에 새겨진 지문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도의 모든 그림과 글자들을 지우고 그물처럼 얽힌 길만 남겨놓으면 그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PROLOGUE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일상에 대고 리모컨을 눌러 문득 다른 채널로 옮기듯이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떠나는 걸 좋아했다. 그 언가가 조금은 익숙한 곳이든, 아예 낯선 곳이든 상관없이 가끔씩은 머리 위 하늘을 바꿔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낯선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사연들을 엿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다른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많을 거라고 애써 자위한 뒤, 일단 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서울, 일상의 도시 1] 마치 표지판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고속도로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왔는지 전혀 모르는 채 모두들 그저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옥죄는 고통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유토피아의 정반대에 위치한 세상 같았다. 주말에 티브이를 시청할 때만 제외하곤 모두들 웃지 않았다.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More is not Less _Robert Venturi 인생은 소심한 도박 다들 대범한 척 하는 것일 뿐
욕망 (명)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유럽의 옛건물들 창이 좁고 긴 것은 벽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창이 좁고 긴 것은 그냥 그런 모양의 껍데기를 붙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결정이 그러하듯, 모니터 앞에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곳이다. 며칠도 채 머물지 않을 거면서 아파트 동호수 추첨을 받는 사람마냥 좋은 층에 전망이 괜찮은 곳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호텔방의 침대 위에는 사랑과 증오가 어려 있었다. 거기에 고독을 더하며 몸을 던져 누웠다.
호텔방은 궁극적으로 외롭다. 잠시 머묾이란 그런 것이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릿한 아픔을 남긴 짧은 순간의 인연처럼 행복도 고통도 영원하지 않았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그 욕망은 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넘어선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기대치를 줄이고 실력을 늘리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기대는 쉽사리 접을 수 없고, 실력은 늘리기가 더더욱 힘들다.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혼자서 바로크 양식의 껍질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실내를 쾌적하게 하기 위한 거대한 기계조직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홀로 버려진 아웃사이더처럼 시간을 보냈다.
환상은 대게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스페인어로 비옥한 땅이라는 뜻의 라스베이거스
사막을 달려 폐허를 만났다. 황폐함 그 자체가 목적인 장소. 인생의 지루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가게의 여주인
노골적인 상징은 목적에 집착한다. 상징은 인간을 위한다는 근대 건축이 정작 잃고 있었던 인간성의 영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즉흥적이고 직설적인 감성들이다.
상징이 공간을 지배한다. 건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간 간의 관계라는 것은 형태보다는 상징에 의하여 맺어지기 때문에, 풍경 속에서의 건축은 형태보다는 상징으로 장소를 규정한다. 정면의 거대한 간판은 자극적인 유희가 되고, 뒤쪽의 건물은 얌전한 필수품이 된다.
몸집을 커다랗게 불린 라스베이거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일상을 잊게 만드는 초현실성을 앞세우며 도도한 자세를 취한다. 비굴함을 익숙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잠시 떠나온 신분의 나로서는 이 도시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도시.
그곳은 낯설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천국처럼 낯설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이를 수 없는 위치에 대해 욕심을 내지만, 다행히도 한계를 넘지 않는 방법을 안다. 본능적으로 대부분의 이들이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가끔 여행을 떠나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산다.
말투는 어눌한 데다가 뇌의 용량 부족으로 말을 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종종 까먹고, 소심해서 억울한 일이나 실수한 일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자세가 좋지 못해 거북이 목을 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일이 다반사고, 입이 싸고, 코를 골고, 피부가 너무 허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과잉상태인 자의식 하나를 믿고 꿋꿋이 버텨가며 살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건 나의 장점 중 하나인 나의 약점을 쉽게 망각하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일 테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던 천국의 모습은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일탈의 도시 찬디가르] Architecture is the masterly, correct, and magnificent play of form in light._Le Corbusier
일탈(명)1.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2. <사회>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잃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애가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 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뭐든 명확한 게 좋을 수 있다.
무의식은 나를 강하게 옥죄었다. 아마 그것은 내 욕망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다.
오래된 것은 쉽게 무너져선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란 있을 거라고 속여가면서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성을 쌓는다. 전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
일탈은 일상의 질서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를 굴레라고 치자면 나는 발목에 족쇄를 한 다스 정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줄곧 일탈을 꿈꿨나보다.
세상은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나름대로 편하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더 느긋할 수 있는지가 인생의 피곤함을 결정한다.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
"인연은 문득 오는 거야." 인연을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일탈은 복제되지 않아야 한다.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순간 일탈만이 줄 수 있는 그 미묘한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그건 마치 동일한 내용으로 반 아이들의 절반에게 수여하는 상장하는 것이다.
사고도 기왕이면 제대로 쳐야 한다.
평생 한 가지를 이렇게 이룰 수 있다면 진정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러기엔 욕심이 너무 많다.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지 모르는 덧없는 판타지에 나는 아직 매몰되어 있었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도시 그 뒤에서 허덕이는 힘을 잃어버린 대국의 가쁜 호흡 나는 차라리 이곳에 내 잃어버린 기억들을 묻는다.
누군가 내게 물었었다. "꿈이 뭔가요?"
요즘은 꿈과 환상과 목표가 종종 뒤섞인다.
조금 모자란 듯 아쉬워야 제맛인 것이다.
원래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무수한 비판들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의해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그건 변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의 일탈은 경이로웠다.
짧은 여행이 해결해주는 건 많지 않다. 추억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일상의 힘이 너무 강하기에 곧 묻혀버린다. 여행 중의 단상들은 마치 지난밤 꾸었던 두 번째 꿈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흩뿌려지게 된다.
[위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There is nothing finer than Nevsky Prospect, not in St Petersburg at any rate; for in St Petersburg it is everything. And indeed, is there anything more gay, more brilliant, more resplendent than this beautiful street of our capital?"_Nikolai Gogol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세요. 우와, 그곳을 좋아할 거예요."
위안(명)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나는 세상의 잘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체념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수많은 조언자들이 위로를 하더라도 결국 그 '크기'가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만들고는 한다. 마음이란 그리 쉽게 설득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과대 포장된 평가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걱정하는 모임에 참여하려고 했다. 다만 세상에는 그런 모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세상의 소식들을 접하면서 위안을 삼고는 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겠구나." 나는 적어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맞은 마무리 투수는 아닌 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의 종류만 다를 뿐 나를 비롯한 또래들의 삶은 비슷한 편이었다. 기쁜 순간이 잠시 있고 슬픈 순간은 가끔 있고 우울한 순간은 자주 있고 힘든 순간은, 순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다른 언어가 필요할 것 같은, 가령 '날'이나 '시기'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위로라는 게 그리 필요가 없었는데 위로를 받는다고 상황이 괜찮아질 리가 전혀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사실 위로를 한답시고 말을 꺼내는 사람이 실은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던 경ㅇ가 많았던 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경험한 적 없는 경ㄹ의 페테르부르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인생의 진부한 교훈들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으니깐." 조바심이 밀려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지나는 행인에게 길을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같은 도시 안이었기 때문에 조금 다리가 아프게 발품을 팔면 결국 호텔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겨우 방에 이르게 되었을 때 한숨을 크게 쉬면 되는 일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프스키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란 정열적인 사랑고백처럼 잠시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속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모른 척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기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 간다.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사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다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내가 겁이 늘었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
같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을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적잖이 쓰라렸고, 오히려 난 과거에 비해 작은 상처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교훈들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과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남루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줄곧 새로운 교훈들을 찾았다. 물론 잠시 감동하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교훈을 머리에만 새긴 채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함께 나는 잠시 내가 좋아하는 도시들로 여행을 떠났다. 잊지 못할 스승처럼,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은인처럼, 내겐 고마운 도시들이 존재했다.
지도에 그려진 선들을 직접 밟고 다니며 궁극적으로 찾고 싶었던 건 작은 용기였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거라고, 혹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틀리면 또 어떠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상처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사랑하게 된 사람의 오랜 습관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의 모습들이 좋았다.
어제 출근길에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잠자리 들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책, 그만큼 읽기도 쉽고 편하고, 재미있다.
무슨 책이 이렇게 가볍냐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만, 그 안에 잔잔히 남겨지는 여운이 있다. 이책, 즐겁고 유쾌하다. 병신같지만 멋지게, 아버지 샘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남들 의식하며 사는거 그거 샘의 표현을 빌리자면 좆까라그래! 다! (응?)
중요한건 나_ 란 말이다.
옮긴이는 다름아닌 호란_이란 여자다. 뮤지션으로 더 익숙한 그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f*ck을 어떻게 해석해야 더 맛깔날까 고민하던 그녀,
공인이라 어디서 입밖으로 욕도 못해봤을 그녀였다고 후기를 밝히는 그녀의 한줄에서
그녀의 살가운 노력이 돗보인다.
좆까! vs 씨발!
그녀는 '좆까'를 선택했다!
멋지다!
좆까!
저자의 아버지의 막말 트윗이 완전 인기여서 나도 팔로잉해버렸다. 역시 욕찌거리 판인 듯 하지만 해학이 있고 깊이가 있다. 궁금한 그대를 위해
[인생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하나]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한,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은 평생을 함께하는 그림자이자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외롭다. 이따금 명치를 콕콕 찌르는 익숙한 느낌. 그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아프다. 외로움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이고, 다른 하나는 솔리튜드solitude이다. 어느 길을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론리니스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솔리튜드이다."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론리니스'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솔리튜드'로 분류했다. 외로움은 함께 있는 것으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홀로'라는 선택을 통해 더 좋은 것, 솔리튜드로 도약할 수 있다. 솔리튜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리튜드는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솔리튜드에 이르는 길이 사실상 시작된다. 외로움은 그래서 '모든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친구의 장례식] 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건 언제나 '팩트'였다. 한번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방에 가만히 앉아 자신과 단둘이 마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 프란츠 카프카
[왜 나만 악역을 맡아야 할까] 왜 남자들은 좋은 역할만 도맡고, 나쁜 역할은 여자에게 떠념기려고 하는 것일까.
[마음을 잃다] 바쁨의 확인으로 인사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최초다.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왜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한 것일까. 낯선 감정의 이름은 분명 '외로움' 이었다. "현대인을 대표하는 특성, 바쁠 망" 마음이 사라지고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잃다. 마음의 죽음...... 사과는 남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는 생각해냈다. 지금 이렇게 외로운 것은 남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살지 못해서.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없기 때문에. 하루를 바삐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날 분량만큼의 희망과 포부가 손가락 사이로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날 분량만큼의 희망가 포부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 나가듯 허무하게 사라졌음을 발견하곤 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래서 마음이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신데렐라도 죽을 만큼 외로웠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나는 외로움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모두들, 무엇인가를 일부가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비로소 안심하는 비겁한 자기 위한의 집합체 같은.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난 뒤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동화다. 현실의 신데렐라는 왕자의 근처에만 가도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 최고의 나는, 무리 속에서의 비교와 경쟁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발견된다는 각성.
[인터넷 스타의 사생활] 인터넷 스타들이 기를 쓰고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이유는 그들 역시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자형'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뜻으로, 성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팔자좋은 사람들에게 곧잘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남들 보기에는 완벽한 삶을 사는데도 정작 본인은 힘들어하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좋은 팔자마저 공짜는 아니다. '결핍요소'의 이름은 '자기 기준의 결여'다. '자형'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자기 기준이 없으며, 남들의 평가에 목을 맨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자신감이란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생기는 게 아닌가 해. 그러니까 자신감은 곧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삶의 균형인지도 몰라." 사람들은 남의 삶을 사느라 너무 바쁘고 자기 삶을 못 살아 외롭다. 부모의 강요나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혹은 자기를 몰라 남의 삶을 흉내 내며 아둥바둥 살아간다.
[봉우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꿈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한다. 밑에서 꿈꾸는 정상이란, 행복과 유의어 또는 동의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높은 곳에 서면 행복을 누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적 출세와 등산의 두번째 공통점을 흔히 간과한다. 그것은'곧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산 또한 사람을 외롭게 한다. 웬만해선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홀로움' '홀로'와 '즐거움'을 합친 말. '홀로움'을 통해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알았다. 그동안 성장하는 데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성숙해야 한다는 작은 울림이었다. 내면의 성숙 없이는, 아무리 남의 인정을 받는다 해도 그건 텅 빈 성공에 불과하다.
[B급 만세!]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렇지만 이제 아빠는 A급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B급이지만(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B급인 것에 만족하고 B급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급이야말로 재미있는 위치란다. B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으로 튀어오를 수 있지. B급이 쉬운 위치는 아니란다. 방심하면 곧바로 C급이나 D급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 B급에 붙어 있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단다. 아빠는 B급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A급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도, B급에겐 얼마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어. A급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B급에겐 성실한 자세와 협동정신이 있다.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거란다. 아빠는 '고마워할 수 있다'는 점을, A급 아닌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아빠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들아, 언제나 실패라는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성공보다는 무수히 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거든. 매 순간 그런 실패를 맞이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때, 자아는 호두 껍데기처럼 단단해지는 거다. 그게 외로움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A급들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존경하기 바란다. A급은 운명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언제나 선두에서 더 많은 맞바람을 맞아가며 길을 터주지. 미답의 경지를 먼저 밟아, 뒤따르는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뒤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명이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A급들 덕분인 셈이지.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 채울 게 있어야 기대가 싹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도 나오는 것이지. 과하면 넘치고, 더한 욕심을 부리고 오만해진단다. 결국에는 추하고 위험해진단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A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B급에 머물기 바란다. B급의 겸손함으로 A급 수준의 생각을 해야, 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만족과 감사, 행복을 균형있게 누릴 수 있으니까.
[하루짜리 가출에서 배운 것] '셴파', 가려운 곳을 긁는 고통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급하게 서두르니까 가려움이 고통의 악순환으로 변하게 되는 걸세." 외로움은 기다리는 여유를 갖지 못할 때 오래 긁는 고통처럼 다가온다. 긁을수록 조급해진다. 마음 한 구석이 가려울 때마다 긁지 않고 기다려본다.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 세상에는 납득할 수 없는 모순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한 채, 외형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플러스형이고,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마이너스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먼저이며, 우위에 있더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원한 마이너스도, 영원한 플러스도 없다. 인생은 어떤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피하고만 싶은 선배들을 분석해보면, 하나같이 '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출세하는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는 나중에라동 어떻게든 입증되니까. 마이너스형 인간은 '되고 싶은 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내가 만족하는 내 방식의 삶'이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다. '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따라하기'를 동반한다. 외형에 집착하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되고 싶은 것'을 위한 마지못한 준비의 결과가 '스펙'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하고 싶은 것'은 대개 '내 방식' 대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외형보다 내 마음을 따르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즐거운 준비의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인 경우가 많다.
[넘어지려는 쪽으로 균형잡기] 정말 신기하지 않나. 위험해 보이는 쪽을 선택해 오히려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외롭고 힘이 들 때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아예 그쪽 방향으로 더 들어가보는 것이 어떨까. 자전거가 쏠리는 쪽으로 핸들을 틀어 균형을 바로잡는 것처럼 말이다. 비틀비틀 페달을 밟으면서 외로움과 함께 달리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인지도 모른다.
[4분의 1의 법칙] 처음 4분의 1을 잘 버티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는 것이 4분의 1의 법칙이다. 나 혼자 달리고 있다는 즐거움, 그 자체가 이미 솔리튜드다. 유연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일이 많지 않다.
난 결코 외롭지 않아. 고독이 함께 있으니까.-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나의 고독 Ma Solitude>중에서
[고무줄 자와 강철 자] 어쩌면 나도 엉터리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까 미친 듯이 좋아해서 빠져들었던 일이란 게 없었다. 무엇이든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좋은게 무엇일까. 좋은 건 언제나 유예, 그러니까 뒤로 미뤄놓는 훈련을 받아왔다. 지금 좋다는 건, 어쩐지 불안한 것이니까.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개의 자'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첫번째 자는 '강철자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상대르르 잰다. 가차 없다. 두번째 자는 '고무줄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자신을 잰다. 재량껏.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쩔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노의 8할은 과거의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나머지 2할 역시 지금의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무엇인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지나간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겉으로 아무리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해버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걷는다, 솔리튜드] 걸을 때는 대뇌패질의 인지 영역 회로가 긴장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두뇌가 이완되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상태, 즉 텅 빈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유 있는 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는 그런 경이로움을 만날 수 없다. 혼자가 되는 것은 '나'를 만나는 여행의 출발점인 것이다. 혼자가 되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혼자 가야 하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뭔가를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그는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답이 달라진다면, 인생은 나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돌아가면 된다. 그게 아니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보면 되고. 잠깐의 실수나 손해는 나를 찾아가는 길고 긴 평생의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뒤로 돌아서, 걷는다. 솔리튜드.
[홈리스 가족] 하지만 슬퍼진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집 안에서 얼굴 맞대는 게 불편해서 자동차를 몰고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라도 서로의 눈길을 피해야 한다면, 왜 사랑을 하고 가족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어도 외로울 뿐이라면,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외로움의 시스템] 어쩌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국민들인지도 모른다. 정교한 '외로움의 시스템'은 경쟁과 공포를 동력 삼아 돌아간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아니면 되는', 자기밖에 모르는 영혼들이 벌이는 무한 서바이벌 게임. 서바이벌 게임이 외로움의 시스템을 악순환과 동시에 증폭시킨다.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마음은 어차피 남에게 보이지 않으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마음을 방치할수록 자신의 가치와 존엄은 훼손당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결국엔 스스로를 팽개치게 된다. 잘나가는 남들만 보면서. 나는 한참 힘들던 시기에, 차라리 더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업슨 곳으로 혼자 떠났고, 그곳에서 한층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외로움 속으로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남들은 다'라고 할만한 '남들'마저 없다는 것을. 외로움이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말은, 내가 겪어보니, 진실이었다.
[고상함을 맡아주세요] 수준이 낮다고 가치까지 낮은 것은 아닙니다. 그 고상함으로 평범함을 소외시키지는 말아주세요. 관점의 차이를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평범한 사람들은 소외당하거나 차별당한 자신을 느낄 때 극심한 외로움에 빠져든답니다.
[나를 키워낸 고독]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내게는 눈물겨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생각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솔리튜드 클럽] 사람의 불행 가운데 절반은 스스로와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유익해야 발전한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다가서면 '안전거리'가 위협당하기 시작한다. 관계의 건전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의존하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상대에 대한 집착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것이 도를 넘으면 상대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구속하려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인생 선배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예의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거리'를 지키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 가족이다. 솔리튜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을 끊고, 지나친 접근을 막아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품위를 지켜 조용하게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하나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당하지 않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의 솔리튜드를 지켜내기 위해 안전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월든 호수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것일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가, 이젠 알 것 같았다. 뭐가 진짜 문제였는지. 희미한 두려움일 때는 피하고만 싶었는데, 뚜렷이 드러난 실체를 보니 공연한 걱정에 불과했다. 똑똑하지만, 현명하지는 못해서. 지금 마음에 문제가 있다면, 소로우의 말처럼 '우리가 쫓기듯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이 물을 만나 큰 물을 이루는 것처럼, 사랑은 자연스럽게 만나 그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안전거리] 마음속 고통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가 시작된다. 외로움은 대개 '자기억압'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요.
[솔리튜드 클럽] 많은 사람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끔찍한 정신적 고통이다. 하지만 외로움은 관계를 통해 더욱 깊어질 때가 많다. 사람들 사이에 쉼표가 없어 더욱 외롭다. 남들만 보느라 자신을 보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피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자아가 방치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내면을 만나는 훈련을 통해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서서히 진화할 수 있다. 마음의 길, 이른바 '소울 로드soul roal'다. 첫 단계는 '부정'이다. 거절 또는 거부를 당하거나 소외되어 좌절한다. 현실을 부정하며 분노와 원망에 빠진다.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과 함께, 누군가가 깜짝 나타나 구원해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 두번째 단계는 '수용'이다.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회피하고 은둔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극심한 소외감과 무기력에 빠진다. 론리니스 안에 머물며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자기부정에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가 비로소 '솔리튜드'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자각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괴로움과 외로움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아픔을 통해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먼저 행복해야 그 행복을 남과 나눌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주관적 관점과 객관성을 통합해 보다 큰 자신으로 도약한다. 작은 슬픔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말하지만, 커다란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넘어가는 과정은 '나만의 성'을 쌓는 것과 유사하다. 굳건하게 '나만의 성'을 쌓는 사람만이 '존재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괴테
[솔리튜드 훈련]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고 좋아해주는 이유. 공감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내보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자신감 있게 보이고, '참견쟁이'로 불릴 정도로 친구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힘의 근원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고상한 척하지도 않고 강한 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물처럼 흐르고 다른 사람들과 섞일 뿐이었다. "외로움은 변화의 용광로일 가능성이 높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길이 갈라질 테니까. 변화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변화가 필요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 자질이기도 하다." "고독한 사람을 내버려둬라. 그 사람은 당신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이다."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평화를 즐기다 보면, 허공에 떠오른 투명한 표지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표지판의 이름이 '지혜'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지혜란 자신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기도 하다.
[고독의 공유]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를 누리는 데는 핸들 반 바퀴 돌릴 정도의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장관에는 애초에 꾸밈이란 것이 없다. 말없이도 항상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상대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관찰, 위로란 바로 그런 것이다." "힘들 때 진심으로 위로해줄 단 한 사람"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서양 명문 학교들이 기숙사 시스템인 이유를 아는가. 정답은 '부모와 떼어놓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부모와 멀어질수록 스스로와 가까우진다는 진리를 말이다.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남의 기대에 맞춰 살지 말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게 첫번째 불행이고, 엄마를 탓하며 미워하게 되면 그게 두번째 불행이다. 세상에는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다. 때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랑은 멀어질수록 깊어진다.
[솔리튜드의 여왕] 그녀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남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특히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쪽 팔려도 안 죽는다. 그녀는 예술 애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감상이란 본질적으로는 혼자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혼자서도 잘 떠나는 사람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솔리튜드의 방식이다. 나 홀로 여행은 매 순간을 소중하게 자기 안에 담는다. 일행과 함께라면 말 몇 마디로 정리하고 잊힐 감동이, 나 홀로 여행에선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잊히지 않는다. 망각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향이 더욱진해지며 좋은 것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추억이며, 콘텐츠다. 또 다른 측면에서 혼자만의 여행은 많이 채우고 포만감을 느끼며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다. 그 반대다. 비우고 작아져서 돌아오는 여행이다. 혼자 떠난 사람들은 여행 과정 내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나 아닌 것들을 비우고 나만 남겨 홀쭉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을 두 글자로 줄이면 '감동'이다. 감동은 곧 변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마음이 클까? 지구가 클까?" "면적은 지구가 넓지만, 사람 속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까 전체적으로는 마음이 더 크겠지." "세계 곳곳의 오지까지 돌아본 사람도 자기 마음의 구석구석을 다녀본 사람만큼 성장할 수는 없거든. 그러니까 마음이 더 클 거야." 그녀는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수많은 가능성. 그래서 우리는 질투하거나 억울해하면서 '뭔지 모르지만 해야 할 것'을 충혈된 눈으로 찾는다. 그것이라도 하고 있으면, 혹시라도 불안을 잠깐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토익 공부든, 공무원 시험이든, 자격증 시험이든, 하여튼 그게 무엇이든. "왜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해보면 안 돼? 뭘 하는 건 그러면서 생각해도 늦지않잖아" 단순함은 자기 생각을 공격하는 '자책 세포'로부터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힘이다. 그런 힘은 솔리튜드의 시간을 통해 단련된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페르소나' "그리스 고대극 배우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하는 데요." 인생에서 '내가 누군 줄 알아?'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자꾸 남에게 던지면 속물이 된다. 페르소나를 나의 본질로 착각하는 것이니까. 반대로 스스로에게 던질수록 자기 본연에 가까워진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좋아하는 연예인은 금방 열손가락 이상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잇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내 안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내세우면서도 외로운 것이다. '자기 의미 찾기'는 일종의 투쟁입니다. 자기 의미를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내가 누군 줄 알아?' 하고 말이다. 답은 그런 물음을 통해 나온다. 세상과 혼자 맞서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자신의 본질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주위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적어도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계속 바뀌며 진화를 거듭한다. 바뀌는 자신이 더 좋게 느껴진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평생에 걸쳐 다듬어갈 뿐이다. "수시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많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불러들이려고요...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능력은 공적인 자리를 떠났을 때, 즉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혼자의 시간은 정리와 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나'는 세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는 '내가 이미 만난 나', 두번째는 '곁에 있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나', 마지막으로 '만날가봐 두려워서 꼭꼭 숨겨놓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성장해서 성숙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다.
[누군가를 외롭게 했던 죄]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면 같이 있는 사람, 즉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란 원래 외로운 거래" 자기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 그게 바로 자기 복을 차내는 것이었다. 호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한도 없이 요구만 하다가 끝내는 그들이 질려서 도망치게 하는 것. 지금 외로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했기 때문이다.
[Let it be] 결혼은 사랑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 자기 문제는 본질적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현명하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다정하고도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요. 상대를 바꾸거나 장악하려 들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을 저질러도 스스로 인식하고 개선할 때까지 기다려줘요. 사랑은 하나가 아닌 둘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해요. 그를 그답게 내버려두세요. 그 사람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것이죠. 인정과 수용은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르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더라도 그냥 두고 지켜보세요. 그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솔리튜드 말이에요. '나를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출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내 한계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은 믿고 내버려둘수록 더욱 풍요로워진다.
[1등이라는 멋진 뿔과 행복이라는 날카로운 이빨] '각자무치' 뿔이 멋진 동물에겐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 상당수의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생이 주는 가장 잔혹한 형벌은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완전히 막아놓는다는 점이다.
[결혼하면, 우리 집 가훈은] 메두사의 은유는 현대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교만에 빠져 남을 우습게 여기면 언젠가 홀로 남겨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들이 피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사람은 제각각 다른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남이 가진 것을 우습게 보면, 일순 위안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내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의 의미를 잃게 된다. 반대로 남이 가진 것을 진심으로 존중하면, 내가 가진 것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 함부로 보지 말자'
['추운 숲'으로] 남들은 나의 실패에 나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실패를 그렇게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달림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의 한계는 어디인지.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 바로 나를 아는 것이다. 따라서 도전 또는 발전이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가는 것이다. 공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공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공포를 견디지 못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래서 탈진하고 쓰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외로움이나 두려움, 불확실성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받아들여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내 존재의 의미] '왜 사는가'와 '무슨 의미로 사는가'는 사실 같은 질문이다. 그것은 또한 '무슨 재미로 사는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의미와 재미를 합치면, 그게 바로 행복이니까. 정해진 답, 모두에게 맞는 정답이란 없다. 지금까지 쌓은 콘텐츠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보면, 그 과정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것.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다. 지난날들을 떠올리고 곰곰이 반추해보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이란, 죄다 똑똑한 척하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겐 뭔가를 열심히 주면서 작은 기대를 수줍게 품는 반면,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엄청난 것을 바란다. 그래서 외로운 것 아닐까. 창조는 광범위하다. 무엇이 됐든 좋아하고 잘하는, 자기만의 뭔가를 창조하며 사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의미가 아닐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 나만을 위한 창조는 '가장 즐거운 자기 치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 존재의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서 찾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외롭다면, 눈앞의 외로움부터 마주 보기 바란다. 커다란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패와 고통, 가난, 병마, 거절, 이별, 쓰라린 상처......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힘은 그런 고생담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친구, 너에게는 이제 좋은 일만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충분히 고생했으니까.
