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nce of meeting you and me that you are my soulmate is 1 in 65 hundred million..
I'm waiting for you_
When you willing to do something the Luck is going to follow you.
명동연극교실 1번째 교실,
명동예술극장에서 있었던 황상민 교수의 <한국인의 심리를 들여다 보다>
일단 교수님의 표정과 어투와 목소리가 너무 귀여우셔서리.. ㅋㅋㅋ
그리고 한국 부자 유형을 연애에 접목시킨(마지막 질문자의 요청에 의함- 질문자는 그런 결론이 나올거라 상상도 못하고 질문했겠지만, 답변이 기막히게 예술적이었음. 우문현답을 이런때 쓰는건가? 암튼) 놀라운 심리적 분석이 기막히게 정통했다는 것.
즐거운 한시간 반이었다.
가난한 부자는 절대 되지 말자. 존경받는 부자가 되자.
하지만 사실 난 먼저 보헤미안 부자이고 싶다.. ㅋㅋ
함께한 캔돌언니, 언니이자 친구인 언니와의 동행은 늘 즐겁고나.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한번 만나면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고 집중할 줄 아는 언니에게 늘 많은 것을 배운다.
언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내 인생의 참 많은 부분을 놓친채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문득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감사한 마음이 뭉클_
어딘가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것을 잠시 잊었다. 세상의 모든 도시는 손가락에 새겨진 지문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도의 모든 그림과 글자들을 지우고 그물처럼 얽힌 길만 남겨놓으면 그 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발견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PROLOGUE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일상에 대고 리모컨을 눌러 문득 다른 채널로 옮기듯이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떠나는 걸 좋아했다. 그 언가가 조금은 익숙한 곳이든, 아예 낯선 곳이든 상관없이 가끔씩은 머리 위 하늘을 바꿔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낯선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사연들을 엿보거나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세상은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라고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게다가 좋아하는 일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다른 것들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많을 거라고 애써 자위한 뒤, 일단 나는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서울, 일상의 도시 1] 마치 표지판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고속도로처럼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만큼 왔는지 전혀 모르는 채 모두들 그저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옥죄는 고통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유토피아의 정반대에 위치한 세상 같았다. 주말에 티브이를 시청할 때만 제외하곤 모두들 웃지 않았다.
[욕망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More is not Less _Robert Venturi 인생은 소심한 도박 다들 대범한 척 하는 것일 뿐
욕망 (명)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유럽의 옛건물들 창이 좁고 긴 것은 벽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창이 좁고 긴 것은 그냥 그런 모양의 껍데기를 붙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결정이 그러하듯, 모니터 앞에서 충동적으로 선택한 곳이다. 며칠도 채 머물지 않을 거면서 아파트 동호수 추첨을 받는 사람마냥 좋은 층에 전망이 괜찮은 곳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호텔방의 침대 위에는 사랑과 증오가 어려 있었다. 거기에 고독을 더하며 몸을 던져 누웠다.
호텔방은 궁극적으로 외롭다. 잠시 머묾이란 그런 것이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아릿한 아픔을 남긴 짧은 순간의 인연처럼 행복도 고통도 영원하지 않았다.
외로움은 기대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즐거웠는데 사실 딱 그만큼 힘들어하고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그 욕망은 나의 역량을 어느 정도 넘어선 곳에 위치해 있었다. 기대치를 줄이고 실력을 늘리면 고통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기대는 쉽사리 접을 수 없고, 실력은 늘리기가 더더욱 힘들다. 내 욕망은 스스로를 외롭게 했다.
"솔직한 게 제일 좋아. 그걸 남들이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혼자서 바로크 양식의 껍질 뒤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을 실내를 쾌적하게 하기 위한 거대한 기계조직 같은 것들을 상상하며 홀로 버려진 아웃사이더처럼 시간을 보냈다.
환상은 대게 진부하지만 세상은 보다 진부하다. 그러니까 쿨하지 않게 보일까봐 걱정하면서 살 필요는 없다.
스페인어로 비옥한 땅이라는 뜻의 라스베이거스
사막을 달려 폐허를 만났다. 황폐함 그 자체가 목적인 장소. 인생의 지루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가게의 여주인
노골적인 상징은 목적에 집착한다. 상징은 인간을 위한다는 근대 건축이 정작 잃고 있었던 인간성의 영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즉흥적이고 직설적인 감성들이다.
상징이 공간을 지배한다. 건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공간 간의 관계라는 것은 형태보다는 상징에 의하여 맺어지기 때문에, 풍경 속에서의 건축은 형태보다는 상징으로 장소를 규정한다. 정면의 거대한 간판은 자극적인 유희가 되고, 뒤쪽의 건물은 얌전한 필수품이 된다.
몸집을 커다랗게 불린 라스베이거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일상을 잊게 만드는 초현실성을 앞세우며 도도한 자세를 취한다. 비굴함을 익숙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잠시 떠나온 신분의 나로서는 이 도시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욕망의 크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각자의 욕망이 다르기에 종종 서로 충돌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누군가가 의지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도시.
그곳은 낯설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천국처럼 낯설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이를 수 없는 위치에 대해 욕심을 내지만, 다행히도 한계를 넘지 않는 방법을 안다. 본능적으로 대부분의 이들이 좋은 직장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가끔 여행을 떠나 일상을 탈출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산다.
말투는 어눌한 데다가 뇌의 용량 부족으로 말을 하다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종종 까먹고, 소심해서 억울한 일이나 실수한 일을 쉽게 잊지 못하고, 자세가 좋지 못해 거북이 목을 하고 구부정하게 서 있는 일이 다반사고, 입이 싸고, 코를 골고, 피부가 너무 허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과잉상태인 자의식 하나를 믿고 꿋꿋이 버텨가며 살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그건 나의 장점 중 하나인 나의 약점을 쉽게 망각하는 천부적인 재능 덕분일 테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그렸던 천국의 모습은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일탈의 도시 찬디가르] Architecture is the masterly, correct, and magnificent play of form in light._Le Corbusier
일탈(명)1.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2. <사회> 사회적인 규범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일탈은 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일상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거나 혹은 목표를 향해가는 길을 잃고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일탈의 감행을 고려해볼 만하다. 자기애가 결핍된 돌출행동은 단지 현재의 부정일 뿐이다. 일탈은 나름대로 미래지향적 자의식 발현이다.
뭐든 명확한 게 좋을 수 있다.
무의식은 나를 강하게 옥죄었다. 아마 그것은 내 욕망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다.
오래된 것은 쉽게 무너져선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란 있을 거라고 속여가면서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성을 쌓는다. 전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지금의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
일탈은 일상의 질서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를 굴레라고 치자면 나는 발목에 족쇄를 한 다스 정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줄곧 일탈을 꿈꿨나보다.
세상은 먼저 걱정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나름대로 편하게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더 느긋할 수 있는지가 인생의 피곤함을 결정한다.
내가 피곤한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
"인연은 문득 오는 거야." 인연을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내곤 했다.
일탈은 복제되지 않아야 한다. 복제되고 재생산되는 순간 일탈만이 줄 수 있는 그 미묘한 긴장감은 사라져버린다. 그건 마치 동일한 내용으로 반 아이들의 절반에게 수여하는 상장하는 것이다.