[클리나멘의 순간, 버려졌다는 느낌]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꽃은 이미 그 자체로 곷이거든.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는 건 그다음이야. 꽃은 그 누군가가 알아주기 전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꽃이 그걸 인식한다면 더욱 당당하게 아름다울 수 있을 텐데" "다음에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에야 사랑을 해" 사랑이 돌변하면 상대를 베는 칼이 된다. 어떻게 상처 받지 않는 이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절대 고독의 품 안에 안기면 눈과 귀가 꽃잎처럼 열려 짐승들과 바람과 바다의 언어를 알아듣게 된다네. 오늘처럼 내 마음에 태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바다가 내게 와서 나 대신 울어주기도 한다네 - 추사 김정희, <제주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혼자서도 감동을 끌어내는 능력]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무한한 변화 가능성과 다양성을 찾아낼 줄 아는 열린 마음, 안목과 상상력, 혼자서도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솔리튜드였다.
[잘난 남자들의 숙명]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키 크고 잘생기고 심지어 공부까지 잘한 남자의 여자는 거의가 비슷하단다. '무서운 여자'라는 거지. 신은 언제나 공평하단다. 다 주는 법이 없으니까. 현실은 드라마와 반대라고 보면 돼. 얼굴로 볼 수 있는 건 여자의 일부에 불과해. 진짜는 마음속에 있거든. 잘나나 사람일수록 승부 근성이 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집요해. 킹카를 얻는 여자들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어. 바로 '불안과 상실감'이야. 잘난 남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많은 여자의 시선과 유혹은 당연하고. 그런데 잘난 남자가 사교적이기까지 해서 활동 범위가 넓다면, 그 남자의 여자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믿고 내버려둔 채 안심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해받지 못해 더욱 외로운 여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야. 그러니까 완벽해 보이는 친구들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어. 완벽이라는 건, 절대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말이지. '남자 팔자야말로 뒤웅박 팔자'라고 생각해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볼품없던 남자가 우뚝 서서 뻗어나가기도 하고, 승승장구하던 남자가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해지기도 하니까. 불운을 뒤집으면 그게 행운이라는 말이 있어.
[먼저 갈게]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밝은 표정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었다. 최근 학자들은 여성간의 적대감을 분석한 결과, 사랑받지 못하고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성일수록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솔리튜드 클럽-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외로움이 그들의 '깊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위대한 성취를 바라지 않도라도, 외로움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따금 '심리적 고아 상태'에 놓여볼 필요가 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사람은 절망 속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배운다. 외로움 속에 머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닮으려고 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기 본질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래서 그들은 빛이 한 줌도 없는 캄캄한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삽질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혼의 깊이가 자발적 외로움의 깊이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미소 짓는다. 그런 깨달음 자체가 이미 성취이며 커다란 보상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가게 하라] 인생을 구분하자. 아이 인생은 아이의 것이다. 자기 인생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아이 인생을 좌우하려 하는가. 부모 역할은 조언까지다. 조언은 하되, 결정은 아이 스스로 하게 하자. 헌신과 투자를 구분하자. 헌신은 투자와 달리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제대로 헌신하자. 헌신은 아름다운 것이며, 최고 수준의 사랑이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의존이 심하면 중독이 된다. 관계의 중독은 상대를 구속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맨다.
[유언의 수수께끼] '즐거워하면서 너의 길을 구준히 가라.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여기서는 싸가지] 마음을 한 걸음만 옆으로 옮기면 거기 새로운 세상이 있다니까. 선택의 기회는 매일 수시로 주어지는 거야. 사람들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된들, 이제 와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누군가의 시술도, 뒤집으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포기하는 대가는 자유였다. 결심했다.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 거야.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 침범하려 할 때마다 뚜렷하게 선을 그어서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였다. 그녀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의 발전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명백한 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의 '이기적'이란 말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이기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상대방만 겨냥하니가 말이다. "뭐 어때? '여기서는 싸가지' 하면 되지"
[그런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공감할 줄 아는 능력. 그게 어른의 사랑 방식이었다. 이해해주고 져주고 기다려주는. 사랑이란, 같은 곳을 향해 나란히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각자의 길을 가다가 만나서 함께 쉬고, 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대가 바로 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완벽한 삶을 꿈꾸지 마세요. 각자의 길을 가는 솔리튜드 연습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더욱 사랑할 수 있어요. 아쉽기 때문에 더 아껴줄 수 있으니까요. 당신을 알아줄 여유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평생 동안 단 한명이라도 만났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의 추위를 알아줄 테니까.
[솔리튜드 클럽-위대한 왕따] 4대 성인의 공통점은 당시 사회의 아웃사이더 였다는 것이다. 석가와 소트라테스 역시 그 당시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오랜 전통의 외로운 인간 유형이다.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외로움과 결핍을 창조로 연결시켜낸 외톨이가 유난히 많다. 외로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위대한 창조는 곧, '외로움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위대하나 창조자들이 창조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혹독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위대함에 이르는 첫걸음이다. 오늘 하루가 고통스러웠다면, 나만의 위대한 창조의 발원지에 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의미다.
[가르치다가 배운 것] 앞날이 까마득해도 일단은 걸어가는 게 용기 그러다가 너무 아득해서 기가 질릴 때는 옆을 보면 된다. '사람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울 때 오히려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더 힘든 사람들을 기꺼이 도우러 나서는 거였다.
[행복과목개설청원위원해] 행복은 우연히 시작된다. 외로움은 일종의 수행이다. 외로움이 감각을 단련시켜준다. 뼈저리게 외로워봐야 사람 귀한 줄 알게 된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솔리튜드는 더 많은 것을 풍부하게 보고 느낀다. 솔리튜드란, 더욱 풍요로운 세상을 만나는 '관점'같은 것이다. 또한 통념과 강박으로부터의 '자유'같은 것이기도 한다. 마음의 부자들에게 행복이란 목표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라는 잣대가 확고해야, 내가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만족하며 행복한지 판단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거나 그것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진심으로 격려 또는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한 손을 계속 비워놓을 수 있는지 자신한테 물어보는 거야. 결핌을 받아 들여야 인생이 발전이 있다고 해.
[남자들이 모르는 모계유전] "보세요. 어둠 속에 혼자밖에 없다고 느낄 때는 온통 절망뿐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별은 그렇게 어두워야만 제대로 보이거든요."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아무리 아픈 마음의 상처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알아주는 힘]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인생에 걸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정해준다는 것은 능력이나 조건, 외형 등에 대한 거예요. 또한 상대가 원할 때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지요." "알아준다는 건 능력이나 조건, 외형 같은 것을 넘어서는 의미라고 봐요. 존재 그 자체, 그러니가 잘났거나 못났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뜻이거든요." 혼자서도 마음을 추안하게 채움으로써 '온전한 나'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나.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나. 외로운 사람을 돕는 최선은 '알아주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깊은 절망에 빠졌더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음을 확인할 때,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는 탄력을 발휘한다. 이해하는 것은 곧 '마음을 연 경청'이며, 위로는 '진심 어린 관찰'이라는 것이었다. 알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먼저 알아주는 사랑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뻗어나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시작이 건강한 관계의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준다. 사랑이란 평생에 걸쳐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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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선택한 책.
정말 읽히기도 잘 읽히거니와, 뻔한 얘기 같지만 홀로서기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
[다시 이력서를 준비하며]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일과 비슷하다. 높은 층으로 올라갈때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이 펼쳐지듯,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인생의 초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법. 그러니 젊은이들은 무슨 일을 하든 힘들고 불만스러운 게 당연하다. 사실, 자기가 원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채 1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가 봐야 아는 거다. 가 봐서 아니라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아니 길의 끝은 언제나 다른 길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치열함으로 젊음을 통과해야 마흔을 지나 오십, 육십에 이르렀을 때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되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치열함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 방황하고 헤매면서도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 온다고 안 나가면 그 하루가 버릇이 될까봐서다.
다른 점이라면 용기가 조금 더 있었을 뿐이다.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또 살아갈 날도 많다.
[모든 일을 반드시, 끝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날그날 낚시의 모든 과정을 즐기려고 했다.
포기보다 더 나쁜 것은 해보지 않고 망설이는 것이 아닐까.
세상에 어떤 노력이라도 헛된 것은 없다. 노력은 단지 노력하는 데 가치가 있을 때도 있다.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만 하겠다고 생각하면 서툴고 느린 과정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잘하기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은 1등을 하겠다는 것만큼이나 의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비록 끝까지 잘 못하더라도 일단 시작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인생은 온통 도전할 거리로 가득하다.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줄지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을 즐겨야 한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시작하는 것은 더 좋다.
미완성으로 끝날 것을 두려워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보다 무엇이든 일단 저지르고 해보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보는 것, 미완성일지라도 삶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었다] 똑똑한 척하는 것보다 더 쉬운 건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솔직함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한다.
"나의 최고의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다"
예술적인 삶이라고 해서 꼭 거창하고 특별한 삶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어떤 일이든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나다움'을 잃지 않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 애쓰는 것.
결국 우리가 평생 삶에서 이뤄 가야 할 것은 '자기답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이리라.
[안전한 길은 죽은 자의 길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
안전한 삶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큰 길이다.'
"1퍼센트를 붙잡고 한 발자국씩 올라가는 겁니다."
"안전한 길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발 한 발 내딛어 길을 만드는 수밖에요."
"사람들은 아마도 안전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은 사람의 길일 것이다."
애초에 안전한 길, 위험한 길이란 없다. 어떤 선택을 했건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그러고 보면 안전한 삶은 원하는 길을 걷고자 하는 용감한 사람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중요한 건 매순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패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이제 곧 실패할 사람이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미래가 언제나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실패는 그냥 하나의 매듭이라고 보면 좋겠다.
실패한 다음에도 삶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어져야 옳다.
노력의 기쁨
"열심히 해서 이기는 것 다음에 좋은 것은, 열심히 하고 지는거야"
'져도 내용이 괜찮으면 빨리 회복된다', '열심히 하고 지는 것'의 의미를 아는 이들은 삶의 단수가 높다. 인생은 승리하기보다 패배하기 쉽고, 희망보다 절망이 쉽고, 용기보다 두려움에 빠지기 쉽다. 예쁘기보다 못나기 휘우며 도전보다 좌절이 수비다.
"나는 현명한 외면보다 열정적인 실책을 더 좋아한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다고 인생을 잘못 사는 건 아니다] 관계의 진정성은 진심에 있다.
어떤 관계라도 내가 상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랐고, 대신 그들에게서 뭐라도 배우는 것이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만남에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려 했다는 것에 만족하련다.'
주고 받는 데만 목적을 두는 만남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기에는 우리의 시간이나 정서가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좋은 만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
정말 좋은 인연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열심히 살면 나를 알아주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친구 한둘은 반드시 생긴다. 백아와 종자가 같은 천하가 알아주는 친구 사이는 아니더라도 서로 걱정해 주고 잘 되기를 바라고 질투하지 않는 친구면 족하다. 그런 친구만 있어도 인생은 충분히 살아갈 만하다.
[다른 사람의 눈치 따위 보지 않아도 된다] 흉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질투다.
나 자신이야 말로 내가 가장 존중해야 할 존재다.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참아야 할 일과 참지 말아야 할 일, 좋은 욕구와 나쁜 욕구를 구분하는 법이다.
욕구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몸과 마음이 원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욕구란 나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솟아나는 그 무엇이다.
진정한 욕구는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욕구를 솔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인생에 적극적이고 솔직한 것 같다.
신나고 재미있게 살자.
인생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깊어지고 넓어진다.
나의 욕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그러워진다.
[우물에 침 뱉지 마라] "니가 떠먹던 우물인데 침 뱉는 거 아니다" 직장에 있을 때는 불만을 말할 수 있지만 일단 나오면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얼른 골라] 선택은 내 자유다. 그런데 너무 오래 끄는 것은 둘 다 갖고 싶은 욕심이거나 선택에 따른 후회를 감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숫자를 믿지 마라] 인생은 꼭와 꼬~옥의 차이다.
[빈둥거리지 마라] 인생에는 빈둥거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한 우물을 파라] 한 우물을 파더라도 다른 우물에 기웃거려야 한다. 그래야 내 우물이 커지고 깊어진다. 세상 모든 일에 다 배울게 있다. 쓸데 없는 일이란 없다.
[착하게 살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착하게 길들여진 나는 누구든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행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손해보는 게 편하고 내가 상처받는 걸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내 아이는 착하게 키우지 않으려 한다. 까다로운 자존심이 아니라 올바른 자존감을 갖도록 말이다. 그건 다른 사람을 존중하되 자기 자존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이에 맞게 살아라] 진정한 나잇값은 성숙한 말과 행동, 나의 책임과 의무를 알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안 된다고 느끼는 때는 현재일 뿐. 나잇값 하려다가 재미없는 인생을 살지도 모른다.
[연봉이 적다고 불평할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했어야 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대기업의 연봉은 나의 능력에 맞추어 준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임금 지불 능력에 맞추어 나에게 준 것뿐이다.
그래서 나의 기준에서 최고의 직장은 최고 연봉이 아니라 최다 기회였다.
나를 위해 일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게 된다. 어려운 일도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다.
[결혼하든 혼자 살든 행복하면 그만이다]
결혼이란 퍼즐 맞추기다.
우리는 단지 느끼는 게 달랐을 뿐이었다.
그 다름의 차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혼 생활의 행복과 불행이 나뉘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면 당신은 결국 그것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는 소홀했다.
"결혼은 한 결점있는 인간이 내 인생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 일을 타인에게 행하지 마라.
상대가 나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을 내가 먼저 해 주고, 내가 듣기 싫은 말은 상대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설렘, 기대감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도 불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결혼은 서로를 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일 때보다 나은 삶, 풍료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고 예의가 사랑을 지킬 수 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인가? 하나하니까 결혼하는 것 맞다. 하지만 결혼은 앞으로 사랑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결혼은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게 아닏. 결혼을 했으면 결혼 생활이 행복하도록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 행복은 결혼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겸손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내가 나를 잘 봐주지 않는다면 누가 봐주겠어'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존중하겠는가.
자칫하면 겸손이 무능력함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높이고 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우월감과는 다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잘났다고 생각하는 상대적인 감정이 우월감이라면, 자존감은 나의 잘난 점 못난 점 모두 포용하는 감정이다. 건강한 자존감은 자신의 부족함도 웃어넘길 줄 안다. 남보다 못한 약점이 있더라도 뭐 어때,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있다면 무엇을 해도 두렵지 않다. 어떤 일에도 당당하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주위의 평가에는 민간하면서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것, 자기를 칭찬하는 것 또한 진정한 자존감이다. 다른 사람이 내 등을 두드리며 격려해 주는 일도 나에게 용기를 주지만, 내가 하는 일을 스스로 믿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켜 나가는 것임을 어린 세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요?"
"네가 네 자신을 좋아해 준다면 한 명 더 느는 건 확실해!"
[부모의 삶을 공부하면 나의 인생길이 보인다] 우리는 부모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십 년을 함께 사는 동안 부모의 삶과 생각을 알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 본적이 얼마나 될까.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삶의 스승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가깝고도 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진심으로 이해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모는 나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가장 가까운 스승이다.
[꼭 한비야처럼 살아야 좋은 삶이 아니다] 직접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힌트는 정답이 아니다. 삶을 풀어 가는 아주 작은 단서에 불과하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면서 정상까지 가려면 반드시 자기 속도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옆 사람이 뛴다고 같이 뒤면 꼭대기까지 어림없어요."
한비야의 삶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주어진 대로 살지 말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라는 '용기'다.
모두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두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삶의 지도는 없다. 똑같은 꿈을 꾸더라도 방법은 다를 수 있다. 같이 출발해도 도착 시간은 다르다. 1등으로 도착하는 것이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누구처럼 살겠다는 흉내 내는 데 그치지 말자. 부러워만 말자. 다른 사람처럼 살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평생 누구의 삶을 부러워만 하다가 죽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 아닌가.
[웃지 않으면 웃을 일도 생기지 않는다] 웃음으로써 나쁜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다.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웃음을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 진다고 한다.
웃음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 가운에 하나라는 것은 안다.
웃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웃음은 인생이란 토스트 위에 바른 잼"
팍팍한 빵이 목메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게 해 주는 잼처럼 웃음은 인생을 부드럽게만들어 준다. 잘 웃는 사람들에게 재미있고 줄거운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웃을 일이 생긴다. 웃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주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호기심이 많아지고 뭐든 해보려 한다.
즐겁지 않을 때 웃는 웃음이 진짜다.
하는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거나, 나만 홀로 소외된 느낌이 들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거나 아니면 그냥 좀 울적해지고 지칠 때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 연습
기쁨과 희망이 서린 얼굴은 웃는 얼굴일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가 이싿] 인생의 지뢰같은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막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나를 지켜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당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삶이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손톱만한 희망도 없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술 중에서 가장 높은 기술이다. 견디는 것은 잘 살기 위해 기울이는 어떤 노력보다 진지하고 가치 있다.
하루하루를 극복하며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 내는 이들이 바로 영웅이다.
[나만 어렵고 힘이 든 건 아니다] 나만 특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잘 저항하는 것, 그게 인생이다.
[잘난 점은 오히려 인생에 방해가 된다]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의 좋은 조건은 오히려 당사자에게는 극복해야 할 조건이다.
[그냥 떠나면 되는 거였다] 절대 떠나지 못할 이유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떠나지 않기 위한 핑계였다. 그냥 떠나면 되는 거였다. 다녀와서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라이벌은 없다] 한번 이겼다고 해서 끝까지 이기는 것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해서 끝까지 실패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라이벌이 있었기에 내가 더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닐까.
인생은 마라톤 달리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지만 결국 내가 목표한 곳까지 달리면 된다. 그러니 라이벌은 남이 아닌 나다.
[학고 다닐 때가 제일 좋은 거다] 학창 시절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며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이다.
좋은 경험이건 나쁜 경험이건 모두 약이 되었다.
[당당한 연봉 협상] 노예근성을 버려라. 내 능력의 가치를 돈으로 바꾸는데 어색해 하지 말자.
[애매함은 버려라] 거절의 말은 분명해야 한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한 진정한 배려다.
우리가 늘 후회하고 때로는 상처받는 것은 애매한 말과 행동이 원인일 때가 많다. 애매한 태도는 인생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잘 이별해야 했다] 감정을 있는 대로 소진하는 이별이 나는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먼 훗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내 인생의 이별은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믿음이 의심보다 무서울 때도 있다] 맹목적인 믿음이 의심보다 무섭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확실한 믿음을 위해서는 윤무부 선생처럼 경험하고 행동해야 할 때도 있다. 긴가민가하면서 그냥 넘어갈 때가 제일 위험하다.
[돈이 있든 없든 세워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돈이야 쓰려면 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베풀 수 있었던 것, 아니 베푼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그저 순수하게 줄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나는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거야'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언젠가는 잘 살거야, 넓은 집에서 살 거야, 하는 말은 현실을 잊게 하고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걸 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싶다.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19파운드 6펜스면 행복한 사람이다.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면 불행한 사람이다."
돈 앞에서 애면글면하지 말자, 돈에 휘둘리며 살지 말자.
나에게 돈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돈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반듯하게 세운다면 돈이면 모든걸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세상에서 벗어나 내 삶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
평생하고 싶은 걸 하고 살면서도 돈을 벌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돈이 목적인 삶을 살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가난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그것 또한 맞지 않다. 그러나 더 많은 돈을 좇기보다는 자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 일을 위해 더 많은 시가을 투자할 수는 있다."
어떤 삶을 살겠다고 결정하면 돈에서 자유로워 진다.
특정 분야에서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돈에 대한 자기 기준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돈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어느 투자 회사 대표가 말한 적이 있다. 바르게 벌어 바르게 쓰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재산이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돈 때문에 진짜 소중한 '나 자신'이라는 재산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애인이 없는 건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끌림'
본능적으로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이 끌림이다.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것만 봐도 사랑은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무엇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싹트고 물드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는 정말 솔직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까.
먼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며 행동했을 뿐이다.
사랑 앞에 손익을 따지지만, 적어도 진실한 사랑은 손해를 주지 않는다.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지금 ㄷ아장 만날 수도 있으니 학교에서, 버스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할 것! 무엇보다 어떤 직업이든 에너지가 넘치고 일에 푹 빠진 열정적인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답한 사람이 많으니, 지금 열심히 일하라.
[가족 간의 비밀은 서로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실제 일상에서는 큰 비밀보다 사소한 비밀이 상처를 남긴다.
비밀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연기처럼 새어나온다. 다만 무언가 감춰졌다는 분위기 속에서 누구도 말하거나 묻지 않을 뿐이다.
때로는 비밀의 내용보다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동안 쌓이는 나쁜 감정과 이로 인한 불신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비밀이 비밀을 낳게 되는 것이다.
비밀은 종종 곪아터진다.
비밀을 털어놓고 받아들이고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가족은 서로를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진실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해야 해, 그래! 진신이 최고야. 그래야 상처받느느 사람이 없다고!"
감춰진 비밀은 오해를 사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거짓말이 자란다. 그 거짓과 오해가 가족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서로를 미워하게 한다. 감춰진 진실은 불편하고 거북하고 찜찜하다. 물론 진실이 드러나면 당장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고통을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가족은 서로를 신괴하게 되고 진정으로 소통하게 된다.
"네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그러니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도 가지고 있다] 선택의 가짓수가 많다고 하여 그것이 곧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인생은 마트와 닮았다. 마트에 진열된 물건을 고르듯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인생을 선택하라.. 인생을 선택하라. 하지만 나는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하면서 스스로 정말 바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삶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겠다는 뜻이다.
[세상에 하찮은 일이란 없다, 하찮게 보는 바보들이 있을 뿐] 세상은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하게 해내는,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10년, 20년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계속하면서 삶의 이유,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 그들은 생활 속의 수행자이자 철학자다.
시시하다면 시시한 일에서 최선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나 할수 없다.
"영혼이 충만하면 삶의 문제들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깊이와 가치를 더하게 된다."
자기 일에 성심을 다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영혼이 충만한 사람들이다.
[잊고 싶은 기억이 많다는 건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다] 지우고 싶은 과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친구는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나리라 믿는다.
나이가 드는 건 그 만큼 기억해야 할 일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좋은 기억이건 나쁜 기억이건 그냥 삶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을 가리기 전에 살다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고 말이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 그렇다면 완전한 용서도, 화해도, 완전한 치유도 불가능하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는 소리다.
[가질 수 없으면 즐기면 된다.] 어느만큼은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는 순간 행복은 탄탈로스의 고통처럼 채울 수 없게 된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낼 줄 알면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눈은 신비하다. 차갑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좋은 일이 일어날 듯 마음을 설레게 하고 낯선 이들에게도 친절을 베풀게 한다. 눈은 공짜로 즐길 수 있는 행복이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능력
"가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몇 가지. 들에 핀 꽃 꺽지 않아도 향기는 맡을 수 있고 숲속 벌레를 잡지 않아도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반짝반짝 예쁜 별 따갈 수는 없지만 해 뜨기 전까지 볼 수 있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언젠간 이 모든 걸 두고 떠나야 하지만 이 모든 걸 즐길 순 있지."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 소유는 잠깐일 뿐이다. '언젠간 이 모든 걸 두고 떠나야'하는게 인생이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많이 이루기 위해 안달하고 속상해하고 화내면서 살지말자. 그 시간에 더 많이 기쁨을 느끼고 더 행복해지자고 다짐한다.
행복해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행복은 사소한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 생겨난다. 불행은 사소한 일들을 무시할 때 생겨난다"
어느 누구의 삶도 특별하지 않다.
나에게 행복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대신 나를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일을 찾아보는게 훨씬 현명하다.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이다."
마음으로 얻는 것이 진정한 내 것이다.
[내 책상은 어디에] "당신의 책상만은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
공부하기를 게을리 말라
책을 읽어야 나를 잃지 않고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다.
[내가 마요네즈를 싫어한다고?] 사랑에 빠지면 마음의 안테나가 상대에게 향한다.
[울면 따라 울고, 웃으면 덩달아 웃는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내 감정과 판단, 내 가치관을 잃지 말아야 한다.
[처음 그 느낌이 아니야]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말 한 마디와 행동이 설렘보다 더 깊은 신뢰를 준다!
[누구도 친구의 자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연인이 친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친구는 나에게 현실적이고도 객관적인 충고를 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또 진정한 사랑은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법이다.
[외모와 화해하다] 사랑하면 예뻐진다.
[짝사랑을 거절한 사람이 더 아프다] 짝사랑한 사람보다 사랑을 거절한 이의 상처가 더 오래간다고 한다.
배려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이별, 그럴 수도 있었음을 이해하다] 이별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성장한다. 어떤 이유에서 헤어지든 이별은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사랑과 이별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 세월이 흐를수록 누구이 책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애의 핵심은 이벨여 있는 것 같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사랑의 끝이 이별은 아니다. 이별은 더 깊고 성숙한 사랑으로 가기위한 징검다리다.
[내가 좋다고 상대도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 내가 주고 싶은 것만 준 것은 아닌지,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짚어 보라. 내가 좋다고 상대도 좋은 것은 아니다.
[남자보다 더 아껴야 할 내 몸!] 희생이 반드시 사랑은 아니다. 상대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내 몸이 아픈 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희생이 서로에게 좋다.
사랑 때문에 내 몸을 학대하지 마라.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는 말 뒤로 숨지 마라] '게으른 자유로움'
창조란 천재성이나 타고난 재능보다 일상의 성실함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완성과 완성 사이에 있다.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누구나 다 이렇게 사는 거'라는 생각이 아닐까.
사는 데만 쫓겨 나 자신에 무관심하고, 감동 없이 보내는 하루하루,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나도 별수 없다 여기는 것, 그렇게 생각 없이 사는 일상이 어느 순간 나의 모든 삶을 부정하고 위협할지 모른다.
"괜찮아, 지나가는 거니까. 너무 이 기분에 빠지지 말자" 하고 스스로 응원해 보면 좋겠다. 뻔한 인생을 뻔하지 않게, 매일을 새롭게 살아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을 때일수록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우리 인생에도 부활을 기다려야 하는 시절이 있다. 그때 자존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면 좋겠다.
부끄러워할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부끄러워하는 그런 모욕으로 나를 망가뜨리지 말자.
삶이 나쁜 쪽으로 흐르는 걸 방관하는 것이야 말로 진짜 비겁한 삶이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어도 된다] 삶을 생각하고 꿈꾸고 욕심 없이 살게 하는 집, 그런 집이 아름다운 집이다.
[상처는 누구도 대신 치료해 주지 않는다] 바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면 내가 할 수 잇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보라. 가서 문을 두드리고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라"
마음은 모든 문제의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단지 우리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데 인색할 뿐이다.