사고도 기왕이면 제대로 쳐야 한다.
평생 한 가지를 이렇게 이룰 수 있다면 진정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만, 나는 그러기엔 욕심이 너무 많다. 한 가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지 모르는 덧없는 판타지에 나는 아직 매몰되어 있었다.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은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도시 그 뒤에서 허덕이는 힘을 잃어버린 대국의 가쁜 호흡 나는 차라리 이곳에 내 잃어버린 기억들을 묻는다.
누군가 내게 물었었다. "꿈이 뭔가요?"
요즘은 꿈과 환상과 목표가 종종 뒤섞인다.
조금 모자란 듯 아쉬워야 제맛인 것이다.
원래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무수한 비판들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의해 능동적으로 진화한다. 그건 변절과는 다른 것이다.
그의 일탈은 경이로웠다.
짧은 여행이 해결해주는 건 많지 않다. 추억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일상의 힘이 너무 강하기에 곧 묻혀버린다. 여행 중의 단상들은 마치 지난밤 꾸었던 두 번째 꿈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흩뿌려지게 된다.
[위안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There is nothing finer than Nevsky Prospect, not in St Petersburg at any rate; for in St Petersburg it is everything. And indeed, is there anything more gay, more brilliant, more resplendent than this beautiful street of our capital?"_Nikolai Gogol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보세요. 우와, 그곳을 좋아할 거예요."
위안(명)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나는 세상의 잘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체념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만이 동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크기는 문제가 아니라고 수많은 조언자들이 위로를 하더라도 결국 그 '크기'가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만들고는 한다. 마음이란 그리 쉽게 설득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과대 포장된 평가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걱정하는 모임에 참여하려고 했다. 다만 세상에는 그런 모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세상의 소식들을 접하면서 위안을 삼고는 한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힘들겠구나." 나는 적어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맞은 마무리 투수는 아닌 것이다.
벌어지는 사건의 종류만 다를 뿐 나를 비롯한 또래들의 삶은 비슷한 편이었다. 기쁜 순간이 잠시 있고 슬픈 순간은 가끔 있고 우울한 순간은 자주 있고 힘든 순간은, 순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다른 언어가 필요할 것 같은, 가령 '날'이나 '시기'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시간들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위로라는 게 그리 필요가 없었는데 위로를 받는다고 상황이 괜찮아질 리가 전혀 없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사실 위로를 한답시고 말을 꺼내는 사람이 실은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던 경ㅇ가 많았던 게 또 다른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경험한 적 없는 경ㄹ의 페테르부르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애석하게도 인생의 진부한 교훈들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으니깐." 조바심이 밀려왔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지나는 행인에게 길을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같은 도시 안이었기 때문에 조금 다리가 아프게 발품을 팔면 결국 호텔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겨우 방에 이르게 되었을 때 한숨을 크게 쉬면 되는 일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네프스키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로란 정열적인 사랑고백처럼 잠시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속는 줄 알면서도 가끔은 모른 척 넘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기에 사람들은 지치지 않고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 간다.
이 네프스키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사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그건 그냥 묵묵히 혼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종류의 과정이다.
다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어느 순간 내가 겁이 늘었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다.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을 믿으며 계속 가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척박하고 고독한 땅에 일구어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라면서.
같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을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적잖이 쓰라렸고, 오히려 난 과거에 비해 작은 상처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교훈들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미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들과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많은 이들은 그들의 남루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줄곧 새로운 교훈들을 찾았다. 물론 잠시 감동하고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교훈을 머리에만 새긴 채 채워지지 않는 마음과 함께 나는 잠시 내가 좋아하는 도시들로 여행을 떠났다. 잊지 못할 스승처럼,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은인처럼, 내겐 고마운 도시들이 존재했다.
지도에 그려진 선들을 직접 밟고 다니며 궁극적으로 찾고 싶었던 건 작은 용기였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거라고, 혹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틀리면 또 어떠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의 흔적과 상처들이 도시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사랑하게 된 사람의 오랜 습관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의 모습들이 좋았다.
There's a fire starting in my heart Reaching a fever pitch it's bringing me out the dark Finally I can see you crystal clear
Go head and sell me out and ill lay your shit here See how I leave with every piece of you Don't underestimate the things that I will do
There's a fire starting in my heart Reaching a fever pitch And its bring me out the dark
The scars of your love remind me of us They keep me thinking that we almost had it all The scars of your love they leave me breathless I can't help feeling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You had my heart inside of your hand And you played it To the beat
Baby I have no story to be told But I've heard one of you And I'm gonna make your head burn
Think of me in the depths of your despair Making a home down there It reminds you of the home we shared
The scars of your love remind me of us They keep me thinking that we almost had it all The scars of your love they leave me breathless I can't help feeling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You had my heart inside of your hand And you played it To the beat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You had my heart inside of your hand And you played it To the beat
Throw your soul through every open door Count your blessings to find what you look for Turned my sorrow into treasured gold You pay me back in kind and reap just what you sow
We could have had it all We could have had it all It all, it all it all,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You had my heart inside of your hand And you played it to the beat
We could have had it all Rolling in the deep You had my heart inside of your hand But you played it to the beat
어쩌면 사회 부적응자 인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사회 부적응자.
왜그렇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것인가?
30년이 넘도록 살아온 이땅이 왜이렇게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인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들 보내온 사람들도 더 없이 낯설게 느껴지고, 늘 다니는 길마저도 그 공기가 낯설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지 알 수 없으나,
지금 내가 온 몸으로 마주하는 세상은 나를 더 외롭게 한다.
●
무엇이 문제인가?
누구에게나 있는 직장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직장일 수도 있는 안정적인(응?) 직장이 있다.
매달 꼬박꼬박 아쉬운대로 찍히는 통장의 숫자를 보며 한달을 또 계획하고 살아간다.
이번달에도 쓸데 없는데 지출을 많이 했구나.. 반성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반복에 반복을 더할 뿐이다.
●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는 무엇을 기대하길래 이토록 내려놓지 못하는가?
남들이 가는 길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잘못된 것을 보면 못본척 지나치면 된다.
내 소중한 누군가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그냥 모른척 눈한번 지그시 감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아무일도 없단 듯이 모두 그렇게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인가.
왜 그러지 못해 늘 미운오리 새끼가 되고 마는가.
그러니 외로운 것이다.
●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늘 꿈꾸는 세계가 어렴풋하게 있다.
그래 어렴풋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늘 꿈만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얼 얼마나 이루려고 하는가?
빌게이츠라도 될 요량이 아니라면 먼지처럼 사라질 것들에 대한 미련일랑 버려야 한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
너무 많은 것을 가진 것인가?
그렇기에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겐지도 모른다.
갖은게 없어서 늘 조금만 더 채우자 했던 나인 것 같은데,
왜 나는 없다면서 미련없이 떠나는 것에 매번 이토록 인색한 것인가.
그래,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먼지만큼이나 가벼운 나의 존재의 부속품들?
지난 세월 이만큼 열심히 살았노라 대변해줄 것 같은 내 흔적들 때문인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뭐가 나를 이토록 제자리에서 발만 구르게 한단 말인가?
●
나의 꿈은 어디로 갔나?
내가 꿈꾸던 세상은 어디있는걸까.
꿈이 있었고 꿈이 있다.
방대한 꿈.
남들은 나의 꿈을 들으며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한 미소 넘어로 생각할 것이다.
'넌 그게 가능할거라 생각하니?'
'네 꿈은 도무지 현실성이 없어!'
'두고 봐줄게!'
남들의 눈에 우습게 보일만한 나의 꿈은 나에겐 소중한 꿈이다.
나를 내로 이끌어주는 에너지란 말이다.
●
기대를 하라고 누가 그랬던가?
아무도 기대하라 강요한 적 없다.
내 스스로의 강요일 뿐이다.
자발적인 강요를 통해 기대감을 갖은건 오롯히 나의 몫이다.
그러니 그 누구의 탓도 할 생각은 꿈에도 말자.
나의 몫일 뿐이다.
●
다른 것 뿐인가?
그래, 다른 것 뿐이다.
나와 다름을 나쁘다고 할 수 있는이가 누가 있나?
저마다의 기준이 다를 뿐인거다.
그러니 비우자.
애써 이해하려 들지도 말자.
그들의 몫이고 나의 몫일 뿐이다.
●
터질 것 같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그리고 시끄럽다.
마음이 참 시끄럽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은 더 시끄럽다.
언제쯤이면 조금은 잔잔해 질까.
●
남들이 말하는 현실로 나는 존속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낼 뿐이다.
순간,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그저 선택을 하고 살아낼 뿐이다.
내가 외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껄떡거리는 자들 다 쓸어내고 정말 내 사람하나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내 옆에 있다 한들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찌 그 외로움이 사라질 것인가.
또 같은 마음으로 나를 이해하는 이가 있다한들 그 외로움이 어찌 다 사라질 것인가.
●
인생은 결국 혼자이다.
인생은 5달러짜리 동전하나로 잭팟을 터트리려 애쓰는 게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2012수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정말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준 마돈나.
왜 사람들이 '마돈나'라는 명칭을 부치는지 다시한번 실감하게된 무대였다.
짧은 12분정도의 무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을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을 준비했을지가 훤히 보인다.
50대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무대가 나올 수 있지?
우리나라 50대면 하핫~ 상상하기 어려운 무대를 정말 멋지게 보여준 마돈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
까사밀라 꼭데기층에는 가우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다.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 모형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 디테일함에 하핫~ 또 놀라지 않을 수가.. 하마터면 국제 도둑 될뻔 했다! 막막 들고 와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참느라 무지 애썼단거지! 까사밀라의 건축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는데, 정말 아.. 갖고싶다 강개리!도 아니고 거참~ 탐나 혼났네!
쭉 코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길 안내가 되어 있다. 코스? ㅋㅋ 가우디 풀코스정도로 보면 될듯! 가우디의 여러 건축 모형들을 보면서 가우디에 대한 경이로움이 절로 분비되는(응?)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하나같이 독특한 컨셉이었다. 일을 하다보면 아무리 창조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보통 자신의 기본 컨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거나 혹은 벗어난다해도 기본 흐름은 그대로 타고 가는경우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우디는 그야말로 이 다음은 뭘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놀라운 아이디어들을 재 창조 했다. 매 순간! 축소모형과 설명사인을 같이 짝으로 찍는다고 찍긴했는데, 사실은 헤깔리.. 축적도 표시되어있음. 참고하시고..
짧은 스페인 여행기간, 그 중에 잠시 머물었던 바르셀로나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상당히 스케일이 큰 도시이며 둘러볼게 많다. 특히 트래킹으로 둘러볼 계획이라면 1달 정도의 시간도 그렇게 넉넉하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알려진 곳보다 알려지 않은 뒷 골목에 더 관심 많은 나로서는, 흠.. 바르셀로나에 대한 묘한 끌림이 가시지 않는다. 도착해서 제일 실망스러운 곳이 바르셀로나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매력이 스믈스믈 솟아 오르는 곳 바르셀로나. 가우디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따가운 겨울, 뜨거운 여름의 도시의 기운이 그립다.
Judas Priest의 라스트 월드투어 그 첫번째 한국 공연. 단 1회의 공연 이후 일본, 싱가폴을 거쳐 몇 개국의 고별 공연이 이어진다. 지난 2월 4일 토요일 올림픽홀에서 전설의 주다스 프리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Kevin이 모니터 전담으로 와서 덕분에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구경할 수 있었다. 아참! Kevin인 2011년 모니터 엔지니어 상도 받았다. 거참 부러운 친구다!
본 공연 들어가기 전, 첫 오프닝은 크래쉬가 열었는데, 아.. 그 동안에 보던 크래쉬의 그 어떤 무대보다도 열정적인 무대였다. 언제적 크래쉬인데.. 늙지도 않나봐!!! 더 깊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참 멋지다. 특히 크래쉬 메인보컬 안흥찬님, 개인적으로 정말 멋진 프로라고 생각한다. Back Stage 스탭으로 일을 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혼자 조심스레 해본다. 멋졌다.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작업복 차림으로 무대를 정리하는 모습에 정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내가 본 뮤지션 중에 가장 멋진 뮤지션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므로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무대에서 봤던 상반되는 두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크래쉬 이후에 디아블로가 20여분을 미치게 ㅊ 달려주셨고, 이후에 임재범느님이 조인하여 하핫~ 정말 핫한 무대를 선보여 주셨다. 임재범느님은 그냥 존재 자체발광센서 그리고 그 아우라가 정말 대단!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기를 발산하는 것만 같았다. 짧은 20분의 시간이 지났다.
보이스에 대한 아쉬움은 좀 있었는데, 엔지니어의 의도를 알 수 없었으므로 패스. 이날 엔지니어 3명의 손맛을 들을 수 있었는데.. ㅋㅋㅋ 뭐, 글로 남기진 않을란다. ㅋㅋㅋ 셋이 다 틀렸다. 암튼, 주다스 할배들의 플레이는 섹시했다! 이제 볼수가 없는거다. 라이브로는 여기 한국서.. 더이상은.. 응!!!!
이날 메인스피커는 L-Acoustic사의 라인어레이였는데 아마도 V-DOSC같았음. 메인 콘솔은 SD7
지난주 P오빠 덕분에 오랜만에 뮤지컬을 봤다.
넥스트 투 노멀.
내용이 처음엔 뭐지? 싶다가, 중간에 조금은 루즈한 느낌이 있었으나,
음.. 재미있었다.
박칼린.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 주변에 흘러다니는 말도 많은게 사실인데, 음.. 박칼린씨 다른건 뭐 모르겠고..
연기는 정말 잘하는 것 같다.
디테일한 표정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프로구나.. 싶었다.
남들이 뭐라하든 그녀는 남들의 숙덕거림과 상관없이 멋진 프로였다.
오랜만에 캬하. 재미있었음.
근데, 참, 어딜가나.. 시원한 소리를 못듣는건.. 나만그런거니? 아니면 극장소리는 원래 그래야 하는건지.. 궁금하다.