"언젠가 죽음이 닥쳐올 때까지 삶을 사랑하자!"
모든 일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려면 맨 처음 '마음먹기'부터 해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 불행과 갈등을 해소하려면 그걸 풀어 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삶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는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똑같이 '마음'이라는 줄지 않는 재산을 갖고 있음을 잊지 않는 한 말이다.
[진짜 '나'를 알면 비겁하지 않게 살 수 있다] "인생이란 게 항상 맨땅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 전혀 새로운 땅에서 전혀 다른 삶을 한번 살아 보자고 생각했다."
'갑옷 벗기'
"실패와 성공의 잣대보다 스스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의 잣대로 인생을 살아 보라"
한 번뿐인 내 삶을 사랑한다면, 일상에 잠재되어 있는 나의 갑옷이 무언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하나씩 내 삶에서 제외시켜 보는 것이다.
갑옷을 입지 않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두렵다. 누구든 진짜 '나'는 연약하고 초라하고 볼품없고 무엇하나 내세울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부족한 나를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어떻게 살아갈지 용기가 생긴다. 진짜 나로 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강해진다.
너무 맣은 욕망들에서 자유로워지면 나를 위해 일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게 도니다. 지금 당장 내가 가진 모든것이 사라져도 나는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출발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즐겁고 유쾌하게 비겁하지 않게 살 수 있다.
"나를 가두고 나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그렇게 할 수 있지. 나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해. 그래야 진정한 나를 알 수 있고 진정한 내가 나를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갑옷 속의 내가 누구인지를 알 때 나는 나를 지배할 힘을 가진다.
나는 나일까 갑옷일까.
[늙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은 허무할 뿐이다] 포스트잇에 몇 글자를 적더라도 반듯하게 썼다. 무슨 부탁이건 일단 대답은 '오케이!'로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존중했다.
자기에 대산 자신감이 없다면 가족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으리라.
가꾸고 꾸밀수록 본래의 아름다움은 감춰지기 마련이다.
젊음은 벚꽃처럼 금방 지나간다.
젊음이 인생의 앞부분에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젊음을 무기 삼아 하고 싶은대로 살아 보라는 뜻이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늙지 않으려는 피나는(?) 노력대신 더 놀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여행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지 내 몸이 아름답기 때문에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외모는 밤하늘 별처럼 잠깐 빛날 뿐 영원히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은 자신감이다.
다르다는 건 좋은 것이다.
아름다움에 게으른 것도 어찌보면 인간으로서 직무유기다.
"스스로가 사라지는 아름다움을 반대한다. 그저 조금만 더 아름다워지면 된다. 그것이 메이크업의 정도이다."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름다움이면 족하다.
언제나 그 나이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이면 충분하다.
[옛 친구와 연락하기] 불현듯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심 없이 연락하는 게 뭐 그리 나쁜 일인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하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가족끼리 빚어지는 갈등과 오해는 사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서툴게 표현한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도와달라는 말하기] 때로는 당당한 도움 청하기가 내 인생을 구한다.
[어른 노릇 하기] 나잇값이 뭔지 점점, 자주 생각에 빠진다.
[후회 안하기] 이미 지나간 일에 기운 빼지 말아야 하는 거 잘 알지만, 쉽지 않다!
[삼손이 되어 간다] 삶은 아낌없이 힘을 솓느느 것이다. 그리고 살아갈수록 힘은 더 세진다.
[이런 정성이면 서울대 가고도 남았을 것을] 사회에 나와 생업 전선에서 혼신을 다하는 나를 보면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정도 노력이면 뭘 못할까,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도전하고픈 마음이 솟는다.
[화를 다스릴 줄 안다] 이제는 부당한 일,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가 붙어도 조목조목 따진다. 목소리 높이지 않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지킬 줄 안다.
[나의 단점과 열등감은 남에게 없는 나만의 재산이다] 각각 다른 삶의 조건에서 태어나도록 한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재료를 가지고 한 번 마음대로 살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다. 내가 원하는 삶의 조건이 갖춰지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의 부자라는 것이다.
내가 가진 단점과 불행과 열등감은 남에게 없는 나만의 재산이다. 내가 가진 인생의 조건들로 최선의 맛을 내는 것, 최고의 사람이란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성공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인생의 성공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혼자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고독력은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믿는 힘이다.
독일어로 외로움을 뜻하는 'Einsam'은 '자기 자신과 하나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외로움은 나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준다.
'내 인생 내가 즐기겠다'는 마음으로 신택한 화려한 싱글은 잠깐이다. 일상은 지루하며 삶은 생각보다 길기 때문이다.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일상에 지천'
자기 자신의 욕망이 무언지 모른 채 다른 사람의 욕망에 끌려 다니며 살아가는 삶은 불행하다. 인생에서 자기 도취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홀로움'은 '홀로+외로움'이며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회"라는 친절한 설명을 직접 들은 순간부터 머릿속에박혀 있다.
[걱정은 절실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올바른 관심을 갖고 관찰하기 보다 당황한 채 걱정에만 빠져 있다.
물론 원인을 안다고 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해결점을 찾으려 고민한다면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
걱정은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걱정은 정말 절실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진정한 고민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답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걱정은 흔드의자와 같다.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무엇이든 똑바로 마주하겠다는 다짐은 문제를 풀아가는 중요한 열쇠다.
"불리한 확률을 뒤집는 사람"
삶이란 어차피 죽음을 조금씩 뒤로 미룬 것에 불과하므로, 조금씩 조금씩 삶을 연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명랑하라. 그리고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차분하라.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감정에 휘말라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하되 나중에는 슬픔마저 껴안으라는 것.
인생도 이성적인 판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 있다. '왜 이렇게 일이 잘 풀리지 않을까' 한탄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풀리까' 고민해야 할 때가 있다.
인간은 책상에 앉아서도 먼 우주 밖의 일을 상상할 만큼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일상에서는 좁은 생각에 갇혀 있다. 7단 자룰쇠를 연다는 심정으로, 얼굴을 앞모습뿐만 아니라 옆에서 위에서 밑에서 보겠다는 사고의 힘으로 얽히고 꼬인 고민들을 새롭게 바라본다면 인생의 문제들이 막막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절실하게 고민한다면 적어도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족은 기대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왜 부모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그 당연한 기대가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된 것은 아닐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옳다.
'가족은 아무 대가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실천할 때 비로소 가족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다.
내 몸을 스스로 돌보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동감했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졌지만 그 전에 각자 1인분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화된 존재다.
"너만 좋다면 여기서는 웃을 일밖에 없을거야."
함께 어울려 기뻐하고 절망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도 가족이다. 또 각자의 삶을 스스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면서 서로에게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자유를 하락하며 응원하는 것도 가족이다.
[직장인으로 끝까지 남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눈 덮인 길 걸어갈 때 그 걸음 어지럽게 하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마침내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사실 그냥 당신 갈 길만 유유히 바르게 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은 뒷 사람의 몫이다. 설령 앞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간다고 할지라도 그건 같은 길이 아니라 뒷사람이 새로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 그들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뒷사람 옆 사람 눈치보며 불편한 걸음을 참는다. 정작 그들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그 생각이 지나치면 나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모르는 내용도 아는 척하며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능력있어 보이기를 바란다.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은 감추고 당당하고 결단력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직장인으로 끝까지 남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란 것을 알았다.
직장인이라면 열심히 일하면 될 토이고 독립해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문제는 갈팡질팡 '이직을 할까 말까', '회사를 그만둘까 말까', '이 일을 해볼까, 저 일을 해볼까' 갈등만 오래 하는 것이다.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유명해지고 싶으면 바퀴벌레를 씹어 먹으면 된다"고 했다. 허명과 진정한 성공을 구분하라는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다 그만한 실력을 가졌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눈에 띄지 ㅇ낳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1등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허명을 쫓지 않고 나름대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능력 없는 유명인도 있으며, 2인자 아니 5인자 9인자 자리에 있으면서도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도 있다. 어느 삶도 함부로 말할 수 는 없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강한 사람이 오래 살아남는게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강하다는 말, 나는 1인자, 1`등, 최고라는 명성을 얻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멋지지만 고민하지면 자기 갈 길을 찾는 사람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작아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마음이 기운다.
[인격이야 말로 나를 살리는 밥줄이다] 나이 들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는 걸 자주 느낀다.
어떤 순간에도 사람 된 바탕을 잃지 않는 것, 그러니까 인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격이란 높은 것과 아주 낮은 것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인격의 높이란 이 모순을 갖고 견디는 일이다" 말이 안되는 일,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되는 상황을 얼마나 잘 견디느냐야에 따라 인격이 높다 낮다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격은 일상에서 오가는 사소한 말과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난다.
인격은 타인을 대할 때 드러나는 내 마음의 상태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자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다.
매일 먹는 밥과 빵,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 하나도 인간을 생각하고 만든 것들이 안전하고 맛있고 아름답고 좋다.
반대로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그게 무엇이든 옳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인격은 나도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린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격을 성장시키는 일'이다.
어떤 인격을 가졌느냐에 따라 내가 겪는 세상은 달라진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아니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은 매사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노력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느낀다.
확실한 것은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고작 내 한 몸, 내 입 살이하기에도 바쁘다. 그러나 나의 인격을 갈고 닦아 주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있을 것이다.
무심코 내쉬는 한숨도 옆 사람 기운 빠지게 한다고 삼갔다.
주위의 단 몇 사람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이라면 충분히 좋은 인생이라 할 만하다. 세상에 욕심낼 일이 많지만 인간됨, 인격을 갖추겠다는 욕심을 가진다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삶은 원래 힘든 것이다, 엄살떨지 마라] 살아 있다는 것, 산 자란 무엇인가? 겐지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 '최후의 최후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려 발버둥치는 자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자'라고 말했다. 그의 눈에 현대인은 한없이 나약하며 일평생 엄살만 부리다 죽는 '사이비 산 자'다. 겐지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 치역하게 살지 않아도 대충 생계가 해결되는 환경에서 인간은 '기를 쓰고 살아가는 재미'마저 빼앗겼다고 한탄한다. 그다지 가혹하지도 않은 현실로부터 줄곧 눈을 돌리고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온갖 핑계를 대며 살아가는 이들, 이들이 귀 기울이는 것은 고작 자신들의 처지를 어루만져 주는 부드러운 위안의 말일 뿐이다.
"자립을 기피하는 사람들은 거친 파도라고 할 수 없는 세상살이의 별것아닌 물결에 밀려 빠진 척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어머니에게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겉으로 상냥한 태도만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불평을 쏟아내고 너무 적은 노력을 하죠"
고민은 신의 영역이다.
꿈처럼 짧은 인생을 나는 할 수 없다고, 못한다고, 힘들다고 징징대다가 끝내 버린다면 억울하다. 스무 살과 서른, 그 젊은 날 나는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
[세상 모든 일에는 썩는 것과 익는 것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썩는 것과 익는 것이 있으며 이는 세월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바심을 쳐도 일정한 세월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
[사랑이 오기는 정말 올까?] 결혼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건 평생이 걸린다 해도 가치 있는 일이다. 소중한 것은 끝까지 기다려야 맞다. 설령 만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면 안 된다. 사랑을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닌 경우도 많다! 집에만 있으면서 좋은 남자가 찾아오길 바라는 건 이상하지 않나?
[왜 나에게는 아무 재주가 없을까?] 삶이란 재주 없음을 인내하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임을.
지금도 나는 능력부족을 절감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멋있는 은발을 위하려] 은발을 휘날리는 노작가들의 여유와 포용, 긍정이 나는 좋다. 그건 세월이 만들어 낸다. 새파란 젊음은 도저히 모방할 수 없다. 나는 그 중간에 서 있다. 확실히 내 목소리는 낮아졌다. 그러나 더 분명해졌다. 가질 수 없는 것은 포기할 줄 알지만 내가 가진 것에 깊이를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늙는다는 것은 더 부드러워지고 더 낮아지는 것,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이들고 싶다.
[인생에는 기다려야 할 때가 꼭 온다] "나는 신과 악마 사이에서 싸웠고, 결국 신의 손을 잡았다. 신이 항상 우리를 꺼내 줄 것으로 믿었다." 인생에는 반드시 기다려야 할 때가 온다. 기다림을 믿어야 할 때가 있다.
[행운] 길에 떨어진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아이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인생을 정직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설거지]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원칙, 몇 가지를 지워 보라. 훨씬 편하고 즐거워진다.
['거절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어는 순간부터 나는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장 귀한 것] 소중한 무엇을 고이 모셔 놓는 이가 있으면 열심히 쓰고 바꾸는 이들도 있다.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고 변화시켜야 더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감정 청소가 필요하다] 불평과 후회는 습관적이다. 내가 하는 후회와 불평은 이미 일어난 일, 해 버린 일들에 대한 것이 많다. 돌이킬 수 없는 일, 포기하는게 나은 일, 내 노력만으로 안되는 일에 매여 있느라 감정을 낭비하지 말자. 그보다 하지 못한 일,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면 어떨까. 한달에 한 번이라도 내 마음 안의 감정들을 '윈도드레싱window dressing' 해보라.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것이다] 고통을 감수하는 것보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때로는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오롯이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불평불만은 그 즉시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하루 동안 떠올리는 생각의 가짓구가 약 5~6만 개라고 한다.
그런데 5~6만 개 중에서 85퍼센트가 부정적인 생각이고 15퍼센트만이 긍정적인 생각이란다.
그러니까 우리가 넋 놓고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85퍼센트의 부정적인 생각을 들여다보면 늘 같은 불만과 불평이 대부분이다. 날마다 새로운 해가 뜨지만 재생버튼을 누른 듯 어제와 똑같이 불만을 되풀이 한다.
이런 불평은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밴다는 점에서 무섭다. 불평은 내 삶에 한 삽 한 삽씩 어두운 구멍을 파는 것이라고 한다.
불평불만이 습관적으로 계속 되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 결국 나는 되는 일도 없고 운도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고 만다.
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로빈슨은 "우리 뇌는 부정적인 상황을 더 잘기억한다"고 말한다. 뇌는 사물의 환경을 인식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착시, 착각, 왜곡, 망각을 일으키는데 여기에 심리적인 요인이 더해져 어떤 상황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생리를 알면 삶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부정적인 상황에 처하면 우선 뇌의 스위치를 긍정의 방향으로 찰칵 돌려 놓아야 한다.
긍정적인 상상이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Day by day, in Everyway, I am getting betther and better'
그러나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태도가 옳은 것만은 아니다. 점점 뜨거워지는 물속에서는 '뜨겁지 않다, 뜨겁지 않다...'고만 주문을 외울 것이아니라 빨리 물통을 뛰쳐나가는 게 맞다.
불평은 나 아니면 주위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해결하려고 노력해야만 삶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바꿀 수 있는 불평은 바꾸고 쓸데없는 불평은 버리면 된다. 일상의 사소한 불평이라도 투덜거리지만 말고 해결하자.
스트레스가 없다면 그건 죽은 사람이다.
"'무엇이 보이느냐가'보다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는 나의 의지에 달렸다. 불평불만은 그 자리에서 해결하려고 애쓰고,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쓴다면 인생은 달라지고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모든 불만은 결국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내 삶을 구조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들에게서 발견한 '성공'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인생을 한 단계 끌어올리며, 자기 한계를 넓히는데 있었다.
그들에게서 공통점을 꼽으라면 인생에는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회란 내가 원하는 상황이나 일 또는 사람이 나에게 찾아노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내 머릿속에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여감이 떠오르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비로소 기회는 만들어진다.
"꿈을 이루겠다면 발돋움하며 대담하게 뛰어올라라. 하늘로 떠오르면 날개가 돋아나고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회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온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니 평소에 열심히 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단지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기회가 없다고 말하지 마라. 다만 보지 못할 뿐이다.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지 마라. 기회는 시내버스보다 자주 온다. 남들이 기회를 모두 차지해 버렸다고 억울해 하지도 마라. 내가 찾는 한 그것은 고갈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기회다.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겐 딱 세번으 기회가 오지만, 널린게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회가 찾아 온다."
수줍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단 행동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 의심하며 끝없이 망설이는 것보다 좋은 것은 저질러 보는 것이다.
"이건 내 인생이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 나는 영원히 살지는 못할 테니까!"
[진정한 삶의 스타일은 어려울 때 만들어진다] 인생의 스타일은 삶을 대하느느 방식이자 태도다.
"당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면 당신은 그 사람에 이릅니다. 그건 깔끔함이 몸에 배는 것과 같은 거예요."
환경과 습관, 본능이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외적인 조건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겠다는 내적인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단순한 배려로 기쁨을 두 배로 늘일 줄 아는 여유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인 경우가 더 많다.
인생은 누구나 고난을 맞으며 비틀거리는 순간이 있다. 그때 그 고난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면 그 고난은 이수된 것이며, 다음에는 재수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거나 거부하고 억울해한다면 다음 인생의 길목에서 똑같은 문제를 만나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시기는 밝을 때보다 어두울 때, 부족하기만 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인생의 10퍼센트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로 이루어지고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일들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 일에 대한 태도가 앞으로의 삶을 결정한다. 소소한 어려움과 불행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거싱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이유가 아닐는자.
무엇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삶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나는 어떤 스타일로 나의 삶을 빛내며 살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은 행복뿐이다] "곧 하겠다? 바로 그것 때문이야. 곧 하겠단 말. 그래서 인간은 행복하지 않은 거야. 곧 행복해질 거라고 하니까."
나중에, 다음에, 언젠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으니 행복은 언제나 뒤로 미뤄질 뿐이다.
행복의 반대맛을 불행이 아니라 냉소, 포기, 게으름, 자책과 같은 낱말이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지닌다는 것은 곧 자기 행복을 스스로 찾고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잘하지 못해도 하고 싶으면 하는 게 맞다] "그 일을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있다" 내가 간직하고만 있는 꿈이 있다면 정말 내가 그 일을 원하지 않고 있는것이다.
꿈은 완성되지 않는다. 삶이 끝날 때 마침표를 찍을 뿐이다.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은 꿈을 키워 갈 기회가 남았다는 마이다.
꿈은 '적은 재능'과 '긴 시간'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시간과 경험이 주는 성숙함
'재능'은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천재라고 분류되는 이들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치열한 싸움이 숨어 있다.
"상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상상은 우주를 아루른다"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꿈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다. '현재'라는 시간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저축해 두었다가 나중에 쓸 수 있다. 지금바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지게 시간을 쓰는 법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고 시작도 않고 그냥 안 될거라고 단정한다.
꿈을 찾아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늦고 빠름이 없으며, 시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먼저였다.
우리에게 못한 일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내가 행복하다는 증거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시간은 언제나 충분하다.
가벼운듯, 참 유익했던 책이다.
엄마가 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내용이지만,
이미 한번쯤은 다짐했을, 생각해 봤을 것들을 다시 되 짚어가며 나를 바로잡는다면 정말 좋은 길잡이가 될 책이다.
새해, 나를 다시한번 정신차리고 뒤돌아보는 데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준 책.
두 권으로 구성된 책, 연말에 승훈오빠에게 선물받은 귀한 선물,
두 권중 '네가 있어 고마워'를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동물들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인 나는 이러면 안되잖아!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귀한 동물들의 마음들을 발견하고 동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_
[밑믿줄긋기]
좋은 친구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을 때 행복하다.-러셀
우정, '다른 누군가와의 존재가 내게 위로가 되고 평화가 되고 좋은 경험이 되느느 것.'
진정한 친구란 이렇게 힘들고 아플 때, 누군가 꼭 필요할 때 떠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것임을.
짝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처음에는 내가 좋아해서 시작된 관계가 어느새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하게 되는 그런 관계로 바뀌는, 짜릿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 모습이 마치 '너랑 같이 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제 누구에게 공격을 당할지 모르는 먹이사슬의 긴장 속에서도 때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행복해지는 그런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외로움에 몸을 떨면서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을 찾다가 불현듯, 전혀 생각지 못한 존재로부터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연은 곧 운명처럼 인생을 바꿔놓는다.
진정한 희생은 줄 수 있는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고 희생이며 우정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눈뜨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축복이다. 뻔한 소리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당신의 신진대사를 바꾼다
시간, 재능, 부, 손길. 이 4가지가 전부라네. 무엇보다도 좋은 건 이것들을나누는길이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이지.하지만 문제는 4가지는 고사하고 단 하나라도 제대로 나눌 수 있는 길을 발견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세
명목상의 가치와 실질적인 가치에는 큰 차이가 있지. 명목상의 가치는 '말' 이지만 실질적인 가치는 '행동'인 셈이야.
따지고 보면 정말 단순한 일이지. 내 삶의 목표 중 하나는 바로 내가 한 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걸세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시키는 일은 성공보다 훨씬 어렵지. 성공이라는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돈과 권력, 지위, 성취, 그리고 남의 인정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 하지만 의미를 찾는 사람은 그보다 영적인 면에 관심을 둔단다. 나눔, 봉사, 다른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일, 그리고 그들이 끈근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성공적인 사람은 돈을 버는 방법을 배우지만, 의미를 찾는 사람은 돈을 내주는 방법을 배운단다. 어떻게 하면 잘 나눌 수 있는지,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다양한 사회적, 인도주의적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자신에게 주어진 돈이라는 축복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배운다는 뜻이지. 의미를 찾는 사람은, 가장 위대한 일이란 남에게 봉사하고 그들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돕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단다.
성공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를 얻지. 남들은 그들을 존경하고, 어떤 경우에는 본보기로 삼기도 해.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를 크게, 그리고 쉽게 실망시킨단다. 하지만 반대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사람과의 관계에 가치를 둔단다. 그들은 사회적 지위를 쌓는 대신 믿을 수 있는 친구이자 멘토가 되어 다른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지. 의미의 요소들을 잘 살펴보면 모두 나눔과 관련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어. 자신이 가진 자원을 내놓는 일, 남들에게 봉사하는 일, 의미있는 관계를 쌓아가는 일 모두 나눔의 일부이지. 이 모든 것이 시간, 재능, 부, 손길 4가지로 압축된단다.
우리 모두 세상에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지. 나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네. 좋은 일을 하려면 재빨리 움직여야 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더 대단한게 뭔지 아나? 여기 오는 아이들은 출신이나 배경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기회를 갖는다는 점일세. 자신이 축복을 받았단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 그게 바로 내가 그날그날에 받은 축복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이유일세. 축복 하나하나를 모두 떠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 수가 너무 많거든. 어쨌든 나는 그 모든 축복을 하나님꼐서 내려주셨다고 믿네. 혹시 자네가 받은 축복의 개수를 세어본 적이 있나?
3M 주님(Master), 사명(Mission), 동반자(Mate)
나는 삶을 함께 할 올바른 동반자를 찾고 싶었다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네. 우리는 단순히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분께 감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지. 축복은 모두 선물일세.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것들을 당분간 돌보는 사람에 불과해. 한마디로 관리인이랄까. 내게 주어진 것이 아주 많은 만큼 내가 해야할 일도 많다고 볼 수 있지. 나는 그 책임을 감사히 받아들인다네. 그분의 선물은 내 상상 이상일세.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야.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록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진다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부가적 감정이 바로 나누고 싶은 욕구지. 세상에 내달리는 사람과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잇다. 내달리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것을 소유했다고 믿지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서 빌린 것이라 믿는다. 내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관게, 재산, 사업을 모두 소유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했다고 믿는 것들을 보호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는다. 반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인간관계조차 빌려온 것임을 알고 그러한 인간관계를 잘 키우는데 시간을 쏟는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바로 나눌 줄 아는 마음이 되지.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고만 생각하네. 그런 건 곧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는 태도로 이어지고, 피해자는 너그럽게 나누는 법을 절대로 배우지 못하지. 그런 사람은 자기 것을 내주고 싶어 하지 않네. 당한 것을 갚아주려고만 하지. 기꺼이 내주는 것이 유일한 나눔의 길이다.
때로 가장 부족한 것을 나누는 편이 훨씬 의미가 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다. "제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보낸 날들은 특별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날들보다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제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는 없으니까요." 진정한 나눔은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법이에요. '매일이 새로운 기회다' 매일 나눔을 통해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길을 찾는다. '행동이 필요하다'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실제로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HEART - 그분이 모든 걸 가지고 계신다(He Owns It All) - 매일이 새로운 기회다(Every Day Is an Opportunity) - 행동이 필요하다(Action Is Required) - 자신이 받은 축복을 잊지 말라(Remember Your Blessings) - 그분께 감사하라(Thanks Him)
나눔이란 결국 마음으로 요약된다. 다른 사람을 도우며 느꼈던 만족감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었단 걸 솔직히 고백할게요. 나눔의 진정한 힘은 단순한 'HEART'이상이다. 궁극의 비밀은 바로 '변화한(changed)'마음일세.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바꾸신 덕분에 나는 모든 것이 그분의 소유물이라는 사실과 그분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
그분께서는 성경의 메시지나 우리의 타고난 양심, 다른 이들의 영향력 등을 통해 우리에게 그분의 정보를 '다운로드' 해주시지. 그러면 우리가 기도와 봉사의 삶, 나눔과 베풂을 통해 우리의 정보를 그분에게 업로드하고. 한마디로 양방향 통신이라고 할 수 있지 좋은 것들이 우리를 향해 흘러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예전의 마음이라면, 이제는 좋은 것들이 우리로부터 세상으로 흘러나가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새로운 마음일세. 그 결과 더 좋은 것들이 우리의 삶 속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함께하고 있다면 오른쪽 줄에 쓰인 단어들(나눔, 봉사, 관계)이 바로 자네를 설명해주지. 하지만 자네가 부와 성취, 사회적 지위로만 자신을 평가한다면 자네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사람은 얻으면 얻를수록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거든. 영적 의미에 집중하면 자신이 남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될거야. 그리고 이러한 사랑과 인정이야말로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것이라네. 그는 자신의 성공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매일매일이 남을 보살피고 남과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눔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진정한 축복이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누기 위해 살고 일합니다. 리더가 되려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선행을 과시할 줄 모르는 사람. 남의 인정도 바라지 않는 사람. 나눔을 실천으로 옮길 때 우리의 성공이 의미로 변하는 여정을 시작한다는 점을 가르쳐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봉사 정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음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더 많이 많이 내어줄수록 더 많이 갖게 된다. 하나님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는 일은 불가능하다.
21세기북스 책을 좋아하는건.. 너무 정확한 진리를 거침없이 그대로 내보여준다는 것이다.
신앙서적이 아님에도 종교적인 부분을 그대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삶을 그렇게 살아낸 실존인물 '켄 블랜차드'의 삶을 통해 우리는 배울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너무나 귀한 책으로 마감할 수 있게되어 너무 감사하고 기쁜다.
인간적으로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처음 10장~20장 이 사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은 정말 큰 결단을 하고 책장을 넘겨야만 했다능!
좀 넘어가니 재미있어진다.
그러다가 또 다시 구덩이를 파는 기분이.. ㅋㅋ
업다운(재미있게 읽히고 그렇지 않고)을 반목하기를 여러번,
드디어 다 읽었다.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
인문학이 함부로 덤비면 안된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그래도 왠지 뿌듯해진다.
도저히 믿줄 긋기는 못하겠더라는.. ㅋㅋㅋ
당신에게 그분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 단신을 세우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있다. 당신은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통해서 세계를 품어나갈 그 이유를 위해서 태어났다. 역사를 이어주고 영원에 이르게 하는 그 이유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 속에 미리 예정된 목적과 연결되어 있다. 에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한 신비스러운 장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역 안에서의 모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목적과 이유를 소유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이 땅으로 가져오는 일이며, 그 목적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켜 당신이 이 땅에서 만나게 될 모든 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능력을 갖게 할 하나의 계시다. "내가 이 이유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_FOR THIS CAUSE I WAS BORN]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 하루, 한 주, 한 달, 그 세월과 함께 무엇을 하느냐이다. 어떠한 이유cause가 (어떤 이유든) 당신의 삶을 정의하고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기억될 것이며 당신의 가족과 다음 세대에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 그 답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이 이유를) 위하여 for this cause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요 18:37)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죽지만 다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넘치는 가능성을 지닌 채로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길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이유가 진실로 삶의 버팀목이 될 때 당신은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보다 더 큰 이유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진리를 이해하기 힘들어할지도 모른겠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태어났다. 그분에게는 가족이나 가정환경, 실패를 능가하는 당신을 위한 목적이 있으시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하나님은 당신을 아셨고, 길을 정하셨고, 목적을 부여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렘1:5)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시139:13) 당신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에게는 당신을 위한 계획이 있으시다.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의 이유를 위해서 태어났다. 우리도 배신의 경험, 깨어진 신뢰에 힘겨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분 역시 배신당하셨다. 그분은 부정적인 생각, 불안정 또는 거절감의 자세로 삶을 살지 않으셨다.아버지가 주신 이유로 인해 이땅에 존재하나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의식sense of cause은 모든 것에-특히 힘든시기에- 올바른 시각을 가져다 준다. 나는 당신이 마음을 관통하는 한 굉장한 이유를 위해 태어났다는 사시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의 약속이 당신의 영혼에 스며들게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하고(롬 12:2) 새롭게 생각하는 법을 개발하여, 주님이 당신을 보시듯 자신을 보기 시작하라.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분의 이유가 당신의 비전과 방향을 채우도록 하는 것보다 더 큰 상급은 없다. 삶에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상처받은 영이 자라게 놔둬서는 안 된다.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당신은 백만 분의 일의 성공 스토리다. 당신을 사랑을 위해서 무엇을 기꺼이 하겠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동일한 사명을 좇는 우리의 순종의 열매는 믿음의 다음 세대에 이어질 것이다. 에클레시아ecclesia는 "부름 받은 자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 사는 삶은 강렬한 빛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역동적이고 살아있는 유기체living organism가 되어 생명을 일으키고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믿는 자들은 단지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되기 원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음부의 권세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고 하겠지만 그들은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 약속하셨다.
[이유와 비전_THE CAUSE AND VISION] 그에게 비즈니스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의 이유를 위해 위대한 일들을 성취하려는 하나의 도구였다. 이유가 결여된 비전은 개인의 목표를 세우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반대로 이유에 결합된 비전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일과 다르다. 잠언 29:18은 꿈vision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박국 2:2에서 여호와는 하박국에게 "너는 이 묵시vision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명확한 비전은 우리에게 달려가야 할 이유와 추구해야할 가치를 보여준다. 비전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이유에서 전개된 계시로부터 흘러나와야 하며 이러한 진보적 계시가 없다면 우리는 잠언 29장이 말하든 "망할 수밖에 없다" 당신의 비전이 그리스도의 이유에 묶여있을 때, 능력과 추진력이 모든 일에 따라붙는다. 비전은 멋이 있지만 이유는 비전보다 더 위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비전은 당신이 소유하는 것이나, 이유는 당신을 소유한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 마찬가지로 당신이 그분의 이유에 헌실될 때, 삶의 비전을 따로 작성치 않아도 된다. 그 이유가 당신을 붙들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길로 접어들어 당신 안에 그분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유는 날마다 당신에게 방향과 목적, 영원한 시각을 심어준다. 비전은 매우 중요하나 그보다 더 위대한 가치는 그 이유다. 당신의 비전이 당신보다 더 큰가? 비전은 당신을 위해 존재할 수 있으나, 당신은 이유를 위해서 존재한다. 단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비전보다 더 위대한 목적과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비전의 목적이 당신에 관한 것이기보다 더 위대한 것을 위해서일 때, 당신은 그 이유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며, 그것은 당신을 훨씬 능가하는 삶으로 연결된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서 기꺼이 당신의 비전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이유에 링크될 때 초자연적인 능력과 목적을 갖게 된다. 비전은 필수라 해도 이유는 능력이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날은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한 강력한 동반관계의 시작이다. 비전vision은 분열division이 되고, 한때 일치unity가 있던 곳에 불화disunity가 있게 된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도시)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분열로 가득한 집은 즐거운 곳이 될 수 없다. 동기가 순수할 때 하나님의 집은 멋이 있다ㅏ.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해 자신의 비전을 사용하는 사람과, 자기 비전을 세우려고 그분의 집을 사용하는 사람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분별의 지도자discerner 당신의 동기가 참으로 주님의 목적에 이끌릴 때 그분의 집과 당신의 삶은 번창한다. 하지만 동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 그 집은 분열한다. 모든 사람에게 충성하려는 사람은 실제로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 분열된 충성은 결국 파멸을 초래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이라"(전 4:9) 당신의 삶은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ㅏ. 미래가 당신을 어떻게 기억하기 원하는가? 하나님 나라의 이유는 당신의 헌신과 함께 지금도 영원 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유와 소명_THE CAUSE AND CALLING)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셔서 그분과 함께 새 생명의 안전 속으로 인도하신다. 당신은 그저 구원받은be saved사람으로 사는가, 아니면 부름받은be called사람으로 살기 위해 도전을 받아들였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목적을 위해서 부름받았다는 계시를 이해하는 것이다. 주님이 당신을 구원하실 때 그분에게는 영원 이상의 계획이 있으시다. 그분은 이 땅에 영향을 끼치라고 당신을 부르셨다. 소명은 삶의 모든 측면을 아우른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모습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며, 당신이 구원을 소명과 연결하고 그 위에 그분이 은혜를 더하실 때, 우리는 홀연히 그분의 목적과 운명의 진로 위에 서있게 된다. 나는 우리가 다 우리 자신보다 더 위대한 목적을 위해 구원받고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소명은 당신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 당신의 손에 있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분이 은사로 주신 것을 내려놓을 권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계절, 당신히 하고 있는 일에 성실한가 이다. 당신의 삶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능력들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손에 있는 것은 당신의 소명과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되어 있어, 당신에게 외친다! 손에 있는 것은 당신처럼 보이고, 마음에 있는 것은 당신이 보이고 싶은 모습이다.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은 당신처럼 보인다. 그것이 당신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16:10) 기분이 당신을 세계적으로 부르셨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지금 여기 작아 보이는 것에 충성되지 못하면 당신은 결코 큰 것에 충성되고 신뢰받을 수 없다. 은사를 직장에 적용하라. 그곳에서 충성되고 근면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에 대한 문을 여실 것이다. 우리의 길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라고 말한다. 모든 성취와 기회들은 수고로 시작된다. 그들의 성취는 왕 되신 하나님의 이유에 헌신된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 "열매들"이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이유에 삶을 헌신할 때 당신의 모든 수고에 상을 주신다는 말이다. 쉽게 살려고 하기보다 힘써 수고하며 헌신할 때 당신에게 삶의 열매는 명백해진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애쓰게) 하신것을 내가 보았노라...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전 3:10, 12-13) 애쓰다_는 "바쁘게 시간을 들여 열중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당신을 하나님이 주신 일에 애쓰고 있는가? 무엇이든 대충하지 말고 전심을 다해서 일하라. 그 일들이 공허함, 염려,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면, 주님이 당신에게 지금의 일에 대한 마음의 계시를 주시리라 믿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은, 일을 보는 방식과 하루를 보는 당신의 눈을 변화시킬 것이다. 힘든 수고에 축복이 있다. 공허하고 성가신 것이 아니라 일을 하나의 기회로 보라. 당신을 부르시고 그 마음에 에너지를 주시려고 바로 그 자리에 두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여라. 선한일을 행하고 영향을 끼치는 일에 삶을 헌신하고, 당신의 수고에 대한 열매를 즐기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그분과의 여정을 즐겨라!
[이유와 목적_THE CAUSE AND PURPOSE] 그분은 목적의 하나님. 행하시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목적과 계획이 있으시다.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 모두 그분의 목적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목적이 있는 삶의 비밀은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을 위해 사는 것이다. 목적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기반이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의 삶도 "여호와는 ...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 그의 이름을 위하여..."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목적은 한가지에 집중하게 한다. 집중력의 부족은 우리를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마비시키고 분산시킨다. 경건한 목적은 집중력을 가져와 삶에 두 마음을 품을 여유가 없게 하며, 당신에게 한가지에 헌신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키key는 당신의 삶을 목적 안에서 간소화시키는simplify 것이다. 당신의 삶은 서로 우선순위를 경쟁하는 일들의 목록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는 다 하나님이 주신 한번의 삶을 산다. 목적에 관한 한 우리는 우표 같은 접근 방식이 필요한데, 궁극의 목적에 이를 때까지 그분의 가지에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말에는 능력이 있어, 우리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다른 이들에 대한 당신의 말이나 자기자신에 대한 고백은,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준다."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 선한 사람은 그 마음의 선한 것으로부터 선한 것들을 말할 것이며, 악한 사람은 그 마음의 악한 것으로부터 악한 것들을 말한다. 당신의 말하는 방식과 사는 방식, 당신이 추구하는 것과 추구하지 않는 것에 그분의 임재와 목적이 명확하다. 잔잔하지만 확고부동한 확신을 갖게 된다.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볼 때 당신은 이제 곧 올 최상의 것들을 보게 도니다. 목적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국 승리의 길을 걷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I shall not want의 want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줄어들다, 감소하다, 작게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부족함이 바로 우리 삶에 하는 일이다. 부족함은 우리의 삶을 오그라뜨리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부족함"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충분하심을 맛본 자들이다. 삶의 어떠한 부족함이 존재하든, 그것은 당신에게서 그분이 계획하신 것들을 훔쳐가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도록 디자인 되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시기 때문이다. 내면의 평강은 당신이 목적이 있는 삶을 살 때 주어진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당신을 따르는 것은 당신을 무엇을 따르기로 선택했느냐에 달려있다. 그분의 목적을 따르면, 그분의 속성과 성품이 당신을 따를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사과를 받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또한 나뭇가지를 흔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목적은 구조심리deliverance mentality- "하나님 제발 이것을 가져가주세요"와 극복정신overcoming spirit-"하나님 승리하도록 도와주세요"의 차이를 구별해준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당신에게 극복하는 자의 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때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이다. 때와 시간이 당신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돼있음을 깨닫게 될 때, 당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게 될 것이며, 때가 당신의 편이라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중요한 일들이 발생하는 데는 종종 시간의 경과passage of time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것을 이루시는데 때때로 시간을 사용하시며, 당신의 능력을 키우고 성장시키시는데 시간을 사용하신다. 시간의 가치를 결코 간과하지 말라. 시간과 때에는 그분의 목적이 있다. 당신이 어느 계절에 있든지, 그것은 당신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일부다. 역경은 신뢰의 자리로 우리를 몰아간다. 모든 계절에는 목적이 있다. 시간에 탈출구는 없다.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소비할지 결정할 기회를 준다. 그 시간을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기셨다. 시간과 기회는 우리 모두에게 임한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선택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지가 결정된다.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시간을 엄청나게 많은 순간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한 시간, 하루, 일년을 만들어가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이 시간이다. 그 순간들이 당신의 삶의 구조들을 형성해나간다. 삶은 사실 한 순간에 의해 그 윤곽이 결정되는 일들이 많다. 한번의 잘못된 결정, 단 한번의 부정적 경험이 인생의 올가미가 되어 마치 고기가 그물에, 새가 올가미에 걸리듯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순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의 은혜로 인해서다. 모든 순간들은 하나의 기회다. 관대해질 기회, 긍휼을 보일 기회, 친절과 격려의 말을 할 기회다. 순간을 놓치지 말라. 그들은 우리 곁을 아주 빠르게 지나친다. 당신은 어떤 순간들로 삶을 이어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매 순간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라. 삶은 그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그분과 함께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때가 그분의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때와 기회를 -장애물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안내하는 하나의 친구로 인식하며 살아가라. 포기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이유를 위해 그리고 목적을 위해서 사는 삶은 인내와 헌신과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시간도 걸릴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을 향해 당신이 저돌적으로 돌진하라고 권면한다ㅏ. 갓길로 나와 안주하지 말라. 헬라어로 번영, 잘 되어가다 라는 단어는 euodo로, "긴 여정 길이 순탄하게 주어지다, 성공에 이르다"라는 의미다. 히브리어로 번영은 tsalach인데 "향상되고 초과하다, 성공하여 이득을 보다, 번영을 체험하다"라는 뜻이며 번영의 명사 shalvah는 "안락함, 고요함"으로 현대 영어의 "평화, 풍성함"과 관련이있다. 또 다른 번영의 정의로 "여정을 돕다" 우리는 다 삶의 여정길 위에 있다. "번영"은 고되고 긴 여행길에 우리를 위한 공급품 상자로, 영원에 이르는 여정을 위해 하나님이 샌드위치와 커피를 담은 상자를 싸주시는 것과 같은 의미다! "사랑하는 자여 네 용혼이 잘됨 같이prosper 네가 범사에 잘되고 prosper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 "무릇 있는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5ㅣ29) 그들은 번영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을 사용했다. 오늘날에도 번영에는 여전히 목적이 있으며, 또한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분은 은사, 능력, 축복 그리고 가능성을 주시며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주신 선물들을 묻어두지 말라.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5)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역량대로 일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능력에 관해서 종종 당신과 다른 견해를 갖고 계시지만, 그분이 할 수 있다고 주실 때에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위에다 넘치는 충만을 더하신다. 당신의 자연적natural 능력에 그분의 초월super이 더해져 초자연적supernatural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당신이 가능성을 묻어두는 것은, 당신의 것을 묻어두느느 것이 아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7)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변함 없으신 분이다. 그분은 당신에게 은사를 주시며, 당신은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도록 선한 청지기로 부름 받았다. 문제는 당신이 갖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당신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 사실 이기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거나 주어진 것을 숨겨놓는 사람들이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놀라우시며, 그분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가능성과 역할에 성실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그 가능성을 외면한다면 그분이 당신이 하도록 부르신 일들을 이룰 수 없다. 그분은 당신이 해야 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며 번영에 게으른 것은 악한 것이다. 그분은 이미 당신을 가능성으로 채우셨으며 당신 자신보다 더 큰 삶을 살도록 기회를 주셨다. 단지 구원받은 자로만 살지 말자! 증가시키고 확장하며 넓혀나가고 영향을 끼치는 기회로, 하루하루의 삶에 헌신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으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믿는 자들의 자원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며 그분의 목적을 위해서다. 번영이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그 자체든 어디에 속했든 그 번영은 적절치 못하다. 번영에는 취약점이 있어 약점이 쉽게 노출된다. 돈은 우리가 그것에 끌러가면 주인master이 되려고 하지만, 목적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졌을 때 그것은 하나의 종servant이다. 당신 스스로를 관대함의 통로로 보며 하나님의 이유에 헌신할 때, 당신은 삶의 가치가 증가되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분이 당신에게 성공의 기회들을 맡기실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라.
[이유와 대가_THE CAUSE AND PRICE] "여러분의 매일의 삶, 일상의 삶-자고 먹고 일하고 노는 모든 삶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십시오" 날마다 삶의 일상적인 부분들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라는 말이다. 우리는 다 "자기"에 의해 지배 받는 삶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유에 가장 큰 적은 "자기" 일지도 모른다. 자기-위주의 이기적인self-seeking삶에 대해서 말한다. "시기와 다툼[이기적 욕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6) 우리는 다 "자기"라는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당신을 보시듯 당신 자신을 보기 시작하라.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를 믿는다self-confident고 했다.(잠 14:16) 자신감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다. 히브리서는 자신감을 큰 상이라고 가르친다. 그것을 제한하는 요소는 자기다. 당신의 자신감은 그분의 믿음 안에 근거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느느 높아지리라"(마 23:12) 당신이 풍성함의 축복을 받으면 할 수 있는 것도 풍성해진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스스로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쫓는다는 것은 믿음의 동행이며 하나의 확신과 신념이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6-27)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느느 자를 내가 알고 또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심함이라"(딤후 1:12) 우리가 알고, 믿으며, 확신하고, 헌신하는 것이 삶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모든 테스트는 하나의 기 회임을 기억하라. 긍정적인 확신의 부족은 역효과를 가져온다. 강한 확신이 없이는 부정적 결과와 함께 빈곤한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 확신으로 사는 삶과 결과에 연연하는 삶의 차이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6:25) 당신은 세상의 변화를 위한 대리인agent이 되어야 한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확신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라. 당신의 세계에 그분의 뜻을 심기위해 -확신과 신념, 확고부동한 헌신의 대리인이 되어라. 당신의 삶은 당신의 확신[당신이 믿는 것]과 소원[당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애착[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정해지는 일정한 패턴을 따라 전개될 것이다. 우선순위가 그분으로부터 벗어날 때 삶은 휘청거리고 만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성경은 그것이 타당하든 그렇지 않든 쓴뿌리와 공격에 대해서 허용치 않는다. 그분은 당신이 최상이기를 바라신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 어떠한 쓴뿌리라도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장하기 전에 제거해버려라. 삶은 괴로움과 쓴뿌리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짧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동전의 양면처럼 축복은 책임과 붙어 다닌다. "많인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라"(눅 12:48) 더 크게 펼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 더하시는 것은, 관대히 베풀며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라는 뜻이다. 생각에 도전하여 언제든 관대해질 수 있는 기회의 삶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기회는 마트의 계산원에게 보내는 미소나 친절한 말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포함한다. "선한 [관대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존귀한[관대한]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자기 자신, 자기 시간, 자원들을 과도히 챙길 때 우리는 점점 더 인색해지고 만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 4:6) 예수님은 33년의 짧지만 세상을 깨우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삶의 본이 되어주셨다. 그분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아셨다. "당신의 삶은 일어날 일을 기다리는 하나의 선물이다." 그분은 당신과 내게 바로 역사 속의 이 시간을 위임하셨다. 우리가 그 이유와 목적과 함께 살아갈 때, 그분의 이름이 이 땅 위에서 크게 높음을 받으실 것이다. "그 이유를 위해서당신이 왔노라"
정말 유쾌한 책이다. 잘난척도 참 귀엽게 한다! 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깔떼기 공법을 여기저기서 남발하는 정봉주의 삶이 부럽다. 그만큼 투명하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때문에 저토록 철없어 보이도록 천진하게 잘난척(응? 진짜 잘난 사람 같다)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런 당당함이 참 부럽다. 그리고 무언가 나와 관련없는 무언가를 파야겠다고(BBK 사건을 기막히게 파헤쳤다) 맘먹고 엄청나게 파헤친 실력은 괴력에 가까운 것 같다.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볍지는 않다. 국민의 역할에 대해서, 대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게 해주는 책이다. 정봉주! 월계동과 상계동을 지역기반으로만 하지말고 성동구로좀 와봐요! ㅋㅋㅋ
써머리가 너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하나같이 가슴에 새겨지는 글들이므로, 놓칠 수가 없네 그랴..
글쓰기를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주도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의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할 수가 없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확률도 높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수를 했을 때에도 훌훌 털어 버리고 조금 방법을 달리해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스스로의 결정에 따랐으므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데다가 남의 탓을 하느라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의 과정을 즐기기에 백 퍼센트 성공은 아니라도 간 만큼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제각기 내가 생각하는 나, 상대가 생각하는 나, 그리고 진짜 내가 있어서 그리 된다. 내가 하는 말은 내 입에서 발설되었을 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수용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성립하는 것이다. 타자의 인정에 급급하여 끌려 다닌다면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어질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되 내가 인정하는 준거집단의 시선을 존중하기로 했다. 가끔은 낯선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be가 아닌 becoming이라고 하듯, 자신의 운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이 될지 각자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다. 성공에 도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창조하여, 그 이미지에 부하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글쓰기의 두 번째 성과는 '자기암시'다. 뇌가 목표 중심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아주 작은 징후도 놓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고, 강력한 실천력을 갖추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경쓰이는 일을 종이 위에 풀어 놓고 나면 마치 나를 속속들이 이해해 주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난 것처럼 마음이 후련해졌다. '정서와 현실 사이의 중간 점검 장소' 쏟아 내는 것만으로도 정화가 되지만 마음속에 여백이 생겨 빠르게 다른 감정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글은 내 마음을 헤집어 내 생각을 표현하느느 행위이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실낱같은 가능성에서도 희망을 보게 한다. 살아 볼수록 스스로 재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스스로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사람은 자기 감정에 솔직하다. 내 시간과 관심을 주도할 수 있어서 당당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성이 나온다. 직접 겪으면서 살고, 글로 쓸 때 반추하며 다시 한 번 살고, 거기에 상상의 세계를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끼니 그의 세계는 '따따블'인 셈이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정말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 보고 싶어!' 글은 스쳐 가는 순간을 보존하여 삶을 촘촘하게 해 준다. 책 쓰기는 나의 언어와 철학을 가지고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존재 선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구조 속에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1장 / 글쓰기는 문장력의 문제라기 보다 심리적인 문제다] 크게 마음먹지도 않았는데 글이 술술 써질 떄는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할 때다. 글쓰기를 하는 데 자기 검열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글쓰기는 내 느낌을 명료하게 해 준다. 명료한 것을 넘어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 내게 일어난 일을 분명하게 알아차릴 때마다 나는 더욱 당당해 진다. 매사에 내 느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 레퍼런스를 키워라. 그의 가족은 들어오고 나갈 때 반드시 서로 안아 준다고 한다.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보아야 각별한 눈맞춤이 일어나고, 또 거기에서 새로운 삶의 경험이 시작된다.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내가 세상을 건성으로 대하면 그만큼 내 세상이 좁아진다. 그러니 무언가 색다른 것을 보더라도 이렇다할 느낌이 없다면 삶에 대한 태만을 부끄러워해야 옳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거울을 자주 보기보다 오래 보라고 한다. 고요한 가운데 지극한 마음으로 보아야 비로소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무조건 옳다. 누구에겐가 혹은 세상에 대고 할 말이 있을 것! 그것이 글쓰기의 첫 번째 요건이다. 느낌에 맞고 틀리는 정답이 어디 있는가? 느낌이란 다른 누구의 승인도 필요 없고 내가 인정해 주기만 하면 성립하는 것이다. 내 느낌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냥 덮어 두고 말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행복한지 모르고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구축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 믿는 사람을 믿고 싶어 한다. 연애부터 비즈니스까지 세상일이란 나의 확신으로 기회를 잡아당기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거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느정도 방향과 철학이 정해졌으면 실행에 옮겨 실전에서 배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배우는 것이 있으므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비한 점을 보강하여 다시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안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매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 글이란 언제나 나의 느낌에 대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발견하고 보살피는 최대의 지원군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것 없이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훈련이 계속되면 '이게 나야!'가 된다. 글쓰기는 스치고 날아가는 생각을 붙들어 눈앞에 앉혀 주기 때문에 느낌을 좀 더 명확하게 알 아볼 수 있게 한다. 내 느낌을 명확하게 알아차릴수록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무엇이든 내가 절실하게 느껴야 글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무조건 옳다'는 뱃심으로 나의 느낌을 중시하고 존중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내 감정의 편이 되어 주자. 글쓰기는 '그래야 한다' 혹은 '다들 그렇게 한다'는 외부적 시선과 통념을 거스르고 나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낼 때 나는 치유되고 독자들은 매료된다. 글쓰기는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을 좋아한다. 글을 쓰면서 나를 드러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이란 내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해 줄 완벽한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연애편지다. 나의 경험을 통틀어 그중 애틋한 것, 나의 마음을 통틀어 가장 지순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읽는 이의 마음을 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를 떠나서는 한 줄도 쓰일 수 없는 것이 글이다. 쓰는 이 자신도 빠져들지 못한 글에 빨려 들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독자를 잡아당기고 싶다면 우서너 쓰는 사람이 불타오를 것! 살 떨리게 화가 났던 순간, 무릎이 팍 꺾어지며 좌절했던 순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상처, 마음 한편에 담아 둔 소중한 기억을 불러내라. 지금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것도 남겨 두지 마라. 나를 드러내야만 읽는 사람의 정서에 다가설 수 있다. 나의 속살을 드러내면 읽는 사람은 무장해제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감정을 타고 흐르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을 수록 정서를 움직여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솔직해야 한다. 우리를 욱조이는 강박관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회피하지 말고 차라리 정면 돌파를 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이야기하는 존재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이야기일수록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내가 세상에 줄 것은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잠재력을 갖고 있어도 글을 안 쓰면 말짱 도루묵이다.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잠재력은 장애물일 뿐이다. 꾸준히 쓰는 일만이 이 격차를 좁혀 준다. 읽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오직 첫 줄을 시작하고 계속해서 한 줄씩 써 내려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완벽함은 훌륭함의 적이라는 말이 있다. 꾸준히 써 나가는 일만이 내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파악되는 하나의 객관적인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나의 시야는 마치 깔때기처럼 좁았다. 건강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도면밀한 명랑 철학과 실행력이 감탄스러웠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시비지심으로 평생을 지새우지 말고 사양지심, 측은지심으로 친구를 많이 만들어라" 시시비비르르 가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를 생각하는 진정성이 전해질 때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테니 이쪽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슬픔을 겪어 본 자만이 기쁨이 얼마나 벅찬 것인지를 알고, 없어본 자만이 있음의 가치를 알고, 헤어져 본 자만이 만남의 희열을 안다. 가만히 있는 것은 퇴보구나. 글쓰기는 언어를 통한 존재의 확인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재미있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글은 감흠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쓴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 그대,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무엇보다 삶과 사랑에 빠져라. 생에 대한 열렬한 에너지가 독자를 매료시킬 것이니, 그것이 매력있느느 저자가 되는 첫걸음이다.