Casa Mila 가우디가 설계한 집으로 1906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5년간 지어졌다. 잘라진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고 해서 '라 페드레라 La Pedrera(채석장 이라는 뜻)'라는 애칭이 있다고 한다. 곡선이 주를 이루는 아름다운 까사밀라는 '산'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석회암과 철로 그 느낌을 살렸다고 한다. 관전 포인트는 옥상에 있는 굴뚝이다. 산봉우리를 의미하나고 하는데 얼마나 독창적인지.. 거참
지난번 가우디의 작품 까사 바트요Casa Batllo는 바다를 테마로 한 작품인데 비해, 이곳 까사밀라Casa Mila는 산을 테마로 했다는 것. 정말 재미진 사람이다.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으며 2개의 중정과 지하 차고를 가지고 있는 고품격 맨션이다. 한층에 4가구가 있고 가구당 400m2의공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최상층은 가우디의 작품 평면도를 전시하고 있으며 슬라이드 비이오 등을 상영하고 있다.(에스파이 가우디 Espai Gaudi)
디아고날역 보도1분정도(지하철 3/5호선) 09:00~20:00(11월~12월 09:00~18:30) 12월 25, 26일, 1월 1, 6일 휴무 입장료 9.50Euro
자.. 이제부터 옥상을 쭈주주죽~ 훑어볼 참이다. 아.. 정말 귀엽고 신기하고 놀랍고.. 보는 이마다 느끼는게 다르겠지만, 스타워즈의 그 헬멧..(헬멧이라는 표현이 참.. 그렇긴 하지만) 그래. 조지루카스가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정말 보는 시선에 다라 스타워즈의 익숙한 모습이 겹쳐진다. 하핫~ 그 보는 재미에 흠뻑~
같은듯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 얼마나 황홀했을까 싶다. 내부는 다음판에 공개하도록 하겠음. 왜? 스크롤 압박!!!!
요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창 하고 있음, 그래서 약간은 시니컬 하기도 함. 그렇다고 뭐 어쩌라는 건 아님. 그렇다고 말하는 것 뿐임.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게 중요한데, 즐거움의 정도가 어느만큼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임. (뱃데지가 부른가?) 우울하거나 하진 않으니, 웃는 경우가 많고, 혼자 거울보고도 실실 웃어대는걸 보면 나쁘진 않은 것 같으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그 정도를 가늠할 길이 없으며, 그것이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되는 건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고로. 인생에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나_란 사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음. 뭐 트랜드 따라 인문학이 어쩌고 그런거 아니니 오해마시길.
아.. 춥다. 내일은 더 춥단다. 오늘 체감온도 영하 20도였다는데, 퇴근길에 정말 얼어죽는 줄 알았음. 내일 체감온도가 아닌 진짜 온도가 20도라는 설이 있는데, 개뻥이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임.
아.. 영어공부 전투적으로 해야함을 오늘 새삼스럽게 느꼈음. 난, 재미진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전투영어를 요하고 있음. 그래서 고민중임 전투영어로 영어에 질리게 할 것인가, 아니면 비루하지만 재미진 영어로 즐길 것인가.
겨우 화요일, 그런데 조금 피곤한 느낌이 든다. 마음안에 뭔가 불쾌한 찌꺼기 같은게 끼어 있는 것만 같다. 음.. 별로 좋지 않다. 암것도 아닌 것이 괜히 내 기분 쥐 흔들까봐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쌓여가는 일들을 두고, 나는 무얼 하고 있나.. 멍때리고 있다. 불안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뭐가 불안한걸까? 하고 생각한다.
불안이라는 단어로 정의 내릴만한 것이 아닌 거라고 결론 짓는다. 그래, 이건 불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만족스럽지 못함이다. 불만족. 이란 말이다.
그럼 뭐가? 한번 사는 이 세상을 이렇게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까지 같은 의문을 붙들고 헤매일텐가?
중요한건, 중요한건 말이다.. 내가 웃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른다면, 당연히 그걸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닌 누군가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확히 그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가슴에 터져날 것 같은 하고 싶은 것들이 들끓고 있는데, 왜 애써 그것들을 누르려 하는 것인가? 무엇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고 또 게으르게 하는가? 무엇이 자꾸만 나를 핑계쟁이로 만들고 있는가? 나.. 그래, 나 자신이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래.. 처절하게 망가져 보지 않은 탓일것이다. 처절하게 망쳐본 적이 없는 탓일 것이다. 처절하게 망가졌었다고, 더이상 잃을게 없을만큼 바닥까지 내려갔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나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너무 많다. 나 자신을 겁쟁이로 만들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이 내 들 끓는 열망을 짓 누를만큼 너무 많은 것들을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버려야 한다.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 그래서 그 어느 것에도 기대하지 않고,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나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아가게 될까?
행복한 삶들의 연속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다시 또 되씹어 본다.
순간순간의 벅차오르던 소중한 내 삶의 조각들이 흔들릴 시간이다. 잠시동안만이다. 잠시동안만 흔들리자. 대차게 흔들리고 다시 깊이 들여다 보자.
나를 바로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충분히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지만, 어쩐지 이것은 사치인 것인가.. 투정거리는 것 같은 이 철없음이 오늘은 거추장 스럽다.
어제 출근길에 이 책을 집어 들었고, 잠자리 들기 전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린 책, 그만큼 읽기도 쉽고 편하고, 재미있다.
무슨 책이 이렇게 가볍냐며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만, 그 안에 잔잔히 남겨지는 여운이 있다. 이책, 즐겁고 유쾌하다. 병신같지만 멋지게, 아버지 샘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 남들 의식하며 사는거 그거 샘의 표현을 빌리자면 좆까라그래! 다! (응?)
중요한건 나_ 란 말이다.
옮긴이는 다름아닌 호란_이란 여자다. 뮤지션으로 더 익숙한 그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f*ck을 어떻게 해석해야 더 맛깔날까 고민하던 그녀,
공인이라 어디서 입밖으로 욕도 못해봤을 그녀였다고 후기를 밝히는 그녀의 한줄에서
그녀의 살가운 노력이 돗보인다.
좆까! vs 씨발!
그녀는 '좆까'를 선택했다!
멋지다!
좆까!
저자의 아버지의 막말 트윗이 완전 인기여서 나도 팔로잉해버렸다. 역시 욕찌거리 판인 듯 하지만 해학이 있고 깊이가 있다. 궁금한 그대를 위해
# 끝, 그리고 시작 이젠 빼도박도 못하고 2012년 새해가 된 것이다. 그래, 새 술은 새 부대에.. 맞는 말이다. 시작과 끝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쉽게 단념하게도 해주고, 좀처럼 버리지 못하던 미련도 버리게 해준다. 먼지 털어내듯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내기도 쉽게 할 수 있는 끝.
좀처럼 시작하지 못하던 것들을 과감하게 시작할 수 있는 시기. 무엇이든 시도하면 될 것 같은, 뭐가 되든 일단 계획을 세우고 내가 하고 싶었던게 뭐였는지를 나열하게 해주는 시간. 그렇게 나는 한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과감하고 당차게 시작했다. 그리고 한달이 흘러간다.
무언가를 다짐한 대로 하고 있고, 무언가를 아직 시작도 못하고 니미적 거리고도 있으며, 무언가를 다짐하기 위해 심호흡을 가다듬고 시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가 대견하고 이뻐보인다. 홀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인가? 무엇이든 좋다. 솔리튜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고, 나를 온전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나는 그만큼 씩 자라고 있는 것이니, 인생 헛살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잘하고 있다.