[2장 / 어떻게 글쓰기를 할 것인가?] 사랑에는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운명인 '아모르', 상대를 위해 무조건 헌신하고 싶은 '아가페', 그리고 육체적인 일치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는 '에로스'가 있어, 이 세가지가 고루 균형을 이루어야 완성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아가페만 발달한다면 자칫 희생에 그칠 우려가 있고, 에로스만 부각된다면 불장난이 되기 쉬울 것이다. 일기나 모닝 페이지, 부치지 않을 편지 등을 쓰면서 자기 표현했을 떄의 즐거움을 맛보라. 책을 한 권 쓴다면 영감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나 자신과 단 한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한 줄 한 줄 채워 나가는 끈기와 책임감이 필요하다. 나의 삶, 나의 경험에서 우러난 그 말이 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드러내는 용기와 글쓰기에 대한 불굴의 열정뿐인지도 모른다. 그저 힘을 빼고 쓰기만 해도 직관의 위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은 나에게서 시작되었으되 반드시 너를 향해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언어의 사회적 약속인 문법에 충실해야 하며, 기초적인 글쓰기 원칙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간결하게 쓰기, 글 하나에 한 가지 생각만 담기,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기 이 세가지만 숙지해도 글을 쓰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이성과 합리로만 쓰는 글은 나의 내면을 울리지 못하여, 내적으로 치유 효과가 적고 외적으로는 한정된 글밖에 나올 수 없어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브랜드를 갖기 위한 방법 중에는 책 쓰기가 으뜸이다. 책을 쓰는 것은 글쓰기와 또 달라서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하다. 안다는 것은 실천한다는 뜻이다. 매번 쓸 떄마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한두 번 좋은 글을 썼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좋은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주제에 대해 생각이 무르익고 머릿속에서 생각 덩어리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문장으로 바꿔 눈앞에 보여주는 것은 직관의 작용이다. 그러니 잘 쓰려고 하는 마음을 비우고, 기꺼이 나의 직관을 믿으며 쓸 때 훨씬 나은 글이 나온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 무의식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안 될것이니 저 싶은 곳의 목소리가 올라오도록 나를 자유롭게 풀어 주자ㅏ. 꿈은 무의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무식식은 의식을 지탱하는 심연과 같다. 겨우 꼭짓점만 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빙산처럼, 무의식은 어마어마하게 큰 이미지 영역으로 아직 탐사가 안 된 만큼 거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자동기술'이란 될 수 있는 한 의식의 조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쓰는 것이 생각이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손으로 하는 생각'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서느느 굉장히 정확히 판단을 내린다. 내일이 아니니 자동적으로 객관화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일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면 되겠네!' 살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부분 남의 마음이 내 맘 같지 않아서 일어나는 갈등과 우여곡절이 아닌가. 이럴 때 나를 객관적으로 보고 내 일이나 남의 일을 같은 비중으로 바라보면, 내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게 되어 서운하거나 괴로운 일이 대폭 줄어들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미스토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중간 기록이다. 평생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며 산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내게도 엄연한 삶이 있고 남들 못지 않은 사연이 있는데 말이다. 뜨겁게 몰두했던 일이나 사람이 별것 아닌 것으로 밀려 가는 것을 보며 다시 무언가에 마음을 주는 일이 겁나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로 넘쳐 나는 세상에 내 이야기를 펼쳐 놓는 것이다. 혼자만 보든 블로그에 올리든 상관없이 미스토리의 위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살아온 날을 글로 옮겨 놓으면 무엇보다 삶이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그 일을 불러온 것이 엄연히 나 자신이었던 것이 확인되므로 남을 탓하지 않게 된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분명해진다. 나의 삶을 한발 떨어진 곳에 놓고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은 중요하다. 때로 남의 일처럼 살아 보라.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는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아무리 외롭고 두려울지라도 혼자 결정하고 걸어갈 수밖에 없다. 결정에 대한 책임도 물론 나에게 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장 많은 참고자료가 쌓여 있는 곳은 이제껏 내가 살아온 삶이다. 독특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여 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 골라 다니는 기질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나답게' 사는 것에 더 가까워진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 아니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내 느낌을 잘 들여다보고 존중하는 습관이 필요한데 이를 기르는 데 글쓰기가 최고다. 내 느낌과 욕구에 자신이 있으면 무엇을 결정하는 일이 힘들 까닭이 없다. 스스로 즐기고 몰두한 과정 자체가 성공이니 실패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다. 스스로 이끌고 만들어 가는 셀프 리더self -leader의 삶, 글쓰기 안에 있다. 구본형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그대에게 가장 중요하게 각인되어 있는 사건만을 추려라. 떄로 기억은 무책임할 정도로 모호하지만 중요한 것은 '있었던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 일이 내게 끼친 영향이니 괜찮다. 무수한 회상과 즐거운 거짓말을 통해 나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 낼 수 있다면 나는 헛산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삶이 살아서 펄떡거리며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고 과거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시간의 교훈을 얻어 올 수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속마음을 펼쳐 놓다 보면 속이 시원해 진다. 일기는 하루를 두 번 살게 해 준다. 일기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일기에는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꿈과 계획이 실린다. 이것을 매일 반복할 경우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내재된 가능성을 힘들이지 않고 끌어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으면 꿈이 실현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시각화 능력이 뛰어날수록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 날마다 원하는 것을 생생하게 떠올려라. 좋은 삶을 이루는 원칙은 의외로 단순한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좋은 삶을 살고 싶다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라' 평생을 잘 살려고 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의미있는 시간으로 채우다 보면 그대는 어느새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우선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그에 닿기 위한 핵심적인 행위를 매일 하라. 선언은 하루를 깔끔하게 매듭짓고 잠재의식 속에 내가 이루고 싶은 미래상을 각인시키는 행위다. 절대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말을 쓰면 안된다. 사실-느낌-교훈-선언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긍정으로 무장하게 되면 실수나 실패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길든 짧든 어차피 사람은 시한부 인생 아닌가요?" 사람의 기분이란 이런 것이다. 지극히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과거의 긍정적 경험이나 추억을 하나 떠올려 보세요. 오늘 감사할 일은 무엇이 있나요? 오늘 스스로 선택한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 생활하면서 새롭게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원하는 미래의 모습 중에서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사람들은 잘하는 일, 잘되어 가는 일은 당연시하고 실수나 비관적인 경험에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는 삶을 뒤집어 버리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글쓰기 방법론은 '나'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사고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가능한 모든 경험을 해 볼것을 그녀는 강력하게 선동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쓸 권리"가 있다. 나의 느낌에 집중하여 글을 생산하는 일은 최고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호응을 얻거나 세상의 기회를 얻는 일은 그다음 일이다. 아무런 기대치도 없이 그 순간에 몰입할 때 좋은 글이 나온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지 말고 오직 나를 기쁘게 하는 글쓰기에 집중하라고 한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 이 절대 긍정을 글쓰기가 주는 것이다. 소망은 홀로 주어지지 않는다_리처드 바크 모든 잠재된 재능의 핵심에는 자각과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성취하려면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자각, 그리고 끈기와 인내심만 있으면 가치있는 일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재능이란 일종의 정신력이다._에릭 호퍼 나에게서 시작되었으되 너에게로 향한느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후대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며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 낸다. 내가 쓴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의 종을 울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글의 목적은 '공명'이다. '공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자부심과 생명력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자의 특징이다. 하고 싶은 말이 무르익었을 때 그중 간절한 말을 쓸 것! 거기에 몇 가지 글쓰기 원칙을 염두에 두면, 누구나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다. 1. 첫문장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잡아채라. 2. 글 하나에 한 가지 생각만 넣어라 3) 간결하게 써라 4) 글이 아니라 말을 지어라 5)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신선한 재료를 모아서 즉시 조리하라', '모든 곳에서 관련된 것을 찾아내어 연결하라' 첫 문장 혹은 첫 단락은 열차를 끌고 가는 기관차와 같다. 첫 문장은 중요한 사명 두 가지를 완수해야 한다. 읽고싶은 마음이 들도록 독자의 눈길을 잡아챌 것, 그리고 뒤따라오는 문장을 힘 있게 견인할 것. 그렇다면 글의 처음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곧바로 주제로 들어가라', 이것이 정답이다. 그는 항상 덥다, 나는 항상 춥다. 읽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도 괜찮다. 아무도 보느느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족해하는 모습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애심이 삶의 기본' 좋은 서두는 읽는 사람에게 글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관문이며, 쓰는 이에게는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혀 끝에 쫙 달라붙는 '내 말'이면서, 읽는 사람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서두가 떠오를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기본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체가 개인적이고 심리적이며 섬세한 것 무엇이든 세상에 대고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겨 적는 것. 이것이 없이는 다른 어떤 행위도 쓸데 없다. 글 하나에 한 가지 생각이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오직 쓰느냐 안 쓰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창의성은 실행력이다. '내가 하고싶은 말을 정확하게 표현했는가'이다. 정확한 전달을 위해서는 간결하게 쓰는 습관이 첫째다. 다루고 싶은 내용을 다 다루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되 각각의 문장을 간소하게 만들라는 뜻이다. 한 호흡으로 읽기에 적당한 문장은 40자 안팎이라고 한다.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은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명료한 생각에서 명료한 글이 나온다. 주제를 펴 나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 어휘나 문장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좋다. 문장 하나하나는 빼어난데, 글을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글을 쓸 떄도 말을 할 떄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살려야 좋은 글이 된다. "우리가 날마다 입으로 지껄이고 있는 말, 꼭 하고 싶은 절실한 말, 참아도 참아도 기어코 터져 나오는 말, 지워도 지워도 끝내 남는 말"을 글로 쓰라고 한다. "글쓰기를 할 때는 글이 아니라 말을 짓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라" 글쓰기의 형식보다도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자" "대화로 편히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니면 글로 쓰지 말자" 모든 글은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를 드러냄으로써 읽는 사람을 나의 세계로 초대한다. 독자는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사람'을 원한다. 두드리면 소리가 나는 북처럼 좋으면 좋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아낌없이 감정을 표현하자. 글을 쓸 때도 이 말을 들려주고 싶은 딱 한사람을 생각하면서 쓰면 좋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려고 욕심내면 글이 산으로 가지만, 한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글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글에도 말처럼 리듬이 필요하다. 소리 내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입에 붙는 맛을 느껴 보라. 자연스럽게 읽히고 매끄럽게 들리는 글이 좋은 글이다.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사랑했을 때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 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언어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걸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건 오직 형식적인 것들뿐이예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시고, 잊지 못할 음식을 드시고, 그날의 기분과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 놓으세요.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홍록기가 출연해 자기는 여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럴듯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이겠구나 싶었다. 바로 이것,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울었다고 말하지 말고, 그 사람으르 직접 무대에 올려서 울게 하라" 너를 사랑한다고 5백 번 말해도 그 사랑을 느끼게 해 주지 못한다면 공허하단 얘기다. 말보다 특정 몸짓, 마음짓을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사랑을 떠올리게 하면 성공이다. 확인할 수 없는 마음 하나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온몸이 찌릿해진다. 읽고 나서 그림이 그려지는 글이 좋은 글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재빠르게 조언을 일삼았을까? 조언보다 공감이 먼저라는 사실, 아니 공감이 없이는 어떤 조언도 스며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꺠닫고 난 뒤 나는 우선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한다. 위로도 나쁘지 않지만 공감만은 못하다. 위로는 비 오는 날 우산이 없는 친구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과 같다. 냉정하게 말하면 위로에는 비 맞을 일이 없는 자의 우월감이 없지 않다. 반면 공감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가만히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이다. 사례는 작고, 쉽고, 구체적이어서 좋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다 언제고 활용할 만한 사례를 접하면 반드시 메모해두자. 탁월한 기억력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주는 단서가 훨씬 풍부하다. 인용의 적합성에 따라 글의 품격이 달라진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이 찌릿하도록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를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 그가 누구이든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하기! 그것만이 내가 온전하게 살아 있는 방법이 될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정보가 아닌 사람을 보여주어라! '나'르르 보여주지 않고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마음을 짐작하지 말고 말과 행동을 보여 주라. '뙤약볕 속에서도 서로 손을 잡고 담벼락을 파랗게 덮어가는 담쟁이' 독자로 하여금 확실하게 감정 이입이 되는 글을 쓰라! 인풋의 질이 달라진다면 아웃풋 또한 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 "누구를 위해 쓰는가? 근본적인 문제인 만큼 근본적인 답이 있다. 자신을 위해 쓴다. 엄청난 수의 청중을 머릿속에 그리지 말자. 그런 처중은 없다. 독자들은 모두 서로 다른 사람이다. 편집자들이 어떤 종류의 글을 출판하고 싶어 할지 사람들이 어떤 글을 읽고 싶어 할지는 생각하지 말자. 편집자와 독자는 막상 글을 읽을 때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읽고 싶은지 모른다. 게다가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좋은 글의 요건은 '명료함'과 '인간적인 온기'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쓰인 글은 아닐 것이다.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겠는 글은 최악의 글이다. 최후의 비밀문서는 '인간적인 온기', 이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적인 온기가 담긴 글을 다른 말로 하면 글 쓴 사람이 드러나는 글이라고 할수 있다. 글을 쓰면서 고심해야 할 것은 얼마나 내 감정에 솔직했는지,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그뿐인 것이다. '너 자신이 되어라!' "궁극적으로 글 쓰는 이가 팔아야 하는 것은 그의 주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보여줄 것이 많은 사람,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구나 마음이 다잡아졌다. 주제를 갖고 글을 쓰느느 것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문장이 아니라 맥락이다. 독자가 한 권의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커다란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 참신하거나 조금 재미있거나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그로 인해 마음이 따스해져서 '역시 인생은 살 만한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 하고 잠시 낯선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첫걸음을 떼어 놓자. 저울질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자신을 믿는 것이 재능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을 믿는 사람을 믿어 준다. 글이 생각이듯 책도 생각이다.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라. 누구나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리라. 행복에는 많은 것이 필요 없다. 실패가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짐을 내려 놓으라 바로 지금, 그대의 인생을 살라 육체의 기쁨을 만끽하라 살아있는 동안 경험 속으로 뛰어 들라 죽음을 끌어안고 삶을 감탄하라 사랑하라, 정말 사랑하라 잘하면 그대는 스스로 만들어 낸 영역의 창시자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주 좁히라는 것이다. '양에서 질이 나온다' '쓰면서 생각하라' "난 자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15분 만에 가르쳐 줄 수가 있네. 그러면 자네가 해야할 건 집에 돌아가서 15년 동안 연습하는 거야." - 데릭젠슨, <네 멋대로 써라> 중에서 글은 혼자 쓰느느 것이다. 글으르 잘 쓰는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해 주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글을 쓰면서 행복해야 한다. 기능만으로는 안된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라. 단순한 주장만으로는 안된다, 스토리를 겸비해야 한다. 집중만으로는 안 된다, 조화를 이루어라. 논리만으로는 안된다, 공감이 필요하다. 진지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놀이가 되어야 한다. 물질의 축적만으로는 안 된다, 의미르르 추구해야 한다. 현대르르 이끄는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창작자들'이다. 배우지 않고 행하는 예술 untaught art에 도전하라. 스스로 몰입하여 즐기는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전염될 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회가 열리기도 하리라. 당신이 무상의 정열으르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을 찾아라! 당신만의 untaught art를 발굴하라!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맘껏 탄복하고 칭송할 수 있는 대상을 갖고 있으면 뜻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만 해도 부러운 사람을 한두 명 간직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나로서는 꿈도 못 꿀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촌사람 특유의 무표정이지만 삶에 대해서는 간절할 정도로 존재감을 느낍니다. 사물이 망막에 비쳐 보이는 것도 행복하고, 음식을 먹을 때 식감이 느껴지는 것도 행복하고, 숨 쉰다는 것 자체가 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좋을 때가 많아요."
[3장 /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읽는 맛을 알고 있는 사람이 글쓰기의 위력을 모를 리가 없다. 불안하다면 부지런히 글을 써라. 그리고 활자로 묘사된 자신을 확보해라. 스타일은 나중이고 이야기가 먼저다. 창피해도 부끄러워도 내 안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보여 주고 들려준다. 벗으세요. 벗지 않으면 공감은 없어요. 멋 부리지 마세요. 멋 부려도 공감은 없어요. 나는 쾌락에 높은 점수를 준다. 즐거움은 우리 삶의 목적이자 자발성의 원천이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반사회적이지만 않다면 살면서 접하는 어떤 쾌락도 지탄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심각해지면 말부터 헛 나온다. 부담스러울수록 경쾌하고 가볍게. 어깨에 힘을 빼고 언제나 놀이처럼. 내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은 오직 오늘 일만 생각하자. 그래야 괜한 죄책감 없이 기꺼이 즐길 수 있다. 자기 감정에 순도 높게 반응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숨겨진 의식을 도발하고 대리 만족의 기쁨을 준다. 무리하지 말자. 내 능력의 80퍼센트까지만 한다. 나머지는 그냥 남겨 둔다. 힘들면 늙는다. 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조미료 때문에 이 요리나 저 요리나 맛이 똑 같으느 그저 그런 음식점이 떠오르곤 한다. 어쩌지. 뭐가 되었든 ㅋㅋ 거리며 웃을 수 있는 펀치나인이 숨어 있는 그림이면 좋겠다. 심각하거나 진지한 주제를 다룰수록 일단 ㅋㅋ이 튀어나와야 한다. 유머는 결코 외면당하는 법이 없다. 그저 즐거움을 따라가며 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모든 것을 얻게 된 그.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서 나오는 원초적 에너지가 그 사람을 빛나게 하고, 힘든 훈련을 버티게 하고, 결국 원하는 곳에 서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노는 만큼만 그리자. 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해라. 행동이 달라지지 않고 다른 삶을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정신병자다. 갈 곳을 모르면서 그곳에 닿기를 기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Design first! 우선 갈 곳부터 정하라. '글쓴이가 드러나는 글이 좋은 글' "가정에서의 성공에 목숨을 걸어라. 다른 곳에서 성공해도 가정에서 실패하면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아니"라느느 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될 때에만 감화를 받는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보지 않고 신경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사소한 것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기술이다. 목표는 그 자체보다도 목표가 주는 에너지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목표는 그것을 달성하든 못 하든 생활을 위대하게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얼굴이 맑고 평화로워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고, 그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10 분이 나의 내일을 결정한다> 너무 익숙하여 편안해진 것을 멈추려면, 그 안락함을 뛰어넘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성공이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단식을 함으로써 그는 기름지고 호의호식하는 생활에 제동을 걸었다. 그 첫 번쨰 단식 이후로 그는 요즘도 수시로 단식을 한다. 그로써 내 몸을 내 맘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 훨씬 조금 먹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단식이라는 상징성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애쓰기보다 더 좋은 것을 추구하게끔 해 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여러 사람이 걸어가서 확연히 자리가 난 길을 걸어가는 것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하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도 일정한 성과물을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 우리는 성과를 통해 작은 성공을 맛본다. 이 만족감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에 작은 성공은 큰 성공을 불러온다. 한 분야에서의 성공이 다른 분야로 전이되기도 한다. 따라서 꾸준히 한길을 가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성과물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좋다고 인정한 것에 전력투구하는 스타일 작은 일이 큰 일의 빌미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 과욕이 업다. 힘써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잇속으르 뛰어 넘은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지향함녀서도 '100퍼센트 솔직해서는 안된다. 20퍼센트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한다'는 태도르르 견지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성공이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가 만들어 낸 표현을 널리 사용하며, 내가 만들어 낸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쁨이 어디 있으랴. 음식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생각 없이 진행되는 일상에 제동을 걸어라, 무슨일이 있어도 새벽 두 시간은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다른 사람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하라, 책 쓰기를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아라, 직장인의 생명은 필살기다, 인생을 시처럼 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충분히 보람있는 일이다.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스며들어 가는 기분을 나도 느껴 보고 싶다. '자기로서' 살아간다는 것 다른 사람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하고, 추상적인 성공이 아닌 어제보다 아름다운 하루를 기획한다.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세상에 많이 내줄 수 있는 사람이 부자라는 것이다. 일은 사회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며, 내가 쓸모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통로다. 일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좋은 것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랑보다 좋고, 의미의 최고봉을 맛볼 수 있어서 여행보다 좋고, 나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인정해 주어서 친구보다 좋다. 자신감을 가지고 꾸준히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편안하게 떠오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좀처럼 꺼내 놓기 어려운 부분까지 샅샅이 뒤져 보라. 자기 노출이 걱정되어 내 이야기가 아니니 듯 슬쩍 소설로 위장하여 세상으로 내보내고 싶을 때도 있으리니, 그때가 바로 창작의 시작이지 뭐겠는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랑을 약속하고 도전을 계속하며 내 삶을 의미있게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고, 글쓰기는 그런 사람들의 것이다. 글쓰기란 바른 생활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공연히 나 혼자 그러는 거지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확고한 집필 철학을 세우기 전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말도 못하는 신중파보다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면 무조건 쓰면서 생각하는 행동파가 발전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한다. 아이템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서 될때까지 밀어붙이느느 자세가 필요하다ㅏ. 주제 있는 글로 에너지르르 집결시켜야 한다. 무작정 많은 것을 알아야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매혹적인 관점을 가지고 정렬시키느냐가 관건이니 초점과 구성력 등 꼭 필요한 작업에 매진하면 될 것이다. 게으름을 '경미한 우울증'이라고 응징한다. 살면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없어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벌떡 일으켜 움직이게 할 만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니 얼마나 슬프로 착잡한 일인가! 실체가 없는 가짜 두려움은 실행력 앞에서 안개처럼 사라질 거싱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이것 한 가지만 단단히 알고 있어도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갈등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미 해답이 나와 있는 것에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성공이 곧 목표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주석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단히 목표 지향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으며, 하루하루 오로지 그것을 이루는 데에만 전념한다.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은 성공의 최대 기술이다. 목표는 긍정적인 정신을 꺠우고 목표 달성을 위한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해방시킨다. 목표가 없으면 삶의 풍랑 속에서 표류하며 흘러갈 뿐이다. 목표가 있으면 마치 화살과도 같이 표적을 향하여 곧장 날아간다." 도달할 목표를 갖고 있으면 습관적인 자기 회의에 빠져 유실되는 시간도 줄어든다. 무슨 일이든 결의를 품을 때에는 이 일에 전력투구하겠다는 비장함 못지 않게, 못할 것도 없지 하는 자신감이 함께 요구된다. 그 간발의 차이가 그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가능한 한 크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가능한 한 크게 표현하는 것을 토크 빅talk big이라 하고, 그런 사람을 빅 토커라고 한다. 현실은 점점 말의 리드를 받기 때문에 빅 토커에게는 행복을 끌어당기는 힘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확신이 있고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이상형을 상정해 놓고, 그 인물과 비슷해지기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의 비밀이요, 빅 토커의 원동력이 아닐까. 결국 인생에 대한 기대치가 필요하다. 명확한 그림이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얻게 된다. 상상할 수 있는 한 커다란 꿈을 꾸라. '꿈은 보이는 곳에 있으되 손에 닿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느느 말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비전이 아니라면 그대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라. 그것에 대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잠재의식을 세뇌시켜라. 그대의 상상력과 실행력이 이 세상에 펼쳐 놓는 그대의 이야기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아면 삶도 멈춘다. 역량감은 눈에 보이는 자신감이다. 역량감은 냉정한 자기평가를 기초로 생겨난다. 무슨 일이고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니라, 나의 기질에 부합한 일을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이룰 수 있겠다는 전망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균형과 조화이며, '또는or'이 아닌 '그리고and'이며, 진실은 흑백이 아닌 회색지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서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다. 성공만큼이나 실패에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은 역량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쓰는 대로 이루어 진다.' 근면한 실행력을 가지고 있는 힘껏 살아서, "삶은 내 의도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번 살아 보자. 어떤 기억도 '이야기'의 형태로 보존되고 전달된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쌓아간다.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은 기억은 망각속으로 미끄러져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이렇게 보면 우리 모두 자기 인생의 작가인 셈이다. 우리는 인생경험을 재료로 새로우누 이야기를 펼쳐 가는 저자다. '실수는 모든 사람이 한다, 실수란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신의 배려'라는 그녀의 절대 긍정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이야기적인 세계관을 가지면 어지간한 실수나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어떻게든 이 갈등을 해소하고 해피엔드를 만드는 것이 주인공인 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인생 최고의 기쁨이다. 자기 분야에 대한 헌신이 우리의 삶의 핵심이다. 2011년부터 매년 열흘 이상 해외여행을 갔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살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내 안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보편적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넘어 '아는 만큼 사랑할'수 있어서, 여행은 나를 열린 마음을 가진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나게 해 주었다. 여행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인데, 그것을 다시 책으로 재창조했으니 얼마나 귀한 성과인가! 나는 여행하기 위해 글을 쓰고, 글쓰기 위해 여행하는 일을 계속 한다. '어디를 가든 나 자신만을 들여다보기, 그곳을 있느느 그대로 바라보기, 나는 열어 그들과 관계맺기,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2015년 출간한 나의 다섯번째 책은 20만 부가 팔려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꼭 대박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 돈보다 영광이랄까, 이제껏 살면서 한 번도 나 자신에게 빛나는 면류관을 씌워주지 못했다는 생각에서다.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다는 것은 세속적인 욕심이라기보다 나를 계속 걸어가게 하는 힘이요, 내 인생에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싶은 자기애의 상징이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넓이'가 아니라 '깊디'다. 나는 언제까지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호기심과 행동력을 갖고 싶고 그를 통해 이 세상에 없던 가치를 더하고 싶다. "저 사람은 그게 매력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공들여야 겠다. 내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여 운명의 주인이 되고, 세상에 열려 있으며 힘써 노력하여 내가 갖고 태어난 것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성공이리라.
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꽃과 술과 촛불이 있어요 당신이 안 오시면 이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당신 오신다면 또한 이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_ 잘랄루딘 루미
가까운 친구(언니)님에게서 선물 받은 보통의 존재_ 이석원님의 산문집, 표지의 노랭이 커버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산문집이다. 이런 글이 쓰고 싶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잘쓰려면 인생 이렇게 더럽게 꼬이고 아파야 하고 그런건가_ 싶은 생각도 든다. 그만큼 인생이 써야 한다더라. 말랑말랑 행복한 인생을 적어내면 안되나? 왜 아프기만하고 쓰리기만 해야 멋진 글이 나오냔 말이다. 그런건 아닐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감이 붙은 건_ 음. 소재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뭐라 딱히 꼬집기 어렵지만, 음.. 그런거 있어.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행위가 여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 그 느낌이 이렇게나 따뜻하고 애틋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눈물겹다. 잠시 잠깐 만난 사이에서는 결코 손을 잡고 영화를 보거나 거리를 걷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으니까. 손을 잡는다는 것은 그처럼 온전한 마음의 표현이다. 누구든 아무하고나 잘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무하고나 손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잡는 것이 좋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이처럼 끝을 앞에 두고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전히 황홀한 사랑을 시작한다.
사랑과 열정은 한 몸이 아니었다. 열정이 식는다고 사랑도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굳게 결속한 이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그것이 왜 절망이 되지 않는지, 어떻게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다. 그럴 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어느 날 정열이 사라져버린 상태를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긴 호흡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어쩌면 나는 제대로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으면서 너무 빨리 사랑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 스무 살이 넘어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모든 시공간이 저지한 채 오직 너와 나만이 존재하던 시간들. 그러나 더욱 잊을 수 없느느 순간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내 마음이 멀어지는 걸 느끼던 순간이었다.
[사생활] 하나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그것이 장편이든 단편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간에 상관없이 어떤 글이건 완성되기 전 작업 과정에 있어서만은 그 내밀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자는 완성되기 전 채 여물지 않은 글의 모자람을 애써 엿보려 해서느느 안 되고 작자는 중간에 섣불리 공개하는 실수를 범하지도 말아야 한다. 과정은 언제나 비밀에 붙여져야 하며 사생활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정이란 그 결과에 비하면 이토록 수고롭고 민망한 장면들이 많이도 연출되는 절차인 것이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이 쌓여 있는 내 방 창틀의 불결함도 나로선 그리 불쾌하지 않게 묵과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생활 범주 안의 더러움이기 때문이다. 더러워도 내 것이라면 괜찮은 법. 모든 비밀이 없어졌을 때, 상대의 신비로움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공개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꿈] "그럼,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은 어떡하지요?" 난 꿈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어달리기]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한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죄 없는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사랑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아.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그렇지. 그래도 난 네가 그 사람하고 뭔가를 시작했으면 좋겠어.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바보 같은 일은 없으니까."
[산책]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남루하고 힘겨운 삶마저 나의 산책로를 장식하는 풍경의 일부였다. 그분들에겐 죄송하지만 내가 늘 마주쳤던 그분들의 모습은 늘 내게 어떤 상념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첫째 매형 김연기] 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친구]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당신에 대해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거죠.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난 나에 대해서만 솔직해요. 우리가 싸운 적이 있거나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이 열 받은 적이 있었는지. 그런적이 있다면 우린 친구예요. 좋아해서 그런 겁니다.
[박쥐] 연애라는 게 뭘까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나 홀로 있다가 아무도 없는 세상에 둘이서만 있게 되는 게 연애 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외롭지 않게 되는 건 아니지요. 아무도 없는 세상에 기껏해야 한 사람이 더 생기는 것에 불과하니까.
[해파리] 늙음을 감당하는 방식은 다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사랑의 종말에 대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사랑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겁니까. 아니면 사랑해서 하는 겁니까?" 일단 싹이 트기 시작하면 두려움과 결심만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종말과 상처에 대한 이 모든 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누구든 바로 모든 사랑의 단계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처음'의 순간으르 피할 수는 없게 되죠. '다시느느 이런 기분 느끼기 싫었는데... 한 줌 재만도 못한 이런 허망한 신기루 따위 결코 다시 맛보기는 싫었는데.' 이제 조금 있으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차올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벅찬 기분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르르 해도 헤어짐은 언제나 새롭고 낯설고 가슴 아플 수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말이죠.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당신을 믿어요, 라고 말해줄 수 없어요. 만약 믿는다고 말한다 해도 그건 거짓말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겠죠. 수조 안의 작고 아름다운 해파리들을 보면서 남자는 자신들의 초라한 처지를 떠올렸지만 정작 그 작은 생명체들은 그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습니다. 마치 행복한 몽유병자들처럼 즐거이 헤엄치는 해파리들에게서 두려움이란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바로 그때, 여자가 남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보내는 따스한 체옴으로 눈물겹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너를 사랑해도 괜찮은 거냐고.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잠깐 즐길 순 있어도 마음을 아예 내어줄 순 없다는 얘기지.
[고통이 나에게 준 것] 인생의 굴곡이 험준할수록 작품에도 그만큼 진한 드라마가 담기기 마련이니까.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오해] 당신의 결심이 굳고 단단하면 할수록 난 오히려 그게 당신의 피해의식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안쓰러웠어.
[위대한 유산]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내가 정말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뿐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인생이란 사랑할 대상을 골라서 사랑하도록 허용하지는 않는다는 것 뿐. 그러나 그 불공평함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게임의 승부는 누가 하루라도 더 빨리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별뒤의 사랑] 생각해보면 아득한 기분이 듭니다. 아직도 친구로서의 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 예전에 저와 사귀었던 사람들이 한때 얼마나 열렬히 서로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던 사이였던가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편안한 감정이 한편으로 슬프기도 한 것이죠. 씁쓸하지만 헤어짐이 쉬워진 대신 이제는 헤어짐조차 영원하지 않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연애의 풍경] 그리고 그 웃음을 보며 나는 전율했다. 예전 누군가에게서 보았던 바로 그 표정이었거든. 순간을 즐기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사랑한다. 우리는 반드시 헤어질 테지만 내 일생의 연인은 바로 네가 될 거야.
[세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자신의 입장과 시각으로 타인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이란 어쩌면 타인에 의해 인식되는 것외에 다른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잔은 실패한 것 아닐까?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돌이켜보면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사람은 아홉 살이 될 떄마다 이제 바뀔 나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지. 믿을 수 없는 나이는 마침내 현실이 되었어. 역시 조언이란 건 남의 상황을 빌어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해바라기] 소나기는 정말로 운치와 재치가 있거든. 어렸을 땐 참 그렇게 뭐든지 컸고 진했다.
[오, 나의 음식들아!] 음식이란 기본적으로 나쁜 놈들이다. 왜냐하면 맛있는 건 전부 다 몸에 안 좋으니까.
[말과 선언] 이제 나는 너에게서 완벽히 자유롭다고 말하는 순간, 깨닫는다. 결코 아직은 그럴 수 없음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 없이, 정말로 순수하고 영원하게 느껴지는 그 말들을 듣고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들이 그립다. 나를 황홀하게 했던 수많은 말들은 언제나 내 귀에 들려온 순간 사라져버렸다. 말이란 이처럼 존재와 동시에 소멸해버리기에 그토록 부질없고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친구를 가리는 법]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기쁨을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사] 마음이란 뭐든 떠나게 된 후라야 관대해지는 것인가 보다.
[함께 산다는 것] 감정이라는 건 도대체 미움이 개입되지 않으면 깊어질 수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보통의 존재]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 결국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추기이자 꾸밈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산다는 건 그저 약간의 안도감을 가지고 시내 대형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고르는 것에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 위험한 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주유가 있다. 따라서 그는 얼마든지 안락과 정착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자시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위한 노력을 쉽사리 포기한다면... 하여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은 허무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해 진다.
[죽음에 관한 상상] 죽음이 사람을 슬픔으로 열 오르게 하는 건 다시는 볼 수 없는 영원한 헤어짐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어요] 저에게 말을 놓자고 하면서 오늘 끝장을 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이기도 하거니와 원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친한 친구와도 그러질 않는 내가 그 사람한테 굳이 맞춰줄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사람들하고 가까워지는 게 싫어. 왠지 알아? 어떻게 가까워지는 건지 모르니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타인이란 존재는 절대적입니다. 나의 말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말이 될 수 있고, 나의 행동과 내가 빚어내는 모든 결과물들은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라는 것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지인이 아무리 많다 한들 친구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남은 세월, 저의 새로운 친구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정의 거미줄을 촘촘히 쳐놓은 채 단 한사람이라도 나와 생각과 취향이 비슷하며, 나에게 동류라는 동질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사람, 같은 것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유머의 코드가 맞는 사람,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묵묵히 기다리다 언젠가 그물에 누군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서 나를 보여주고 마음을 열 생각입니다. 역시 친구를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단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일 테니까요.
[상처] '남들도 다 외롭다는 사실마저 위로가 되지 않을 땐 책을 읽어봐. 조금은 나아질 거야.'
[공격과 수비] 운동경기와 달리 인생이란 공격보다는 수비가 더욱 중요한 일일지 모른다고. 한 열 배쯤.
[궁금하세요?] 내 머릿속이 궁금하세요? 그럼 당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세요. 똑 같으니까.
[함께 산다는 것-결혼 이야기] 사람이 외로워서 연애를 해봐도 여전히 외로운 것처럼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처방, 혹은 선택이 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삶과 죽음] 누군가의 죽음을 접하고 감당키 어려운 슬픔을 느낄 때면 우리는 '죽음이란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그러나 기어이 뒤따라오는 질문은 결국, '삶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가 음악 안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그래서 죽음과 삶이란 정말이지 지척에 있나 봅니다.
[로망]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자신이 보통의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에 불과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차트] 그런데 결코 어떤 순위에도 함부로 놓을 수 없는 초월적인 가치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일반적인 기준으로 다른 것들과 저울질하면 순위는 말도 안 되게 내려간다. 도대체 사랑은 몇 번째 순위일까. 누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사랑이라 했을까. 그래서 사랑은 0순위이다. 때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차트에서 사람은 경우에 따라 돈과 가족을 놓고도 저울질을 할 수 있지만,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결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게 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결속] 진정으로 굳은 결속은 대화가 끊기지 않는 사이가 아니라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사이를 말한다.
[거짓말] 말하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반은 거짓말이야. 어쨌든 숨기는 거니까.
[품 안의 애인] 헤어지는 게 잘하는 것인지는 헤어져봐야 안다. 그게 문제다.
[두려움] 세상의 수많은 두려움 중에서 아주 일상적으로 언제나 마주치는 것.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당신의 사람 세상을 지옥에서 천당으로 바꾸는 방법] 마음이 작은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이나 태도의 뉘앙스 같은 것들을 지레짐작해서 이럴 거야 저럴 거야 하고 속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종종 이쪽만의 오해일 때가 있지요. 그건 소심한 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으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앞으론 이런 습관을 자주 들여야 겠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는 힘들어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일이니까요. 돈을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부족함이나 오해 없이 전달해서 관계를 유지하고 돈독하게 만드는 일, 또 누군가 오해해서 싫어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거든요. 이런 일은 마음속으로 꽤나 진심을 갖고 있어도 잘 되지 않는 어려운 일이죠.
[연애는 패턴이다] 연애는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바뀌면 패턴도 바꿀 수 있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너만 그런 건 아니야] 한때는 정말이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도 있었거든.
[겉치레] 겉치레라는 거... 벗어던지기 정말 어렵다.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 차라리 허울을 다시 뒤집어쓰고라도 싶은 심정이다.
[가지 않은 길]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 시절의 모습대로 충실하게 남고 싶은 것' 더 늦기 전에 안 먹어본 것도 먹어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으르 가야지. 만나보지 않은 사람도 만나고 해보지 않은 노래도 해야 한다.
[연애는 학습니다] 연애는 학습이다. 할 때마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니까. 문제는 배운 것을 써먹게 되는 건 언제나 지금 '이 사람'이 아닌 미래의 '다음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애는 그래서 이어달리기이다. 이어달리기의 규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이 사람에게 받은 것을 그 사람에게 다시 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바통은 언제나 상관없는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공개일기 쓰는 법]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된다. 세상은 자기만 알고 있어도 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굳이 공개적으로 쓸 때엔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을 갖고 대해준다.
오빠책을 보면 인생이 얼마나 굴곡이 많았던가_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굴곡쯤은 쨉도 안되는 깊이 있는 이야기들, 그래서 오빠의 책은 있어 보인다.
옛날 오빠가 처음 회사 그만두고 여행길에 오른다고 하던 날, 배낭을 사러 가야 한다던 그날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오빠 신간이 나올 때나 이렇게 살아왔구나_ 하고 알게 되는 것 같다.
오빠의 필체는 흠. 한국어가 이런 표현도 있구나_싶은 각종 화려한 표현들이 속속 한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막 쏟아져 나온다. 거참 부럽구만_
오빠의 책을 통해 인생의 여러 모습들을 또 발견하게 되어서, 물론 그것이 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_ 좋다.
독수리는 자기 날개를 휘저으며 비상하는 새가 아니다. 독수리는 자기 날갯짓 대신에 공기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을 이요한다. 독수리는 그 기류를 찾아 들어가 날개를 펼친 상태로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soar on, 날개를 펴 날아 오르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신앙 생활은 결국 지칠 수밖에 없다. 지금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잘 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우쭐거리지 않길 바란다. 언제 풍랑이 찾아오고 언제 광풍이 불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절망하지 않길 바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의 삶을 누리는 날이 반드시올 것이기 때문이다. 관점: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또는 처지. '과연 예수님의 관점으로도 이것이 성공한 목회일까? '예수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덧입으려고 애쓰며 몸부림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기도의 내용, 기도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내 관점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기도 아닌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자신의 관점이 꺾여야 한다. 세상의 관점이 모두 녹아야 한다.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 자신이 가진 어떤 것으로도 내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을 절대 이겨낼 수 없다고 두 손 두발다 드는 순간, 바로 그때가 밤 사경이다. 내 힘으로는 안 된다며 하나님 앞에 납작 업드릴 때, 10년간의 노하우가 내 아이를 살릴 수 없다고 고백할 때, 그때가 바로 밤 사경이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신다. 영적인 밤 사경은 오늘 밤이라도 당장 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느느다면, 우리 인생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은혜를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진짜 축복은 광풍을 만나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데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위로하심이 있다면, 그것은 변장하고 찾아온 하나님의 축복이다. 예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축복이다.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 앞에 굴복시켜야 한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모두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업다.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에 대처하는 태도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흔들리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참 잘 감당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인생의 마지막 때에 "되돌아보니 나를 가장 위태롭게 했던 그 사건, 즉 위기가 내게 가장 큰 은인이었다"라고 고백하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도전적 신앙이란 모험하는 인생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모험 정신'을 부여해주셨다는 것이다. 현실에 굴복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또 반항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3의 대안, 즉 모험을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모험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홍해를 건너는 것'이다. 모험과 도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험하기를 원하신다. If you want to walk on water, you have got to get out of the boat. 마음에 신앙의 도전이 일어나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거룩한 불만'을 갖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변화해야겠다.' ' 나도 물 위를 걸어야 겠다' 라고 결단하기 바란다. 도전적 신앙이란 모험을 하되 하나님의뜻을 구하느느 것이다. 즉, 기도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모험을 하되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응답하시면 나는 거기에 반응하는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 져야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우리는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무기력하게 사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동시에 아무리 도전 정신과 모험정신이 뛰어나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도전적 신앙이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베드로는 분명히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말고 절망하지 말자. 우리는 도전 정신, 모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회복하고, 나마다 그분께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그 무엇,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엇, 인생의 풍랑에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에서 뛰어내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역사는 없다. 자신이 그것으로 인해 이만큼 살아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더 이상 비상할 수 없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청산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안주한 그 배에서 뛰어내려라! 우리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가정도 변화될 수 있다. 날마다 초라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날아갈 수 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의 자리는 돈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자리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상처사절' 상처준다고 받지 말라는 이야기다. 성도는 상처를 받지 말고 은혜를 받아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바로 보호자가 있는 인생과 보호자가 없는 인생이다. 진리는 투표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리를 붙잡는 소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우리의 말이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와야 한다. 우리가 하는 말이 능력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호자가 되심을 믿고 입으로 선포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니 나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귀에 들린대로 행해주시는 분이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해버리는 것이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칼집이 필요하다. 이것이 절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렵게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절제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하는 중요한 통로 중 하나가 절제이다. 그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는 너희 힘으로 왔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자신의 입술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할 수 없다, 우리 가정은 안 된다, 우리 아이는 제대로 자랄 수 없다 등 이런 말들을 내뱉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요셉의 '요셉 됨'은 그가 꾼 꿈이 아니라 엄청난 꿈을 현실로 응답해주신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에 있다는 사실이다. "요셉이 누렸던 형통의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형통이다. 외적인 것에 자꾸 마음을 쓰기 시작하면 내면이 무너지기 쉽다. 하나님의 내재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형통한 사람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자녀들이 요셉처럼 고난과 역경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정한 형통의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모든 상황을 이기는 '초월'이다. 감옥에서도 상처받지 않는 요셉과 같은 '초월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탁월함만 추구한다. 주는대로 다 받아와서는, 그러고 나서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해서는 안된다. 형통의 개념이 바뀌고, 축복의 개념이 바뀌고, 능력의 갠념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구하는 능력은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의 내재하심의 형통을 추구하면 이런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은 그 형통의 결과가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 내가 형통하면 이 형통의 복을 내 주변 사람이 받아 누린다는 것이다. 내가 은혜 받았다면 그 은혜의 혜택을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 아내, 자식, 시부모님, 며느리가 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통의 복은 자신의 복을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받아 누리는 것이다. "공부해서 남주자. 돈 벌어서 남주자. 은혜 받아 남주자." 은혜 받으면 베푸는 것이다. 예수 잘 믿으면 마부 노릇 더 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형통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통의 복을 누려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쁨을 유지하겠다고 결정하는 온도 조절기 같은 삶을 살았다. 우리도 온도 조절기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기로 결단하면 누구도 그것을 움직일 수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이 선하고 친절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행동하십시오. 성경은 지금 네가 행복하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관용을 베풀라고 말한다. 돌아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도와주는 사람이 다수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 5퍼센트의 소수에게 95퍼센트 머무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하나님은 준비된 소수와 일하기 원하신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일수록 자신의 일에 충성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작은 일, 보잘것없는 일,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는 그 일에 온 성심과 성의를 다할 때, 우리를 사용하신다. "양 한마리에 누가 목숨을 걸겠는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양 한마리에 목숨을 걸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했다. 하루를 살아도, 한 시간을 보내도 허투루 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좌절하지 않는 마음으르 지닌 사람을 쓰신다. 현실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상황은 어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 되신다. 우리는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라고 믿는 자들은 합격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나는 망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담대한 사람들을 불러쓰신다.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 바뀌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시각이었다. 은혜를 경험하면 상황이 어렵더라도 두려워 떨지 않는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부정적인 말을 입고 달고 다니는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 못 봤다. 하나님께서는 겸손의 능력을 아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대개 우리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신다. '겸손이 능력이다' 교만하면 죽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은혜'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헛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풍쟁이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제 납작 엎드리겠습니다. 날마다 죽겠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 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혼자 헤매는 인생길이 아니라 힘든 나를 업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진실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임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원수르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령님을 의지하는 우리안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추억을 많이 쌓는 그리스도인 교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을 잊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크심을 인정할 때, 나는 작아지는 것이다.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내 어깨에 지워진 이 무거운 짐을 거뜬히 질 수 있는 튼튼한 어깨를 구하는 인생이 되거라!"
[밑줄긋기] 누군가의 인생길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당신이 지금껏 걸어 온 인생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아요. 그러니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날만 생각하세요. 자신이 원하는 것만 잔뜩 늘어놓지 말고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진정한 연애, 행복한 결혼으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문제가 풀린다. '자기계발'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과 결혼에 필요한 것은 '남성의 시선'에서 보는 자기계발이다. '자신의 시선'이 아닌 '상대의 시선'을 생각해보면 사랑과 결혼이 어느새 성큼 다가올 거예요. 표면적인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들을 줄 알아야 해요. 지난 일은 그것대로 괜찮다. 이번 일을 계기로 주변에 휘둘리던 자신을 깨닫고 다시금 현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괴로운 사람은 자신이에요.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속도가 있답니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어중간해도 괜찮다. 일도, 결혼도, 자녀양육도 좀 어설프면 어떠랴. 다소 어설프더라도 일단 부딪혀보면 다른 묘미와 기쁨이 있기마련이다.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또 다른 행복을 맛보는 것이다.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 보세요. 돌다리는 두드려보고 단단한지 확인하려고 있는게 아니에요. 다른 쪽으로 건너가기 위해 있는 거지요. 언제까지 열심히 두드리기만 하실 건가요? "자신의 희망사항만 생각하고 상대의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다보면 자신의 현 위치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미안하지만 당신 눈에 쏙 드는 이상형은 당신보다 훨씬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이상형으로 생각할 확률이 매우 높다. 운명의 상대는 전혀 뜻밖의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건만으로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그만두자. 조건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는 실제로 만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기뻐하고 실망하고 행복해하고 슬퍼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조건에 집착하지말고 우선 '사람'을 살펴봐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한 번 만나보세요. 남자의 현재 연봉을 고민하기 보다 그와의 미래를 먼저 살펴보세요. 중요한 것은 아주 조금만 관점을 바꿔도 자신이 고집했던 기준이 의외로 사소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먼저 마음에 들면 외모도 마음에 들게 되지요. 외모 조건을 고집하기 보다는 당신만을 사랑할 남자를 찾으세요. "시선을 같은 높이에 두고 걷는다는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예요. 그건 같은 보폭으로 걷는 것과 마찬가지죠." "초속 50센티미터는 벚꽃이 공중에서 흩날리는 속도래요. 또 반딧불이가 춤추듯 날아다니는 속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금슬이 무척 좋은 부부가 바닷가를 걸을 때의 속도래요." 큰 키보다 인품의 크기를 들여다보세요. 소중한 단 한사람의 존재는 모든 사물을 보는 관점과 느낌에 영향을 미친다. 여향을 갈 때도 결국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그 재미가 달라지지 않던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에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자신에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장소와 지역에 치중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만남을 이뤘으면 좋겠다. 자신의 분수보다 높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맞추려고 애쓰며 사는 인생은 고달프다. 환경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혼은 도달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조건만으로 선택한 상대가 설령 당신을 선택했다고 해도 정말로 행복한 가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나와 다른 점이 너무 많은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애쓰며 살아야 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남자에게 당신은 어울리는 여자인가요? 또 그 남자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I like you, just as you are."(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좋아해요.) 최고로 멋진 모습으로 자신에게 온 기회를 꽉 잡으세요. 상대에게 교과서적인 예의를 원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예의들을 꼭 챙기되 그 사람의 진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열어두세요. 연락 없는 남자를 기다리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남자가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면 어떻게든 그 사실을 여자에게 알리지요. 그렇지 않다면 남자는 여자에게 반하지 않은 거예요. "많은 남자들이 자신보다 아는게 많은 여자를 부담스러워하거든요. 가끔은 알아도 모르는 척, 싫어도 안 싫은 척, 달라도 비슷한 척하는 지혜가 필요해요. 그건 똑똑함과는 완전히 다른 건데 현명하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지혜에 가깝죠," 남자들은 자신을 최고라고 느끼게 해주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 "배려는 말이죠, 상대가 즐거운지 헤아리는 마음, 무슨 말을 하면 기뻐할까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4대 6의 비율" 하고싶은 말은 40퍼센트만 하고, 듣는데 60퍼센트를 할애하라. 상대가 즐거워하는 화젯거리로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대화의 4대 6법칙을 기억하세요. 적당한 솔직함이 진짜 매력! 솔직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할 때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세. 솔직한 성격이라며 당신에 대해 숨김없이 모든 걸 말할 게 아니라 꼭 필요한 때에 상대가 궁금해하는 말만 하는 것 궁금하지 않다는 것은 더 만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도한 털털함과 솔직함은 당신을 '여자'가 아닌 '친구'로만 느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아주 조금씩은 숨기고 뜸도 들이세요. 된장녀 같은 모습보다는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중 하나이지요.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또 너무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아니다'라고 결정했다면 더 늦기전에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한다. 내키지 않는다면 과감히 되돌리세요. "상대와 함께 있는 것이 편안한가?" 결혼식이라는 분기점을 넘어서면 '결혼생활'은 일상이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서로 배려해줄 수 있는 상대,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편안한 상대와 마주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조건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편안한 상대를 만나는 일이지요. 상대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해요.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말이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먼저 정하세요, 그리고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마음속에 정해두세요." 결혼은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결혼 전이라면 답은 하나다. 남자의 나쁜 성향을 아는 순간, 당장 헤어지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남자를 고를 때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는 '성격, 가치관, 사회성'이다. 내가 원하는 가치관, 내가 원하는 사회성에 부합하는 남자를 고르라는 의미이다. 이 사람이 나와 잘 어울리는 성향인지를 먼저 살펴보자. 외모는 그 다음에 따져도 늦지 않고, 사람만 괜찮다면 당신이 그를 멋지게 변모시켜줄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안 후라야 비로소 내게 맞는 좋은 짝을 찾을 수 있어요. 그 남자가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점이다. 돈 씀씀이를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삶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씀씀이를 받아들일 감수성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정성을 보이는 일에도 서툴다는 뜻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그의 마음속 온도는 36.5도보다 조금 더 낮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해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과는 좋은 인연이 될 수 없겠지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선택을 의지하는 사람은 아직 '완전한 어른'이 안된 이이에요. 폭력은 반복된다는 습성이 있다. 공의존(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중독증으로,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보람을 느끼는 현상) 그를 너무 사랑해서, 그의 부족한 부분까지 감싸주고 변화시켜보겠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오만이며 과욕이다. 착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무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상대를 제대로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똑똑한 여성일수록 의외로 폭력적인 남성과 공의존 관계의 덫에 빠지기 쉬워요. 다만 3개월을 사귀고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3개월이라는 기간은 망설임을 끝내는 기준인 동시에 '직감을 확실히 다지기 위한 기간'이기도 하다. 부모의 의견은 참고용입니다. 판단과 선택 그리고 책임은 본인의 몫이죠. 생기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하지 말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하세요.
이 책은.. "3년 안에 결혼하기로 마음 먹어야 하지 않겠니?"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책은 쑥쑥 잘도 읽힌다. 그리고 아.. 그런게 내 문제였구나.. 싶은 구석들을 무척인나 많이 발견하게 해준책이다. 책 서평이 하도 들쑥 날쑥 이어서.. 에잇 복불복이닷! 하고 주문했는데..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 그러니까 30대의 싱글 여성들이 읽어본다면 무턱대고 눈이 높은 나를 한번쯤은 다시 돌아보게 해줄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바라보게 될 것이며, 30대에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불타는 사랑 뭐 이런것.. 보다는 정말 진지하게 내 인생을 두고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해주는 책_ 넘 거창한가? ㅋㅋ
역시 꿈은 꾸는 것도 좋지만 이루고 나면 더 좋다. 낯선 장소가 주는 불안감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삶이 주는 막연한 불안감과 그런 불안감을 조성하는 주변인들과 부단히 싸우고 있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만약에 말이다'하면서 온갖 사변을 늘어놓는 주변 사람들이 더 두렵고 무서웠다. 일단 짧은 여행이라도 한 번 떠나보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첫발을 떼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길이 또 다른 길이 이끌어준다고. 사방에서 제아무리 안 된다고 앙우성쳐도, 단 한명이라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해주는 말에 기운이 난다면 그게 바로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테니까. 역시나,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났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행의 본질이니까. 늙으면 늙은대로,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영어가 안되면 안 되는 대로. 타인의 여행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본의 현란함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면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행은 때론 우리가 만들어낸 환상이기도 하니까. 달달한 여행 후에 찾아오는 현실과의 괴리감도 결국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 "괜찮아, 그렇게 마음껏 살아도." 밀란쿤데라가 말했듯 나 역시 '청춘의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을 하면서. 한 달 정도 기차에서 자고 바게트만 먹는다고 병나지 않아요. 여러분은 젊으니까. 젊은 사람이 돈이 없는 건 당연한 거예요. "뭐든 첫 발을 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 다음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젋다는 이유 하나로 그 모든게 용서가 되는 시절이라며, 그러니 저지르라고. 아무래도 가슴에 불을 질러주는 사람이 좋다. '아, 후회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찾아오는 거구나' 꿈이란 원래 이루어지지 않는 거야.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때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경험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왕이면 심장을 쿵쿵 울리는 쪽의 말을 듣기로 했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능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나는 내 청춘에게 고한다. 젊어서 참 고마웠다고.
[슬픈 외국어] '몰라서 안 들리는 건 몇 번을 말해도 안 들린단 말이닷!' 동병상련만큼 사람을 친하게 해주는 게 또 있을까. 실존은 본질에 우선하는 걸! 언어를 배우는 데 왜 항상 목적이 있어야 하냐고, '순수한 즐거움'으로 배우는 건 왜 안 되냐고? 그래, 바로 그거라고 생각했다. 순수한 즐거움!