# 안녕 쉬면서 문득 떠오른 이에게 문자 보내기. 이유 없는 안부 문자.. 이유 없음이 있을까, 궁금했던게지. 뭐가? 안부가..
카페에서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한잔 주문하고 읽고 싶던 책을 읽고, 그 동안 이러저러 핑계를 대며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던 영화 스크립트를 가지고 영어 공부를 하다가, 드르륵 거리는 전화를 바라본다.
낯선듯 반가운 이름이 뜬다. 반가운 전화였던 것이다. 건너 들리는 힘있는 목소리가 마음을 공중부양 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했다.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의 안녕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는거구나.. 생각 했다.
# 이여사님 엄마가 병원에 가는 날이다. 명절에 시골에 다녀오고나서 한시도 엄마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마음이 아려오는 느낌을 엄마는 자식들을 품고 평생을 그렇게 사셨겠지.. 생각하니, 벅차게 뭉클거리는 가슴이 멈춰지지 않는다.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존엄한지 새삼스럽게도 감탄한지 며칠 되어간다.
엄마랑 통화를 했다. 점심을 먹고 있다고 했다. '뭐 먹는데? 날도 추운데 뜨끈한 국물 먹지' '응 맛있는거 먹어!' '뭐 먹는데?' 집요한 딸래미의 물음에 차마 거짓말은 못하시는 엄마 '응 김밥 먹어'
가슴이 멍먹해져왔다. 뜨끈한 국물먹지.. 김밥이 뭐냐며 마음에도 없는 퉁퉁거리는 한마디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통장에 몇 만원 입금하고 문자를 보낸다. '엄마 집에가는 길에 피자도 좋고, 맛있는거 사가지고 가서 할머니랑 맛있게 먹어! 알라븅 울 이여사님'
엄마랑 다시 통화를 한다. '천사같은 우리딸' 무려 나를 천사로 등극시켜주는 울 엄마.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라니까!
요즘은 엄마 생각이 한시도 머리에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생각하면 자꾸 울컥해서 바보같이 눈물이 그렁거린다. 사무실 앉아 일하다가도 문득 떠올라 울컥하고 그렁거리고.. 미쳤나 보다.
[인생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하나]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한,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은 평생을 함께하는 그림자이자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외롭다. 이따금 명치를 콕콕 찌르는 익숙한 느낌. 그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아프다. 외로움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이고, 다른 하나는 솔리튜드solitude이다. 어느 길을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론리니스이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솔리튜드이다."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을 '론리니스'로,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을 '솔리튜드'로 분류했다. 외로움은 함께 있는 것으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홀로'라는 선택을 통해 더 좋은 것, 솔리튜드로 도약할 수 있다. 솔리튜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리튜드는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솔리튜드에 이르는 길이 사실상 시작된다. 외로움은 그래서 '모든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친구의 장례식] 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건 언제나 '팩트'였다. 한번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모든 문제는 우리가 방에 가만히 앉아 자신과 단둘이 마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 프란츠 카프카
[왜 나만 악역을 맡아야 할까] 왜 남자들은 좋은 역할만 도맡고, 나쁜 역할은 여자에게 떠념기려고 하는 것일까.
[마음을 잃다] 바쁨의 확인으로 인사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최초다.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왜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한 것일까. 낯선 감정의 이름은 분명 '외로움' 이었다. "현대인을 대표하는 특성, 바쁠 망" 마음이 사라지고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잃다. 마음의 죽음...... 사과는 남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는 생각해냈다. 지금 이렇게 외로운 것은 남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살지 못해서.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없기 때문에. 하루를 바삐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날 분량만큼의 희망과 포부가 손가락 사이로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날 분량만큼의 희망가 포부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 나가듯 허무하게 사라졌음을 발견하곤 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래서 마음이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신데렐라도 죽을 만큼 외로웠을 것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나는 외로움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모두들, 무엇인가를 일부가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비로소 안심하는 비겁한 자기 위한의 집합체 같은.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난 뒤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동화다. 현실의 신데렐라는 왕자의 근처에만 가도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 최고의 나는, 무리 속에서의 비교와 경쟁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발견된다는 각성.
[인터넷 스타의 사생활] 인터넷 스타들이 기를 쓰고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이유는 그들 역시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자형'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뜻으로, 성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팔자좋은 사람들에게 곧잘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남들 보기에는 완벽한 삶을 사는데도 정작 본인은 힘들어하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좋은 팔자마저 공짜는 아니다. '결핍요소'의 이름은 '자기 기준의 결여'다. '자형'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자기 기준이 없으며, 남들의 평가에 목을 맨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자신감이란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생기는 게 아닌가 해. 그러니까 자신감은 곧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삶의 균형인지도 몰라." 사람들은 남의 삶을 사느라 너무 바쁘고 자기 삶을 못 살아 외롭다. 부모의 강요나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혹은 자기를 몰라 남의 삶을 흉내 내며 아둥바둥 살아간다.
[봉우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꿈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한다. 밑에서 꿈꾸는 정상이란, 행복과 유의어 또는 동의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높은 곳에 서면 행복을 누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적 출세와 등산의 두번째 공통점을 흔히 간과한다. 그것은'곧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산 또한 사람을 외롭게 한다. 웬만해선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홀로움' '홀로'와 '즐거움'을 합친 말. '홀로움'을 통해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알았다. 그동안 성장하는 데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성숙해야 한다는 작은 울림이었다. 내면의 성숙 없이는, 아무리 남의 인정을 받는다 해도 그건 텅 빈 성공에 불과하다.
[B급 만세!]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렇지만 이제 아빠는 A급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B급이지만(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B급인 것에 만족하고 B급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급이야말로 재미있는 위치란다. B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으로 튀어오를 수 있지. B급이 쉬운 위치는 아니란다. 방심하면 곧바로 C급이나 D급으로 떨어질 수 있거든. B급에 붙어 있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단다. 아빠는 B급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A급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도, B급에겐 얼마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어. A급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B급에겐 성실한 자세와 협동정신이 있다.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거란다. 아빠는 '고마워할 수 있다'는 점을, A급 아닌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아빠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들아, 언제나 실패라는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성공보다는 무수히 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거든. 매 순간 그런 실패를 맞이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때, 자아는 호두 껍데기처럼 단단해지는 거다. 그게 외로움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A급들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존경하기 바란다. A급은 운명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언제나 선두에서 더 많은 맞바람을 맞아가며 길을 터주지. 미답의 경지를 먼저 밟아, 뒤따르는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뒤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명이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A급들 덕분인 셈이지.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 채울 게 있어야 기대가 싹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도 나오는 것이지. 과하면 넘치고, 더한 욕심을 부리고 오만해진단다. 결국에는 추하고 위험해진단다.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A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B급에 머물기 바란다. B급의 겸손함으로 A급 수준의 생각을 해야, 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만족과 감사, 행복을 균형있게 누릴 수 있으니까.