[여행한다면 그들처럼] "가방이 그렇게 작은 건 네가 두려워하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야" 역시 사람은 뭘 해도 잘 하는 일을 해야 해. 자기가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것, 그뿐이었다. 누구든 원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여행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는 것, 누가 뭐래도 여행은 모험이라는 것! 누가 뭐래도 여행은 자유이고 모험이다. 아무거나 걸치고 숲 속을 걸어도 얼마든지 폼이 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소중하니까!
[매일 떠나는 남자] 우리는 모두 인생을 스쳐가는 여행자들이다. 중요한 건 떠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니까. 카우치 서핑 여행을 할 땐 약간이라도 현지에 젖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제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우리는 누구나 다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편한 방식으로 살면 된다.
[언제나 청춘] 젊게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몸이든 마음이든. 청춘에는 그 시절을 살고 볼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두려운건 어쩌면 정식으로 한 번도 젊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씩씩하게 늙는게 노후 대책이 아닐까 싶다. 세상과 하는 마지막 타협이 있다면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꿈과 현실 사이] 특히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불편했어요. "평생을 현실에 맞춰 살았으니 이제 누가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그냥 내 맘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현실을 위해 꿈을 포기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허황된 꿈을 꾸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나는 먹을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먹고도 남는다. 그러나 부자들의 욕심을 채우기에는 모자란다>-간디 자본 논리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사는 건 훨씬 풍요로워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 <리얼리스트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가져라.>- 체 게바라 자신이 믿는 대로,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그게 세상이 되고 현실이 되는 시절.
[꿈을 걷다] 잘 하는 게 없다고,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다고 해서 그게 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소중한 것은 있다. 꿈이란 내 세상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는 것. 다른 누군가가 나의 꿈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세상을 사니까.
[그래야만 하는가?] "네 친구들이 좋다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곳을 찾아가야 해"
[삶은 선택]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멀리 떨어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벗어나기 위해 선택을 하는 게 꿈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도 부끄러운게 아니야. 어쨌든 이번에는 내가 선택해서 이 자리로 들어왔으니까.
[멍 때리기의 달인들] 달나라까지 다녀온 마당에 더 이상 오지란 없다. 이제 모험이란 어딘가 미지의 장소를 가는 게 아니다. 그저 다가오는 인연, 아니 우연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적당한 판단력에 따라 우연을 조율하는 것, 그것이 모험이지 아닐까 싶다.
[Listen to your body!] 머리와 마음은 참 멀다. 사람들은 실상 지는 것보다 홀로 남겨지는 걸 더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누가뭐래도 아이들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의 달인이다.
[Life is expensive!] "즐거운 건 누가 뭐래도 힘이 세요." 꿈이 있건 없건 인생은 비싼 거야!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익숙함이란 무섭다. 무엇이든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이 애초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니. 뭐든 수적으로 우세해지면 금방 익숙해지고 만다. 익숙해지고 나면 길들여지는 건 순간이다. 우리 인생이 사기 당하는 거에 비하면 5루피의 사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짇.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바라나시의 화장터] 죽임이 무엇인지 얼른 깨달아야 길을 떠날 텐데... 비록 삶과 죽음이 하나라 할지라도, 타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결코 하나가 될 수가 없다고. 어떤 삶이든 살아봐야 내 몫이 되는 것처럼 죽는 것도 결국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와 봐야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세상에 원래부터 그래야 한다는 것은 없다고,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실상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실일 뿐, 진실도 아니고 정답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건 그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여기는 고양이도 더러워] 부정적인 에너지는 멀쩡한 사람의 신경까지 갉아먹는 법이다. 강자 약자는 처음부터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든 먼저 힘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할 때 생기는 법이다. "Don't stay in your box!" 처음은 누구에게나 힘든 법, 삶이나 여행이나 예행연습 없이 치러지긴 마찬가지니까. 실제의 장소와 실제의 내가 만나 박 터지게 싸우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어쩌면 그곳에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꿈꾸는 건 자유지만 거기에 그게 없다고 화내면 곤란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딱 반절의 세상] 좀 억울하지만 이미지도 이미 나다.
[사막을 건너는 일곱 가지 방법] 최고의 방법은 늘 이렇게 최고로 간단하다. 어린왕자의 사막여우가 그랬었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여행, 그 기억과 추억 사이] 여행은 결국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건데 어차피 기억이 있어야 추억도 있는거야.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기억이 추억을 만드는 거고 추억이 있어야 생각해볼 마음도 생기는 거야. 제아무리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고 제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여행은 호락호락 깨달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잧선 장소에서 나만 여전히 낯익다. 아무것도 깨달은 게 없어도, 무언가 커다란 교훈을 얻지 않아도, 다행히 여행의 순간은 늘 기억으로 남아준다.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추억은 언제든지 내 몫으로 돌아온다. 설혹 불쾌했던 감정일지라도 인간은 지나간 시간에는 관대한 법, 인간은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잘 가라, 나의 한 마리 토끼야] 외롭지 않다는 건 다행히 아직까진 견딜 수 있을 만큼 외롭단 뜻일 게다.
[노 네임 아저씨] 세상은 누가 더 중요하고 더 소중하거나 그런 건 없어 보인다. 그냥 다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고 있을 뿐, 삶의 경중은 누구에게나 같아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훌륭하다. 잘난 너나 못난 나나 우리는 어쨌거나 모두 같은 사람이 되니까. 이 세상에는 애시 당초 '보통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 모두 저마다 대단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도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조셉캠벨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I am nobody but I am everywhere"
[브라보 유어 라이프!] 그렇게 작정하고 자신을 찾아 나온 길에서도 사람들의 안테나는 남에게 향해 있다. 삶은 우연, 젊은은 농담 <그리고 연기를 한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농담-밀란 쿤데라> 젊음은 정말 무대 장치에 선 어린아이들의 몸질에 불과한 건가.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우리는 그저 저마다의 시절을 관통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점점 정상적인 사람들과의 간격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존재의 기쁨을 알아갈수록 일상에선 묘하게 외로워지기 시작한다. 여행은 이런 익숙한 관계로부터의 일탈이었다. 세상 끝까지 간다 한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상상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역시 가족의 최고 장점이라면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
책방에 갔다가.. 집어온 책_ 지인이라기에는 만난적이 없는 그냥 아는 분의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책이 쉴틈없이 빨리 빨리 넘겨지는.. 무엇보다도 너무 부러운 삶을 살고 있는 히피님의 글에서 그분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어 내심 혼자 므흣해 했다는..
시작은 참 매력적이었다. 스티븐 킹의 어릴적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과정을 겪어왔는지.. 본론으로 들어가서 유혹할만한 그의 글쓰기 법은 도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차라리.. 자서전을 쓰지.. 그냥 살아온 얘기를 써줬더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당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스티븐 킹_ 그 저자의 이름만 가지고 고민 없이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선택은.. 실패다.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게 안읽히는 책은 첨이었으며.. 그래도 스티븐 킹인데.. 이렇게 어의상실하게 만드는 전개는 거참 .. 첨 본다. 오기로 끝까지 읽었는데.. 아.. 짜증스럽다. 이런 적 첨이야.. ㅠ__________ㅠ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은 결국 내 생각이 저지른 실수였을 뿐 신의 창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고통은 인간의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이다-라마나 마하리쉬
[마음의 습관이 나를 만든다] 육체는 나의 전부가 아니다. 나는 마음의 존재이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지켜보자. '더 큰 나'로 남도록 하자.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첫째, 모든 곳에서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보려 애썼다. 둘째, 마음을 고요히 하고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을 비웠다. 셋째, 나에게 치유 에너지를 가져다주기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다. 넷째, 제멋대로인 나만의 생각에서 헤어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파하려 애썼다. 당신이 겪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든지 당신의 마음은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당신이 그것과 연결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며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생각이 문제의 근원이다.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장미를 보고 긴장과 분주함으로 나날을 채우는 당신의 삶과 비교해보라. 당신에게는 없는 성품이 장미에게는 있다. 장미는 스스로의 존재에 완벽하게 만족한다. 당신은 철들면서부터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계획하지만 장미는 씨 뿌려진 이후 한 번도 무엇을 계획한 적이 없다. 그 무엇도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런 내적 갈등 없이,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 않고, 은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앤서니 드멜러
[문제는 내가 만든 환상일 뿐이다] 문젯거리를 안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이 혼자이며 고립되고 소외되었다고 느낀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문제가, 물론 최악의 상황까지도 포함하여, 실은 가장 좋은 것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가? 모든 위기가 실은 하나의 기회라는 것을, 그로 인해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워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배우고 터득하 수 있다. '문제는 환상' 신은 너무나 순수하셔서 죄악은 보실 수도 없다. 만들으진 모든 것은 신이 만드신 것이고 신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하고 좋은 것이다. 그대의 눈은 너무나 순수하여 악을 바라볼 수조차 없으며 그릇된 것을 참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게 된 문제는 사랑과 평화의 부재 상태를 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신체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가 문제들로 인해 아무리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문제라고 규정한 모든 것은 환상인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불안을 창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마음속에 그것들을 창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크나큰 배움'을 얻기 위한 기회들일 뿐이다. "그대의 가슴으로 나아가, 문을 두드리라. 그리고 그대의 가슴에게, 알고 있는 바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라." 머리가 아닌 가슴을 가리키는 것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든 당신의 가슴, 당신의 마음은 이미 그 해결책을 알고 있다.
[마음에 접속하는 법] 생명의 근원이자 생명을 유지케 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나는 '마음'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그 접근법을 모를 뿐, 마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의 앎을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한정짓고 우리의 지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 힘을 활성화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꿈을 꿀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무장해제하고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능력에 모든 것을 내맡기느느 것, 그것이 바로 문제를 푸는 마음의 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계이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마음이 풀지못할 숙제는 없을 거야. 그것만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어." 모든 문제에는 마음의 해결책이 있다는 것. 당신이 찾는 마음의 현존 상태를 생생하게 그려보라. 당신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당신은 무엇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나 당신 자신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 따위는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만나겠다느느 고요한 바람 속에서 당신의 초대가 받아들여질 것임을 알라. 깨달음이란 지적인 추구와는 거리가 먼 개인적인 경험일 수밖에 없다. 고요한 마음으로 마음의 힘과 친해짐으로써 마음과 하나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분리의 느낌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든 것을 신에게 내맡기면 회복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마음과 하나가 되라. 그대의 신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의 에고적인 마음을 이기고 그대의 더 지고한 자아에게 나아가라. 마음으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7가지 방법] "우리는 자연의 세계 속에 태어난다. 그리고 마음의 세계에 눈뜸으로써 제2의 탄생을 맞는다." 영적인 세계와 물리적인 세계가 과연 따로 존재할까? 영적인 세계를 물리적인 세계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모두가 하나인 것이다. 마음이란 우리의 감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마음을 느끼지만 볼 수는 없다. 영성이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요, 인정과 받아들임, 깨달음과 경외심의 열매이다. 온전히 내맡기라.- 온전히 내맡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이 실로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도니다. 그렇다, 당신은 무력한 존재이다. 사랑하라.- 문제를 영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은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갈등과 부조화에서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들을 내맡김과 사랑으로 인도하는 초대장으로 받아들이라. "신의 에센스는 사랑 그 자체이다." 사랑이야말로 우주의 모든 세포를 유지하는 실체인 것이다. 사랑은 대항하여 싸우지 않고 함께 협력하는 힘이다. 사랑은 의심이 아닌 믿음이다. 나아가 사랑이야말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사랑은, 아니 사랑만이 모든 부정성 negativity을 녹일 수 있다. 무한성에 기대라. -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무한성과 관계를 맺는 일, 생명은 형태가 변화될 뿐,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란 것 또한 무한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마음이 생명을 준다. 육체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물질 세계에서 코드를 뽑아내어 마음의 세계에 다시 꽂는 순간 나는 두려움을, 이리저리 판단하는 마음을, 부정성을 놓아버릴 수 있다. 빈 마음이 되라 - 마음으로 문제를 푸는 나의 접근법에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그대로 놓아버리는 과정도 포함된다. 빈 마음이 되어 불가피하게 닥칠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품을 수 있는 모든 계획드을 온전하게 비워냄으로써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하라-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으며 빈손으로 떠날 것이다. 세상은 내가 세상에 내보낸 바로 그것을 정확히 나에게 돌려준다. 이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격언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우주를 향해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라는 메세지를 띄운다면 우주 역시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라는 메세지로 화답할 것이다 그 결과 마치 마법과 같이 어디를 가든지 너그러운 생각과 에너지를 선사하게 될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내가 무슨 이익을 얻는가?"라는 물음 대신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내보낼 수록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는 메아리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라. 당신은 신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됨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키우라. 어느 누구도 적으로 삼지 말라. 어느 누구도 성취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보지 말라. 그들 모두가 전체의 한 부분일 뿐임을 꺠달으라.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와 좌절을 멈추고 그들을 문제 해결의 동반자로 바라보게 된다. 마음의 눈뜸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 나는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근심과 걱정과 불만과 좌절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마음과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 있다. 내 삶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 스승들은 하나같이 웃을 수 있는 경이로운 자질을 지니고 있었고, 삶을 밝고 가볍게 받아들이며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명랑했다. "인간은 권태를 느끼고, 불만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만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느낌을 갖는다." 오직 당신만이 자신을 낙원에서 추방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영원한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 아나톨 프랑스.
[누구나 기적을 만들 수 있다] '모든 문제에는 마음의 해결책이 있다'는 말부터가 일종의 강력한 선언이다.
[가장 큰 무지는 자기 자신을 잘못 아는 것이다] 무지란 무엇인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됨됨이를 밑바닥부터 오해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이름이나 직책, 몸, 소유물, 성취나 평판과 동일시할 때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자신을 순수하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의 존재로서 상상하라. 거짓된 동일시는 언제나 당신을 배반할 것이다. 오감은 욕망의 대상에 이끌리도록 언제나 당신을 유혹한다.
깨달은 마음은 언제나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먹든지...... 깨달은 마음은 항상 이와 같이 안다. '나는 보고 있지 않다, 나는 듣고 있지 않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은 모두 감각이 하는 일이다.' - 바가바드기타
진정한 당신 자신은 마음의 마음이요, 눈의 눈이요, 호흡의 호흡이다. 그리로 들어가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짊어지고 있다고 믿는 어떠한 문제든지 마음으로 풀수 있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깨달은 마음은 어디에서나 평화를 찾아낸다] 실행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은 세 가지의 금언 미움을 사랑으로 갚는 것과, 밀어내려는 마음을 끌어안는 것, '내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 내가 고요한 사랑의 상태에 있지 못하면 마음의 해결책이 저절로 드러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된다. 어떠한 순간이든 당신 자신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야 말로 문제가 발생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무한한 게임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웃고, 사랑하고, 춤추고, 노래하게 하는 데 있다. 생명 자체는 아무래도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도 여기에 있었고, 죽음과 시간의 경계선 너머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무한한 게임의 선수들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고, 말과 설명을 초월하여 해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의 길이 있다. 당신의 겉모습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당신은 더 자주 미소를 지을 것이다. 당신의 얼굴은 고요하고 당신의 눈 속에는 평화가 깃든다. 당신처럼 세상을 걸어나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올바로 안다. 하지만 그 길을 아직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도 예전의 당신과 똑같다고 여기고 자기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매우 깊은 감정의 차원에서 강렬하고 친밀하게 소통했다. 한 마디말도, 단 하나의 소리도 필요없었다.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들은 모두 몸으로 알고 있었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로도, 서로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진실한 깨달음에 이르면 말이나 소리나 상징을 초월하여 신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생각의 파동이 고요할 때만이 지고한 상태에 들어설 수 있다." - 파탄잘리
[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죄'라는 말은 '목표에서의 이탈'로 이해될 수 있다. 죄라는 것을 장애물로 바라볼 때야 비로소 우리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실수와 잘못을 신을 믿고 의지하기 위한 초대장으로 바라보는 것은, '문제'를 다루는 데에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죄인이라는 관념은 자기모멸을 심어주고 죄책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장애물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용기가 솟아난다. 예수와 제자들은 길을 가던 중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자를 만난다. 제자들이 그에게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것은 누가 죄를 지어서 입니까? 이 사람입니까, 이 사람의 부모입니까?" 예수는 대답한다. "이 사람이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그의 삶 속에서 신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보이고자 함이다." 죄악이란 것을 더 높은 꺠우침에 이르는 길에 놓인 장애물로 여긴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내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모두 소경들이다.
[거짓을 버리라] '진실하다'는 말은 대체로 그 사람의 말과 언행이 일치함을 나타낸다. '거짓됨을 확고하게 끊음' 완벽하게 진리 안에 머물면 문자 그대로 진리를 조종할 수도 있게 된다. 육신으로 어떤 행위를 할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선한 행위의 열매를 가져온다. 거짓됨을 끊어나갈수록 평화롭고 고요한 당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차분함을 주변에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거짓됨에서 물러나 확고하게 진정한 자기 자신에 머물면 당신은 주변 사람의 의식 또한 고양시킨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일부의 사람만이 높은 영성을 가지며, 그럼으로써 생명력이 넘치고 사랑스럽고 평화롭고 친절하다. 양심을 저버린 행동은 안전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먼저 당시니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거짓된 자기 동일시에서 벗어나 문제를 덜어주는 마음의 힘에 접속하라.
[다른 사람이 옳다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생각'의 폭력마저도 확고히 끊은 상태에 이르면 당신 주변에는 적대감이나 폭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사람을 공격해도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상대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해를 끼칠 생각을 품지 않는다면 그들 또한 당신으로 인해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점에서는 당신이 옳아!" 이것은 결코 비꼬는 말이 아니다. 아무런 원한도 없이 상대가 옳다는 것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믿도록 허락하는 것뿐이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해로운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당신이 그 선물으 받지 않는다면 그 선물은 누구의 소유가 되겠는가?"- 붓다 분노나 악감정을 품지 않는 사람의 존재 앞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적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 파탄잘리 당신이 축복을 경험하고 있지 않다면, 그 순간 당신의 초점은 뭔가 잘못된 것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사랑과 감사, 용서로 채우기 시작하라. 해결책이란 당신이 마음의 세계에 완전히 몰두했을 때에 비로소 나타나는 속성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인간의 의식 자체로서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의식은 그것의 개별화된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천재의 영역이기도 하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태어남과 더불어 이 천재성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모두가 다 에너지] 우리는 대체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일하는 정력적인 사람들을 두고 에너지가 높다고 생각한다. 높은 주파수는 문제 해결을 돕는 반면 낮은 주파수는 오히려 문제를 강화하고 해결을 방해한다. 생명에 있어서는 움직이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후러씬 더 자연스럽다. 흐름을 유지한다는 것은 본래 좋은 것이다. 반면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유해한 결과를 가져온다. 더 빠른 진동은 '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느린 진동은 '문제'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한다. 당신은 진동 주파수의 증가를 가능케 하는 요소들을 당신의 삶 속에 들여놓을 수 있다.
[행복의 주파수를 찾아라] 책이 딱딱한 고체로 보이는 것은(역시 진동하는) 당신의 감각이 이러한 주파수를 고체로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느리게 움직여서 고체 덩어리로 보이는 것뿐이다. 모든 것이 운동 상태로 존재한다. 당신이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는 당신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들어온다. 당신의 눈은 빛을 인식하지만, 빛이란 실제로는 공기와 전자기적인 분자들의 아주 빠른 진동일 뿐이다. 당신의 귀는 소리를 듣지만 소리란 공기 진동의 비교적 느린 주파수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진동에너지 패턴을 바꾸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당신이 이제껏 문제라고 규정해버렸던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고와 마음은 가장 빠른 진동 상태에서 경험된다. B지점에서 당신은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C 지점은 완전한 감정적 건강 상태를 상징한다. 이 지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당신의 축복을 방해할 수 없다고 느낀다. 외부의 환경은 당신을 괴롭힐 수 없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견해로 인해 기분 상하지 않는다. 주파수가 느릴수록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에너지 장의 진동이 빠를수록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우리 편이냐 남의 편이냐를 가를 때마다 당신은 잠재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직면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문제일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베풀 수 있는가?'를 묻는다. 우주는 거울과도 같이 메아리로 화답한다. '어떻게 하면 당신에게 베풀 수 있겠는가?' 합일 의식의 이런 상태에서 당신은 삶의 상황들을 더 이상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음은 경험하고 뇌는 기록한다] 더 빠르고 더 복잡한 주파수일수록 당신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에 가까이 가게 되고 느린 진동 상태를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높은 수준의 마음은 뇌라는 물리적 현실을 초월한 또 하나의 장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경험하고, 뇌는 기록한다" - 윌더 펜필드<마음의 신비> 당신이 진정 평화를 발견하게 될 곳은, 마음의 자리인 것이다. 깊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만날 떄 우리는 전율하곤 한다.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랑과 감사의 느낌에 불을 붙이는 그런 사람은 아주 빠른 에너지 주파수로 진동한다. 통찰력이란 더 높은 수준의(그러니까 더 빠른) 마음을 구성하는 한가지 요소이다.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어떻게 해야 평화와 사랑에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나날의 삶 속에서 위대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곤 한다. 높은 에너지 주파수를 가진 마음은 상상력과 창조력의 씨앗을 보유한다. 왜 문제가 문제로 남는가? 그런 상황을 조종할 수 있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제프를 찾고 말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도 제프가 있는 곳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의심 비슷한 것도 가까이 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열린 마음의 장이라는 개념은, 모든 중요한 생각들이 손을 뻗치기만 하면 우리의 생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들이 '본래 가졌던 진동 형태'란 가장 빠르고 가장 높은 차원의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다. 기도는 마음의 빠른 주파수에 접근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진동이다. 위대한 생각일수록 더 깊은 감동을 낳고 전 지구적인 것이 된다.
[문제를 문제로 두지 마라] 당신은 느리게 진동하는 물질세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진동상태야 말로 당신의 문제가 거주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모두 마음속에서의 문제들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과 당신이 맺는 모든 관계는 당신의 마음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
[마음을 품으면 혼자서도 충분하다] "봄이면 꽃을 피우는 과일 나무들을 보라. 과일이 성장해감에 따라 꽃들은 스스로 스러져 간다. 그들의 내면에서 신성이 성장함에 따라 저급한 자아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 비베카난다
어떠한 것에도 방해받지 말라 어떠한 것에도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니 신만이 결코 변하지 않는다 - 성 데레사
" 신은 혼자서도 충분하다." - 성데레사 첫 번째로 할 일은 "어떻게?"라고 묻는 데 있지 않고 "예스!"라고 화답하는 데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다. 물질적인 힘을 추구하다 보면 삼 속에 떠오르는 문제들과 부딪히게 마련이다. AM 라디오에 맞추어놓고 FM라디오를 들을 수는 없다.
세상의 약속이란 것들은 대부분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과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 최선의 가장 안전한 길임을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 미켈란젤로
[생각하는 대로 존재한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존재하게 될 것' 모든 것은 하나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행복하다고, 혹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삶 속에 갖고 싶은 것들을 끌어들일 수 있느느 사람들이다.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들의 4가지 특징] 그들은 자기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를 표현한다 - 문제에서 자유로운 성공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삶 속에 실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르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큰소리로 말한다. 그들은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소위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드을 뿌리째 뽑는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기꺼이 요청한다 - 그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잘 안다. 그들은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힌다 - '의도'라는 말은 자신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절한 에너지를 쓸 수 있고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데 대한 '최상의 확신'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강철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 굳센 의지를 갖느느다는 것은 삶 속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열정을 품는 것이다. "열정도 없는 상태에서 원하는 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시체에다 옷을 입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면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타오르는 열망이야말로 당신이 정통해야 할 가장 강력한 힘이다. 불타는 열망이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촛불을 갖는 것과 같다. 내면의 열망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는 결코 꺼질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내면에서 타오르며 그것으로 족하다.
[당신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게 될 것' 모든 행위의 조상은 생각이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고, 요청하고, 의도를 확실히 하고, 열정을 갖는 것은 모두 '생각들'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원하지 않는 것에 생각이 머물면 당신이 그것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으로 느끼는지에 상관없이 당신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결국 삶 속에는 당신이 원하지 않은 것들이 나타난다. 마음은 하루에도 6만 번 이상 서로 다른 생각 속을 헤맨다. 당신의 생각은 당신이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게 되는 에너지이다. 원하지 않는 것에 생각을 주면 당신은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결국 그것은 삶 속에 실현될 것이다. 원하지 않는 것에 에너지를 주는 일을 멈추면 당신은 곧 더 빠르고 더 영적인 에너지로 변화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염원은 더 빠른 에너지이고, 이것이 당신의 현실이 될 것이다. 먼저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일을 멈추도록 하라. 이렇게 내면의 의도를 확실히 할 때 당신은 거기에 따라 행동할 것이고 당신의 신체 또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원하지 않는 에너지와 작별하고 창조하고자 의도하는 바에 집중함으로써 당신은 초당 2만 사이클보다 더 빠른 마음의 주파수로 옮겨가게 된다.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에 따라 행동하면 당신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당신은 원하지 않는 것을 삼 속에 끌어들이게 된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싫어하는 삶의 상황에 생각이 머물 때마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당신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에로 관심을 옮기도록 하라. 원하는 것에 대해 비전을 품는다면 당신은 저절로 그 에너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당신은 당신이 요청하는 양이 얼마이든 그 근원으로부터 실컷 가져다 쓸 수 있다. 믿음만 충분하다면 아무리 많은 물동이를 가져가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며, 그럼에도 대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것은 당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가서 이 무한한 공급원으로부터 퍼올 수가 있다는 점이다. 무엇인가에 불만족할 때마다 가라. 그렇지 않으면 그 무엇인가가 당신을 문제로 가득 채워버릴 것이다. 풍요로움이란 당신이 필요로 한다면 무엇이든 얻게 될 것임을 절대적으로 아는 데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며 '왜?'라고 말하지만 나는 과거에 없었던 것ㅇ르 꿈꾸며 이렇게 말한다. '왜 안돼?'" 당신의 풍요로움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다. 이는 일상 속에서 당신이 문제라고 부르며 계속 낮은 에너지를 보내는 모든 것에 그대로 적용된다. "행복한 생각은 행복한 분자를 창조하고, 건강한 생각은 건강한 분자를 창조한다." 모든 것이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관계라는 것은 생각 속에서만 경험되는 것임을 기억하라. 생각의 주파수를 마음 의식의 차원으로 이동시켜서 그것을 관계에 적용시키라. "가장 위대한 성취도 처음에는, 그리고 한동안은 하나의 꿈에 불과했다. 꿈이란 현실로 무성하게 자라날 어린 나무이다."- 제임스 알렌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게 된다.' 당신의 생각이 항상 해왔던 방식에만 머문다면 그 방식을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당신은 그런 생각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으며, 과거의 방식은 삶의 일부로서 계속될 것이다. 미친 짓이란 무엇인가? 늘 해오던 방식대로 행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보트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결코 궤적이 아니다. 당신의 삶의 궤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단지 뒤에 남은 흔적일 뿐인 것이다. 당신은 환상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궤적)를 들여다보며 거기에 에너지를 주어버린다. 그것이 마땅치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그러한 생각에 따라 행동하고 항상 '그래왔던' 것을 점점 더 많이 생산해낸다. 이것이 가장 큰 환상이다. 궤적은 보트를 몰 수 없다. 이 순간 보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엔진에 의해 발생된 에너지이다. 뒤에 남긴 흔적이 오늘의 삶을 이끌어갈 수는 없다. 과거가 오늘을 이끌어간다고 확신하지 않는 한 말이다. 계속해서 원치 않는 문제에 시달리게 되는 두 번째 요인은 과거의 드라마라는 진흙탕에서 뒹구는 일을 너무나 사랑하는 데 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 셰익스피어 "어느 날 나는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개인적인 역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술을 끊듯 포기해 버렸다. 그러자 그로 인해 아니 오직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 돈 주앙 개인적인 역사를 포기하라. 그것은 당신이 늘 갖고 다니는, 그리고 거기에 익숙해 있는 저급한 생각 에너지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니다. 과거의 흔적 속에 있는 개인적인 역사의 모든 것은 당신의 오늘이 있기 위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들임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라. 증거는 묻지 말라. 모든 일이 일어났다. 단지 그것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저주 대신 축복을 쏟아부으라. 받아들이고 사랑을 부어주라. 자신이 옳다는 말을 꼭 들어야만 한다면 당신은 저급한 에너지의 세계에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원치 않는 것에, 당신 삶의 주변 환경에, 항상 그래왔던 것에,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에 에너지르르 줄 때마다, 이젠 그만 멈추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속삭이라. 지고한 마음 에너지의 주파수를 당신이 원하는 것에로, 당신이 창조하고자 지향하는 상황에로 옮겨가라ㅏ. 기억하라, 당신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고, 당신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예기치 않는 순간, 행복하다는 느낌이 밀려든다...... 근처에서 만나는 낯선 이들도 언젠가 내 삶 속에서 만났던 것 같다...... 만물이 나에게 사랑을 채워준다...... 이런 분위기에 젖은 채 한 시간쯤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러고는 나중에야 그런 지복의 상태에 들어섰던 것은 내가 미움을 그친 바로 그 순간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몸과 마음, 환경의 에너지 장] "사랑은 모든 조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우주에 활기를 공급하는 영원한 원천이다."
[난 내 몸의 좋은 친구인가?] 어떤 음식으로 육체를 채우는가? 날마다 마시느느 물은 깨끗하고 오염되지 않았는가? 해로운 독소를 흡수하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나 평화로운 휴식을 제공하고 있는가? 균형잡힌 영향 섭취를 하고 있는가?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는가? 호흡 상태는 조화로운가? 감정 상태는 안정적인가? 당신은 당신의 몸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있는가? 당신의 몸은 사랑받아야 한다. 몸은 당신의 집이다. 잡동사니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 자신을 믿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삶의 에너지를 오염시키지 않으려면 어떤 사람을 사귈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삶의 공간의 순수성을 위협하는 해로운 것이라면 어떠한 것도 들여놓지 말라. 사랑과 친절을 내보낸다는 마음으로 숨을 싶이 내쉬도록 하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침입한 에너지 장으로부터 떠나라. 사랑과 평화와 지고한 마음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을 당신의 에너지 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두려움의 페로몬, 사랑의 페로몬] "당신은 결국, 그 모두가 당신과 신 사이의 일임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당신과 그들 사이의 일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 반항하는 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가? 평화롭고 고요한 평정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은 주위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환경의 에너지를 깨끗이 하느느 여덟 가지 전략] 1. 사람들은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가슴으로부터 하는 용서는 당신의 에너지장을 깨끗이 하는 훌륭한 도우미이다. 그들에게 침묵의 축복을 보내고 그들을 용서할 때 당신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다. 2. 당신이 친절을 베풀어도, 사람들은 뭔가 저의가 있을 거라고 수근댈 것이다. 그래도 친절을 베풀어라. 당신의 에너지 장은 친절을 베풂으로써 보호를 받는다. 다른 이들이 비난하는 목소리에 상관치 않으면 당신은 상처를 입지 않는다. 친절을 베풀라. 다른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친절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 3. 당신이 성공을 거둔다면, 거짓된 친구나 적들이 나타나리라. 그래도 성공을 거두라. 하지만 한결같이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라. 4.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해도, 사람들은 당신을 속이려 들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말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다는 것을 아는 한, 당신의 에너지 장은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다. 5. 당신이 여러 해 동안 이루어낸 것을, 누군가 하룻밤 만에 무너뜨려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루어내라. 어떤 일이든 그것을 완성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리지 말라. 당신의 목적을 표현하는 한 방식으로서 일하라.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당신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것은 결국 파괴된다. 파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버리라. 무한한 마음을 그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다. 6. 당신이 평온과 행복을 찾으면, 사람들이 질투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행복하라. 행복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나는 늘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행복 자체가 길이다. 행복은 내적인 무엇이다. 누군가에게서, 혹은 어떤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행복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7. 당신이 오늘 선을 행해도 내일이면 사람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선을 행하라. 행복과 마찬가지로 선을 행한다는 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마음의 정수를 표현하는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감사와 승인을 고대하지 말라. 아무도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가슴이 마음으로부터 지시받은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을 베풀라. 사랑과 선이 곧 당신 자신이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도록 하라. 다른 이유에서가 결코 아니다. 8. 당신이 가진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 도 있다. 그래도 그대가 터득한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최선의 것'이란 당신의 가장 지고한 자아를 뜻한다. 진정으로 주기를 원치 않는다면 주지 말라. 대신 비난도 하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도 말라.
[마음의 평화 지대로 가라] 우리의 생각이 우리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여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란 주기를 갖는 마음의 장이며, 우리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란 마음의 장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생각을 창조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다른 마음들에도 영향을 끼친다." - 발레리 헌트<무한한 마음> 당신의 에너지 장이 더 역동적이 될수록 당신은 생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의사소통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다.
[행복 에너지를 높이는 7가지 마음의 습관] 세상에 새로운 종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철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치유이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치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요엘 골드스미스 자신을 괴롭혀왔던 문제들을 떨쳐내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당신은 죽어질 운명의 자아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더 높은 마음의 주파수가 삶 속에 구현되도록 해야만 한다. 역설적이게도, 필사적으로 서두르는 행동이 에너지 형태에서는 오히려 느린 양상을 보인다고 한다. 당신이 빛과 마음의 에너지 파동에 접속했을 때만 진동이 더 빨라진다. 빛의 파동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딱딱한 물질의 주파수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진동한다. 그러므로 속도를 늦추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각을 할 때, 비로소 당신은 실제로 근심 걱정과 스트레스를 삶 밖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끝없는 마음속의 수다를 멈춤으로써 당신은 마음의 더 빠른 진동을 불러오게 된다. 더 빠른 진동이란 조화와 사랑과 평화의 진동이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선택의 자유다.
[평화의 감성을 키 우라] 달 주위를 돌면서 지구를 보니 엄지손톱으로 지구 전체가 가려지더라고 했다. 평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는 당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의 삶에 둠으로써 가능하다. "큰 소리로 공격을 일삼는 사람들을 피하라. 그들은 마음을 고통스럽게 한다." 평화로운 생각들 이외의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함으로써 당신은 어느 순간에라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추를 눌러대는 사람들이야 말로 당신의 위대한 교사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당신의 안내자들이다. 당신이 더 평화롭게 되기 위해서는 더 닦아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깨우쳐 주는 사람이다.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 당신이 아무리 곁에 있지 않으려고 해도 늘 함께 있게 되는 사람들, 때로는 불일치로 다투기도 하는 사람들이 소울메이트이다.
[평화의 감성을 키우기 위한 지침] "나는 이 길이 아닌, 평화의 길을 선택하련다."는 문장을 써서 집이나 일터나 자동차 안에 붙여 놓으라. "고통의 대부분은 자기 스스로 선택한 것읻. 당신 안에 잇는 내면의 의사는 쓰라린 상처로 인해 병든 자신의 자아를 치유한다." - 칼리 지브란 날마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라.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혼자만의 소중한 순간들 속에서 "나는 모든 것을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신께 맡긴다"고 자신에게 속삭이라. 명상을 생활화 하라. 저마다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중심에 앉아 모든 것을 아는' 평화의 상태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명상법이든 다 훌륭하다. 명상 속에서 당신은 침묵의 세계로 간다. 침묵은 나누어질 수 없다. 수학의 제로 와 마찬가지다. 제로는 제로가 아닌 어떠한 것으로도 나누어질 수 없다. "무엇이 말보다 더 높은 경지인가? 실처이다. 무엇이 실천보다 더 높은 경지인가? 침묵이다." - 프란체스코 당신의 평화를 외부 환경에 의존하지 말라. 당신이 평화롭지 못한 까닭을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당신을 다시 감각의 세계로 후퇴하게 한다. 평화롭지 못한 순간 당신 자신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도록 하라. 당신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라 - 당신은 당신이 갖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 당신이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지 않으면 당신은 평화를 전파할 수 없다. 당신이 평화를 전파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없다. 당신의 모든 실수와 연약함에 대해 당신 자신을 용서하겠다고 결심하라. 과거의 실수를 탓하며 자기 파괴적인 죄책감에 빠지지 말라. 마음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여행을 그럴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행위인 비난이나 죄책감, 실망, 자기혐오 등은 당신을 평화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자포자기에 이르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근심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심지어는 병까지 앓게 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 "자연이 열어주는 문보다 더 많은 앎으로 이끌어주는 문은 없다.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진리 이외의 다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품에 돌어가 안겨있을 때는 평화를 얻기가 한결 쉬워진다." 가능하면 자주 당신 자신에게 자연을 선물하라.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문제에 붙잡혔을 때마다 사랑을 보내면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사랑의 씨를 뿌리면 미움의 환상은 녹아버린다. 미움은 단지 사랑의 씨를 뿌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무엇이 미움인가?] 미움이란 사랑이라고 말하겠다. 미움이란 사랑 에너지가 거꾸로 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미움은 사랑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만 멈춰 선다고. 증오를 발산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라. 그들은 대부분 사랑받기 못하고 있다는 자신들의 느낌을 증오에 실어 보낸다. 그들은 삶이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삶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는 듯한 느낌을 갖는 순간 사랑이란 우주의 모든 것을 유지하는 정수 중의 정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현존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움이 느껴지는 순간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사랑이라는 힘에 호소하여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야 한다. 누군가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자기 자신이 받고 있다고 느끼는 비판을 그대로 당신에게 보내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그렇게 드러낸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미움의 에너지를 그렇게 내보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사랑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며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미움이란 사랑의 방향이 잘못된 것뿐이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미움을 발산하면서 거기에 힘을 빼앗기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증오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 악을 쓰거나 저주하거나 큰 소리로 반응하지 말라.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희생물이 되기엔 당신이 당신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 언제 어느 때라도 사랑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다. 그드의 증오는 그들이 고통임을 기억하라. 사랑을 바라보면 모두 기쁨과 아름다움에 넘치는 사람들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과 증오는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이 미워질 때] 당신은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슴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라. 만약 그런 요소가 있다면, 그 마움을 사랑으로 대체하는 것 또한 당신에게 달려 있다. 오늘의 이 순간을 자기 혐오로 낭비하지 말라. 증오란 단지 방향이 잘못 잡힌 사랑임을 기억하라. 당신의 기어를 거꾸로 돌려놓고, 사랑의 방향으로 생각의 물길을 잡으라. 용서가 이 모든 일을 완수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사물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라. 당신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당신 자신 또한 신이 주신 축복의 잔 속에 담긴 내용물이다. 그 안에 사랑이 머물게 하라. 당신안에, 당신 자신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잃지 말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기 위한 지침] 당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 다른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당신이 받고 있는 사랑의 크기를 잴 필요는 없다. 당신은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룩한 결과물이나 업적에 상관없이 당신은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마음의 존재로서,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도 없고, 비교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신의 작품이다. 미움이 깃든 말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말라 - 나아가 그런 말이 들리면 거기에 대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대화를 나눌 때는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 대신 그들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라. 미음을 증언하지 않고 있을 때라야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다. 미움을 직접 받아들이지 말라 - 미움을 안고 당신을 찾아온 사람이 누구이든 당신의 마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미움에서 비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어떻게 그 미움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꺠어 있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당신은 미움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실히 하고, 미움을 당신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어떠한 것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다. 미움을 보내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시간을 보내라 - 하지만 그들은 또한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극단적인 미움의 표출은 사랑을 갈구하는 울음소리에 지나지 않다. 편지를 쓰라 - 편지 속에 사랑을 담아 보냄으로써 당신은 미움의 불꽃에 더 이상 부채질을 하지 않게 된다. 더 친절하게, 그래도 더 친절하게 대하라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씨를 뿌리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넉넉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다. "사랑과 관대함으로 그들과 연결되라." "나로 하여금 증오를 품게 함으로써 내 마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오란 마음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랑의 씨를 뿌리라,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장식해주는 존경의 꽃다발을 즐기고 음미하라.
[치유가 불가능한 병은 없다] '은사'라는 단어에, 상처받은 자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진정한 치유란 치유하는 마음의 힘과 하나가 되는 전체성 속에서 가능하다. 진정한 치유의 힘은 환자들의 내면에 있어. 당신의 몸 안에 거주하는 지성은 당신이 투사하는 무엇이든 그것을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명료하게 말해두고 싶다. 당신의 지성은, 당신이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건강한 몸을 창조하기도 하고 병을 창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을 활력과 건강과 사랑으로 넘치게 하라. 그러면 당신의 몸은 자연스레 거기에 반응할 것이다. 한마디로 치유를 하는 힘은 사랑이다. 기억하라, 사랑의 반대는 두려움이며 두려움이 있다고 믿는 것은 병이라는 이차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의 갑옷을 벗어 던지게 한다."는 말을 상기하라.
[에너지의 균형을 찾으라] 상처받은 곳에 은사의 씨를 뿌리기 위해 당신이 할 일은 무엇보다 먼저 에너지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에너지의 균형 속에 머문다는 것은 명상과 조건 없는 사랑,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마음을 밝게 하는 것,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지고한 마음 의식의 더 빠른 진동 속에서의 삶을 통해 당신 자신의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인 은총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지침] 에고 의식의 덫에 걸린 순간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라. "병은 나 I 로 시작됩니다. 내가 모든 병의 근원임을 나타냅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되 병 자체에는 무관심하라.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아파야 할 이유를 제공하지 말라. 아플 때만 사랑을 기울여주면 안 된다. 그 사람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아프고 싶어질 것이다. 병 자체에는 무관심하라. 진정한 당신은 아프지 않다. 병은 당신이 진실로 그것을 원하지 않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때 사라져버린다. 상처를 더 심하게 하는 사랑을 하지 말라. 은사를 더 강화시키는 사랑을 하라. 병을 쾌유시키는 치유의 사랑을 하라. 놓아버리라. 근심이나 걱정, 쓰라림, 자기 연민 따위의 생각은 놓아버리라. 복수를 꿈꾸지 마라. 마음의 차원에서 살게 될수록, 당신은 근심이나 편견, 두려움, 복수심 등의 저급한 에너지와는 멀어지게 된다. "복수를 꿈꾸는가? 그러면 차라리 두 개의 무덤을 파라"
[두려움과 믿음 사이] 믿음은 내면으로 향하는 길이요, 주어진 어떠한 순간이든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의심을 넘어서서 탄탄한 믿음 위에 선다는 것은 두려움을 뿌리 뽑음으로써, 또한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지고한 창조의 힘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당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한 방식이다. 악은 당신의 마음(그리고 우리의 집단적인 마음)이 ㅁ나들어낸 것이고, 바로잡아져야 할 실수이다. 두려움에 빠질 때 당신은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두려움과 사랑의 교체] 두려움은 몸을 화학적으로 변화시킨다. 마음의 안식처는 사랑이고, 사랑은 우주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힘이다. 사랑은 치유와 조화의 핵심 요소이다.
[의심의 자리에 믿음을 채우기 위한 지침] 명상은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피곤을 가시게 하고, 마음을 자라게 하며 지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당신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인 증거가 없다 할지라도 미지의 것에 대한 신뢰를 계속 발전시키라. "당신이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걷기를 계속하는 것뿐이다." "당신들은 괴로움과 결핍감 속에 있을 때만 기도하곤 한다. 하지만 기쁨과 하루하루의 풍요로움 속에서 충만감을 느낄 때에도 기도를 바치기를!" - 칼리지브란 의심 대신, 믿음을 확언하라. 믿음은 마음의 선함과 그 힘에 대해, 당신이 항상 이 선함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는 것이다. "나는 번영을 창조하기를 염원한다. 나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안다. 나는 모든 것이 선하다고 믿는다. 나는 '나쁜' 것이나 문제가 되는 것들에게는 에너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신의 질서 속에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에 관한 생각 속에 머물지 말라. 어떤 문제든지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연습을 하라.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존재하게 될 것'임을 기억하라. 기도의 힘을 활용하라. 기도는 에너지이다. 마음의 에너지이다. 신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음을 신과 당신 사이의 일로 남겨두라. "생명을 주는 것은 마음이요,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안에 머무르고, 육체는 그 바깥에 두라. 당신이 내적으로 확신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라] 절망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어둠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고, 오랜 기간 길들여진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ㅏ.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떨쳐버리면 된다. 불행이나 절망은 생각일 뿐이다. 왜 고통을 사랑해야 할까? 고통을 사랑함으로써 당신은 절망에 빠져 허둥거리는 대신 그것을 목격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목격자로서 남아 있는 한 당신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 당신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당신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황은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이다. 의욕상실은 선진국에서만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갈망해왔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그들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이 의욕상실증의 원인이다. 이제 그들에게느느 아무런 희망이 없다. 내일은 캄캄하고, 모레는 더 캄캄할 것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돈을 쫓아가고 마음을 한편으로 치워두게 되면, 당신은 결국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은 돈으로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욕상실이란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내면적인 마음의 태도에서 생기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말]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 인생의 더 깊고 더 풍요로운 경험을 창조하겠다는 염원을 품으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한 지침] 사랑에 집착하지 마라. 깨달음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당신은 아무런 집착 없이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에 집착하면 절망을 낳는다. 사랑에의 집착은 당신의 만족과 행복의 원천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두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당신 자신에게 희망을 가지라.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결코 당신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당신없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건 나 자신을 기만하는 말에 불과하다,"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놓아줄 것이다. 당신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당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집착하지 않는 사랑 속에서도 그 사람은 여전히 당신에게 중요하다. 절망의 동조자가 되지 마라. 에너지가 낮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겨 절망의 동조자가 되지 말라. 부정적인 말을 힘주어 하고, 원인을 따지고, 상처를 되살려 말하며 고통의 감정을 곱씹는 것은 그 순간의 희망까지도 앗아가 버린다. "저는 이 상황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당신이 여기 저와 함께 계시다는 걸 압니다. 나는 이 일을 당신께 맡깁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축복을 찾으라. 이것은 절망이 사라지게 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괴로움을 느끼고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모든 생각을 멈추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성장해나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라. 모든 절망의 시간은 당신을 더 높고 더 행복한 곳으로 데려간다.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기수리을 터득하라. 희망을 물고 늘어지라. "내가 마침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굴의 의지로 끈질기게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 루이스 파스퇴르 희망이라는 뼈다귀를 물고 늘어지는 불독같이 되라고. '이것 또한 지나갈 일' 참고 인내하라. 고통은 결국 황굼의 열매로 변할 것이다.
[아름다움과 진실을 즐겨라] "강렬한 빛을 받고도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 만큼 더러운 것은 없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당신의 빛이 강렬하기만 하다면 어떠한 것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진리요 진리가 아름다움이라네 - 존 키츠 아름다움과 진리는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빛은 삶을 바라보는 한 가지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진실과 속임수] "빛은 진실에 대한 상징이다." - 제임스 러셀 로웰 '어둠은 속임수의 상징' 어둠은 감추고 빛은 드러낸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거의 모든 중독은 자기 부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빛은 당신의 목적을 드러낸다] 당신이 빛 안에서 살고 어둠 위에 빛을 가져갈 때 당신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알게 된다. 위대한 대가들은 삶의 목적이 선명했다는 것이다.
[어둠에 빛을 비추기 위한 지침]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 되라. 멈춰 서서 삶 속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응시하고, 여기에 대해 감사하라. 단 하루만이라도, 어둠 가운데 멈춰 서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찾아보라.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짐짓 행복한 척 꾸미지 말라. 대신 당신 자신과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키우도록 하라. 먹구름 뒤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어둠처럼 보이는 것 뒤에도 영원한 빛이 있음을 알라. 아름다움을 음마하는 거승로 어둠을 밝히는 데에는 단 한 순간의 멈춤만 있으면 된다. 타임의 어둠에 동화되지 마라. 좋지 않은 어두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서 두려움과 고통만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둠에 동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어두운 생각들을 흉내냄으로써 그들을 위안하려 애쓰지 말라. 어둠의 생각이 밀려올 때면 빛 속으로 가라. 삶의 구석구석을 정화하라. 빛은 순수하다. 어둠은 오염되어 있다. 하루에 여덞 잔에서 열 잔 정도의 물을 마심으로써 에너지 수준을 낮게 하는 독성을 풀어주고 몸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다. 하루에 적어도 세 조각의 과일을 먹고, 두 차례는 신선한 유기농 채소를 먹으라. 신선한 과일과 채소로 독성을 제거하고 그 기분을 느껴보라. 남에 대한 판단이나 분노하는 마음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하라. 당신 자신에게 진실하라. 진리로서 살고 진리로서 다른 사람을 대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하라. 다른 사람을 도울 때는 진실로써 하고 당신 자신에게도 완전히 진실해지라.
[기쁨의 레퍼토리로 채우라] 슬픔이란 우리의 삶 속에서 잘못된 것과 잃고 있는 것에 힘을 싣곤하는 삶의 자세이다. "지금 이 순간 지복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다면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을 뿐이다. 당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앤서니 드멜로 슬픔이란 돈이나 건강, 사랑, 친구, 혹은 자유 같은 것들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결핍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보고, 그런 입장에서 살아가는 태도이다. 반면 기쁨이란 당신이 누리고 있고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입장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재능을, 힘을 누리고 즐긴다. 그들은 자신들을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감정과 소유물과 힘에 의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기쁨이란 당신의 존재 전체를, 가진 것 모두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기는 데서 온다. 슬픔은 결핍감에서 온다.
[우리는 왜 기쁨을 피하는가] 죽을 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에서 그들의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기쁨으로 삶을 살았느냐?" "기쁨을 전하며 살았느냐?" 기쁨으로 살아가려면 당신이 가진 것에 대한 감사에 초점이 멎추어져야 한다. 결핍감에 사로잡힐 때라도 기쁨만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슬픔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기쁨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기쁨이 넘칠 때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지만 슬픔에 사로잡힐 때 시간은 그렇게 더디게 지나갈 수가 없다. 슬픔의 순간들은 끝없이 지루하기만 하다. 기쁨은 시간이라는 환상의 속도를 높여주지만 슬픔은 속도를 느리게 한다. 더 빠른 에너지가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표정이 밝은 사람에게 끌린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먼저 당신의 개인적인 에너지 패턴을 정화해야 한다. 기쁨의 더 빠른 에너지 안에서 살겠다고 결심하라.
[슬픔의 상황에 기쁨을 보내기 위한 제안들] 슬픔을 인정한 다음, 그것을 내려놓으라. 슬픔을 당하면서도 억지로 행복한 척 가장하지 말라. 슬픔의 느낌이란 당신이 선택한 생각의 방식일 뿐임을 이해하도록 하라.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에너지를 발산하라. 다른 사람들의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를 깊이 공감하면서 듣고 기쁨 속에서 살겠다고 다짐하라. 그러면 당신은 더 높은 에너지로 그 상황에 기여하게 된다. "이 모든 일과는 상관없이 당신이 행복하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만사가 더 잘풀릴 것이다." "당신은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도 곧 지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 일들을 돌아보게 될것이다."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나 고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어려움이 닥쳐도 행복에 헌신하겠다는 나의 다짐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행복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이다. 인간 존재의 전체 목적이자 이유 자체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슬픔을 주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라. 슬픔의 모든 경험은 더 높은 마음의 깨달음으로 가는 문이 되어준다. 그러니 그런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라. 인생의 목적을 찾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을 깨달으라. 당신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삶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뿐이다. 슬픔의 기색이 느껴지거나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느껴질때마다 멈춰서서 "나는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라. 삶의 목적을 느끼는 일은 이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로대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단순한 행위도 목적이 있는 행위이다. 분쟁을 해결하고 마음을 나누라. 당신의 삶이 단 하루만 남아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하겠는가? 그러고는 당신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내일이 약속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고백하라.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이 기분을 상하게 했거나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용서를 달라고 청하라. 당신의 삶 속에 아직 상처의 흔적이 있거든 오늘 그 것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라. 꽃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편지를 쓰라. 고요함으로 돌아가라. "기쁨은 마음의 열매" 우리가 존경을 바치는 그들은 결코 침울해하거나 침통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목적을 지녔으며 단호함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강한 목적의식을 잃지 않으려는 열망 속에서 충만한 기쁨으로 살아간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4다. 자기 연민이나 울적함에 허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전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한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마술적인 비법이 담긴 세 마디의 말이 있다. 지고의 행복감을 느끼라! 외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당신 자신이 최고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 당신의 몸 전체가 변화된다. 당신의 생각, 당신의 표정, 당신의 건강, 당신의 자세 등 당신의 모든 것이 훨씬 더 좋아진다. - 존 템플턴<삶의 법칙>
[기억하라, 당신은 당신이 하루 종일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진정한 고귀함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예전보다 더 나아지는 데에 있다. 나의 마음 에너지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를 재는 잣대로 사용하곤 한다. 나는 이제 그것이 나를 위해 얼마나 보탬이 되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헤아려 본다. 살아 있는 꽃과 죽은 꽃의 유일한 차이점은 살아있는 꽃은 계속 자라나지만 죽은 꽃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고. 당신의 진동은 마음과의 조화 속에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당신은 예전보다 더 나아져 있는가? 기억하라. 당신은 당신이 하루종일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굳어서 뻣뻣한 것은 죽음과 동행하는 것이요. 부드럽고 유연한 것이 더 큰 삶을 사는 것이다.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당신 안의 충전소] 깨달은 성인의 미소는 확실히 "그냥" 주어지는 미소가 아닙니다. .그냥 바다가 아닌 고통의 바다를 건넌 사람만이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 인생길에서 만나는 어떠한 비극이라도, 그 비극에 자신을 함몰시키지 않고 미소를 짓습니다. 그것도 억지 미소가 아닌 "자연스러운"미소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아직 덜 익은 것입니다. 내 것을 내가 끌어다 쓰는 자가충전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충전소는 활용할수록 그 효과가 빨라지고 커집니다. 쓰면 쓸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받을 수 있습니다. 무한 에너지이니, 조금도 아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