[하루짜리 가출에서 배운 것] '셴파', 가려운 곳을 긁는 고통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급하게 서두르니까 가려움이 고통의 악순환으로 변하게 되는 걸세." 외로움은 기다리는 여유를 갖지 못할 때 오래 긁는 고통처럼 다가온다. 긁을수록 조급해진다. 마음 한 구석이 가려울 때마다 긁지 않고 기다려본다.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 세상에는 납득할 수 없는 모순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한 채, 외형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플러스형이고,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마이너스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먼저이며, 우위에 있더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원한 마이너스도, 영원한 플러스도 없다. 인생은 어떤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피하고만 싶은 선배들을 분석해보면, 하나같이 '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출세하는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는 나중에라동 어떻게든 입증되니까. 마이너스형 인간은 '되고 싶은 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내가 만족하는 내 방식의 삶'이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다. '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따라하기'를 동반한다. 외형에 집착하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되고 싶은 것'을 위한 마지못한 준비의 결과가 '스펙'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하고 싶은 것'은 대개 '내 방식' 대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외형보다 내 마음을 따르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즐거운 준비의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인 경우가 많다.
[넘어지려는 쪽으로 균형잡기] 정말 신기하지 않나. 위험해 보이는 쪽을 선택해 오히려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외롭고 힘이 들 때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아예 그쪽 방향으로 더 들어가보는 것이 어떨까. 자전거가 쏠리는 쪽으로 핸들을 틀어 균형을 바로잡는 것처럼 말이다. 비틀비틀 페달을 밟으면서 외로움과 함께 달리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인지도 모른다.
[4분의 1의 법칙] 처음 4분의 1을 잘 버티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는 것이 4분의 1의 법칙이다. 나 혼자 달리고 있다는 즐거움, 그 자체가 이미 솔리튜드다. 유연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일이 많지 않다.
난 결코 외롭지 않아. 고독이 함께 있으니까.-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나의 고독 Ma Solitude>중에서
[고무줄 자와 강철 자] 어쩌면 나도 엉터리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까 미친 듯이 좋아해서 빠져들었던 일이란 게 없었다. 무엇이든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좋은게 무엇일까. 좋은 건 언제나 유예, 그러니까 뒤로 미뤄놓는 훈련을 받아왔다. 지금 좋다는 건, 어쩐지 불안한 것이니까.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두 개의 자'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첫번째 자는 '강철자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상대르르 잰다. 가차 없다. 두번째 자는 '고무줄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자신을 잰다. 재량껏.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쩔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노의 8할은 과거의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나머지 2할 역시 지금의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무엇인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지나간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겉으로 아무리 성공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해버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걷는다, 솔리튜드] 걸을 때는 대뇌패질의 인지 영역 회로가 긴장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두뇌가 이완되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상태, 즉 텅 빈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유 있는 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는 그런 경이로움을 만날 수 없다. 혼자가 되는 것은 '나'를 만나는 여행의 출발점인 것이다. 혼자가 되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혼자 가야 하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뭔가를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그는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답이 달라진다면, 인생은 나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돌아가면 된다. 그게 아니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보면 되고. 잠깐의 실수나 손해는 나를 찾아가는 길고 긴 평생의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뒤로 돌아서, 걷는다. 솔리튜드.
[홈리스 가족] 하지만 슬퍼진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집 안에서 얼굴 맞대는 게 불편해서 자동차를 몰고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라도 서로의 눈길을 피해야 한다면, 왜 사랑을 하고 가족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어도 외로울 뿐이라면,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외로움의 시스템] 어쩌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국민들인지도 모른다. 정교한 '외로움의 시스템'은 경쟁과 공포를 동력 삼아 돌아간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아니면 되는', 자기밖에 모르는 영혼들이 벌이는 무한 서바이벌 게임. 서바이벌 게임이 외로움의 시스템을 악순환과 동시에 증폭시킨다.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마음은 어차피 남에게 보이지 않으니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마음을 방치할수록 자신의 가치와 존엄은 훼손당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결국엔 스스로를 팽개치게 된다. 잘나가는 남들만 보면서. 나는 한참 힘들던 시기에, 차라리 더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업슨 곳으로 혼자 떠났고, 그곳에서 한층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외로움 속으로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남들은 다'라고 할만한 '남들'마저 없다는 것을. 외로움이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말은, 내가 겪어보니, 진실이었다.
[고상함을 맡아주세요] 수준이 낮다고 가치까지 낮은 것은 아닙니다. 그 고상함으로 평범함을 소외시키지는 말아주세요. 관점의 차이를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평범한 사람들은 소외당하거나 차별당한 자신을 느낄 때 극심한 외로움에 빠져든답니다.
[나를 키워낸 고독]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내게는 눈물겨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생각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솔리튜드 클럽] 사람의 불행 가운데 절반은 스스로와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유익해야 발전한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다가서면 '안전거리'가 위협당하기 시작한다. 관계의 건전성이 흔들리는 것이다.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의존하고, 더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상대에 대한 집착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것이 도를 넘으면 상대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구속하려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인생 선배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예의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전거리'를 지키기 가장 어려운 대상이 가족이다. 솔리튜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을 끊고, 지나친 접근을 막아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품위를 지켜 조용하게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하나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당하지 않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의 솔리튜드를 지켜내기 위해 안전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월든 호수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것일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니가, 이젠 알 것 같았다. 뭐가 진짜 문제였는지. 희미한 두려움일 때는 피하고만 싶었는데, 뚜렷이 드러난 실체를 보니 공연한 걱정에 불과했다. 똑똑하지만, 현명하지는 못해서. 지금 마음에 문제가 있다면, 소로우의 말처럼 '우리가 쫓기듯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이 물을 만나 큰 물을 이루는 것처럼, 사랑은 자연스럽게 만나 그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함께 흘러가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안전거리] 마음속 고통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가 시작된다. 외로움은 대개 '자기억압'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요.
[솔리튜드 클럽] 많은 사람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끔찍한 정신적 고통이다. 하지만 외로움은 관계를 통해 더욱 깊어질 때가 많다. 사람들 사이에 쉼표가 없어 더욱 외롭다. 남들만 보느라 자신을 보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피하면서 살아간다. 그렇게 자아가 방치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내면을 만나는 훈련을 통해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서서히 진화할 수 있다. 마음의 길, 이른바 '소울 로드soul roal'다. 첫 단계는 '부정'이다. 거절 또는 거부를 당하거나 소외되어 좌절한다. 현실을 부정하며 분노와 원망에 빠진다.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과 함께, 누군가가 깜짝 나타나 구원해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 두번째 단계는 '수용'이다.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회피하고 은둔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극심한 소외감과 무기력에 빠진다. 론리니스 안에 머물며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자기부정에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가 비로소 '솔리튜드'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자각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괴로움과 외로움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아픔을 통해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먼저 행복해야 그 행복을 남과 나눌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주관적 관점과 객관성을 통합해 보다 큰 자신으로 도약한다. 작은 슬픔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말하지만, 커다란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넘어가는 과정은 '나만의 성'을 쌓는 것과 유사하다. 굳건하게 '나만의 성'을 쌓는 사람만이 '존재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괴테
[솔리튜드 훈련] 가만있어도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고 좋아해주는 이유. 공감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내보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자신감 있게 보이고, '참견쟁이'로 불릴 정도로 친구들을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힘의 근원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고상한 척하지도 않고 강한 척하지도 않았다. 그냥 물처럼 흐르고 다른 사람들과 섞일 뿐이었다. "외로움은 변화의 용광로일 가능성이 높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길이 갈라질 테니까. 변화는 나 아닌 누군가가 되려고 할 때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되려고 할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 게다. 그러니까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변화가 필요할 때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 자질이기도 하다." "고독한 사람을 내버려둬라. 그 사람은 당신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이다."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평화를 즐기다 보면, 허공에 떠오른 투명한 표지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표지판의 이름이 '지혜'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지혜란 자신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기도 하다.
[고독의 공유] 완벽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를 누리는 데는 핸들 반 바퀴 돌릴 정도의 용기를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연이 연출하는 장관에는 애초에 꾸밈이란 것이 없다. 말없이도 항상 나를 관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상대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관찰, 위로란 바로 그런 것이다." "힘들 때 진심으로 위로해줄 단 한 사람"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서양 명문 학교들이 기숙사 시스템인 이유를 아는가. 정답은 '부모와 떼어놓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부모와 멀어질수록 스스로와 가까우진다는 진리를 말이다. 부모에게서 벗어나야 비로소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남의 기대에 맞춰 살지 말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게 첫번째 불행이고, 엄마를 탓하며 미워하게 되면 그게 두번째 불행이다. 세상에는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다. 때로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사랑은 멀어질수록 깊어진다.
[솔리튜드의 여왕] 그녀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남들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특히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쪽 팔려도 안 죽는다. 그녀는 예술 애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감상이란 본질적으로는 혼자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혼자서도 잘 떠나는 사람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솔리튜드의 방식이다. 나 홀로 여행은 매 순간을 소중하게 자기 안에 담는다. 일행과 함께라면 말 몇 마디로 정리하고 잊힐 감동이, 나 홀로 여행에선 가슴에 고스란히 남아 잊히지 않는다. 망각은커녕 시간이 갈수록 향이 더욱진해지며 좋은 것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추억이며, 콘텐츠다. 또 다른 측면에서 혼자만의 여행은 많이 채우고 포만감을 느끼며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다. 그 반대다. 비우고 작아져서 돌아오는 여행이다. 혼자 떠난 사람들은 여행 과정 내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나 아닌 것들을 비우고 나만 남겨 홀쭉해져서 돌아오는 것이다. 혼자만의 여행을 두 글자로 줄이면 '감동'이다. 감동은 곧 변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마음이 클까? 지구가 클까?" "면적은 지구가 넓지만, 사람 속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니까 전체적으로는 마음이 더 크겠지." "세계 곳곳의 오지까지 돌아본 사람도 자기 마음의 구석구석을 다녀본 사람만큼 성장할 수는 없거든. 그러니까 마음이 더 클 거야." 그녀는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수많은 가능성. 그래서 우리는 질투하거나 억울해하면서 '뭔지 모르지만 해야 할 것'을 충혈된 눈으로 찾는다. 그것이라도 하고 있으면, 혹시라도 불안을 잠깐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토익 공부든, 공무원 시험이든, 자격증 시험이든, 하여튼 그게 무엇이든. "왜 꼭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해보면 안 돼? 뭘 하는 건 그러면서 생각해도 늦지않잖아" 단순함은 자기 생각을 공격하는 '자책 세포'로부터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힘이다. 그런 힘은 솔리튜드의 시간을 통해 단련된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페르소나' "그리스 고대극 배우들이 쓰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이에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하는 데요." 인생에서 '내가 누군 줄 알아?'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자꾸 남에게 던지면 속물이 된다. 페르소나를 나의 본질로 착각하는 것이니까. 반대로 스스로에게 던질수록 자기 본연에 가까워진다.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좋아하는 연예인은 금방 열손가락 이상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잇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내 안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내세우면서도 외로운 것이다. '자기 의미 찾기'는 일종의 투쟁입니다. 자기 의미를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끊임없이 물어보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내가 누군 줄 알아?' 하고 말이다. 답은 그런 물음을 통해 나온다. 세상과 혼자 맞서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자신의 본질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주위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적어도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계속 바뀌며 진화를 거듭한다. 바뀌는 자신이 더 좋게 느껴진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평생에 걸쳐 다듬어갈 뿐이다. "수시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많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불러들이려고요...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의 능력은 공적인 자리를 떠났을 때, 즉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혼자의 시간은 정리와 반성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나'는 세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는 '내가 이미 만난 나', 두번째는 '곁에 있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나', 마지막으로 '만날가봐 두려워서 꼭꼭 숨겨놓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나를 만나게 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성장해서 성숙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된다.
[누군가를 외롭게 했던 죄]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면 같이 있는 사람, 즉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란 원래 외로운 거래" 자기 불안과 외로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끊어내는 것, 그게 바로 자기 복을 차내는 것이었다. 호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한도 없이 요구만 하다가 끝내는 그들이 질려서 도망치게 하는 것. 지금 외로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외롭게 했기 때문이다.
[Let it be] 결혼은 사랑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 자기 문제는 본질적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현명하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다정하고도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요. 상대를 바꾸거나 장악하려 들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을 저질러도 스스로 인식하고 개선할 때까지 기다려줘요. 사랑은 하나가 아닌 둘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해요. 그를 그답게 내버려두세요. 그 사람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것이죠. 인정과 수용은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르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더라도 그냥 두고 지켜보세요. 그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솔리튜드 말이에요. '나를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출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내 한계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은 믿고 내버려둘수록 더욱 풍요로워진다.
[1등이라는 멋진 뿔과 행복이라는 날카로운 이빨] '각자무치' 뿔이 멋진 동물에겐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 상당수의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생이 주는 가장 잔혹한 형벌은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완전히 막아놓는다는 점이다.
[결혼하면, 우리 집 가훈은] 메두사의 은유는 현대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교만에 빠져 남을 우습게 여기면 언젠가 홀로 남겨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들이 피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사람은 제각각 다른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남이 가진 것을 우습게 보면, 일순 위안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내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의 의미를 잃게 된다. 반대로 남이 가진 것을 진심으로 존중하면, 내가 가진 것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 함부로 보지 말자'
['추운 숲'으로] 남들은 나의 실패에 나만큼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실패를 그렇게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달림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의 한계는 어디인지.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이, 바로 나를 아는 것이다. 따라서 도전 또는 발전이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가는 것이다. 공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공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공포를 견디지 못해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래서 탈진하고 쓰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외로움이나 두려움, 불확실성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을 받아들여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내 존재의 의미] '왜 사는가'와 '무슨 의미로 사는가'는 사실 같은 질문이다. 그것은 또한 '무슨 재미로 사는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의미와 재미를 합치면, 그게 바로 행복이니까. 정해진 답, 모두에게 맞는 정답이란 없다. 지금까지 쌓은 콘텐츠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보면, 그 과정에서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것. 대단한 것일 필요는 없다. 지난날들을 떠올리고 곰곰이 반추해보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이란, 죄다 똑똑한 척하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인지도 모르겠다. 남들에겐 뭔가를 열심히 주면서 작은 기대를 수줍게 품는 반면,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엄청난 것을 바란다. 그래서 외로운 것 아닐까. 창조는 광범위하다. 무엇이 됐든 좋아하고 잘하는, 자기만의 뭔가를 창조하며 사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의미가 아닐까.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 나만을 위한 창조는 '가장 즐거운 자기 치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 존재의 이유를 나 스스로에게서 찾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외롭다면, 눈앞의 외로움부터 마주 보기 바란다. 커다란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의 과거를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패와 고통, 가난, 병마, 거절, 이별, 쓰라린 상처......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힘은 그런 고생담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친구, 너에게는 이제 좋은 일만 남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충분히 고생했으니까.
[클리나멘의 순간, 버려졌다는 느낌]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꽃은 이미 그 자체로 곷이거든.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는 건 그다음이야. 꽃은 그 누군가가 알아주기 전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꽃이 그걸 인식한다면 더욱 당당하게 아름다울 수 있을 텐데" "다음에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에야 사랑을 해" 사랑이 돌변하면 상대를 베는 칼이 된다. 어떻게 상처 받지 않는 이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절대 고독의 품 안에 안기면 눈과 귀가 꽃잎처럼 열려 짐승들과 바람과 바다의 언어를 알아듣게 된다네. 오늘처럼 내 마음에 태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바다가 내게 와서 나 대신 울어주기도 한다네 - 추사 김정희, <제주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혼자서도 감동을 끌어내는 능력]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도 무한한 변화 가능성과 다양성을 찾아낼 줄 아는 열린 마음, 안목과 상상력, 혼자서도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솔리튜드였다.
[잘난 남자들의 숙명]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만, 키 크고 잘생기고 심지어 공부까지 잘한 남자의 여자는 거의가 비슷하단다. '무서운 여자'라는 거지. 신은 언제나 공평하단다. 다 주는 법이 없으니까. 현실은 드라마와 반대라고 보면 돼. 얼굴로 볼 수 있는 건 여자의 일부에 불과해. 진짜는 마음속에 있거든. 잘나나 사람일수록 승부 근성이 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집요해. 킹카를 얻는 여자들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대가가 있어. 바로 '불안과 상실감'이야. 잘난 남자는 어디서든 환영받지. 많은 여자의 시선과 유혹은 당연하고. 그런데 잘난 남자가 사교적이기까지 해서 활동 범위가 넓다면, 그 남자의 여자는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믿고 내버려둔 채 안심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해받지 못해 더욱 외로운 여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야. 그러니까 완벽해 보이는 친구들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어. 완벽이라는 건, 절대 인간의 영역이 아니거든.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말이지. '남자 팔자야말로 뒤웅박 팔자'라고 생각해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볼품없던 남자가 우뚝 서서 뻗어나가기도 하고, 승승장구하던 남자가 비루먹은 개처럼 초라해지기도 하니까. 불운을 뒤집으면 그게 행운이라는 말이 있어.
[먼저 갈게]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 그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밝은 표정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건강한 자존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었다. 최근 학자들은 여성간의 적대감을 분석한 결과, 사랑받지 못하고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성일수록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솔리튜드 클럽-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외로움이 그들의 '깊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굳이 위대한 성취를 바라지 않도라도, 외로움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이따금 '심리적 고아 상태'에 놓여볼 필요가 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사람은 절망 속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배운다. 외로움 속에 머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닮으려고 하지 않으면, 언제나 자기 본질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래서 그들은 빛이 한 줌도 없는 캄캄한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삽질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혼의 깊이가 자발적 외로움의 깊이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미소 짓는다. 그런 깨달음 자체가 이미 성취이며 커다란 보상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그냥 가게 하라] 인생을 구분하자. 아이 인생은 아이의 것이다. 자기 인생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아이 인생을 좌우하려 하는가. 부모 역할은 조언까지다. 조언은 하되, 결정은 아이 스스로 하게 하자. 헌신과 투자를 구분하자. 헌신은 투자와 달리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제대로 헌신하자. 헌신은 아름다운 것이며, 최고 수준의 사랑이다. '삶의 의미'라는 것은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의존이 심하면 중독이 된다. 관계의 중독은 상대를 구속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옭아맨다.
[유언의 수수께끼] '즐거워하면서 너의 길을 구준히 가라.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여기서는 싸가지] 마음을 한 걸음만 옆으로 옮기면 거기 새로운 세상이 있다니까. 선택의 기회는 매일 수시로 주어지는 거야. 사람들을 탓할 필요가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된들, 이제 와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누군가의 시술도, 뒤집으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포기하는 대가는 자유였다. 결심했다. 이제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살 거야.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 침범하려 할 때마다 뚜렷하게 선을 그어서 못 들어오게 할 거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였다. 그녀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의 발전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명백한 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의 '이기적'이란 말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이기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상대방만 겨냥하니가 말이다. "뭐 어때? '여기서는 싸가지' 하면 되지"
[그런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공감할 줄 아는 능력. 그게 어른의 사랑 방식이었다. 이해해주고 져주고 기다려주는. 사랑이란, 같은 곳을 향해 나란히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 각자의 길을 가다가 만나서 함께 쉬고, 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대가 바로 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완벽한 삶을 꿈꾸지 마세요. 각자의 길을 가는 솔리튜드 연습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더욱 사랑할 수 있어요. 아쉽기 때문에 더 아껴줄 수 있으니까요. 당신을 알아줄 여유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평생 동안 단 한명이라도 만났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의 추위를 알아줄 테니까.
[솔리튜드 클럽-위대한 왕따] 4대 성인의 공통점은 당시 사회의 아웃사이더 였다는 것이다. 석가와 소트라테스 역시 그 당시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아웃사이더는 오랜 전통의 외로운 인간 유형이다.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외로움과 결핍을 창조로 연결시켜낸 외톨이가 유난히 많다. 외로움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위대한 창조는 곧, '외로움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위대하나 창조자들이 창조를 위해 치르는 대가는 '혹독한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위대함에 이르는 첫걸음이다. 오늘 하루가 고통스러웠다면, 나만의 위대한 창조의 발원지에 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의미다.
[가르치다가 배운 것] 앞날이 까마득해도 일단은 걸어가는 게 용기 그러다가 너무 아득해서 기가 질릴 때는 옆을 보면 된다. '사람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울 때 오히려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더 힘든 사람들을 기꺼이 도우러 나서는 거였다.
[행복과목개설청원위원해] 행복은 우연히 시작된다. 외로움은 일종의 수행이다. 외로움이 감각을 단련시켜준다. 뼈저리게 외로워봐야 사람 귀한 줄 알게 된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솔리튜드는 더 많은 것을 풍부하게 보고 느낀다. 솔리튜드란, 더욱 풍요로운 세상을 만나는 '관점'같은 것이다. 또한 통념과 강박으로부터의 '자유'같은 것이기도 한다. 마음의 부자들에게 행복이란 목표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나'라는 잣대가 확고해야, 내가 좋아하는지 알 수 있고, 만족하며 행복한지 판단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하거나 그것에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진심으로 격려 또는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한 손을 계속 비워놓을 수 있는지 자신한테 물어보는 거야. 결핌을 받아 들여야 인생이 발전이 있다고 해.
[남자들이 모르는 모계유전] "보세요. 어둠 속에 혼자밖에 없다고 느낄 때는 온통 절망뿐이죠.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별은 그렇게 어두워야만 제대로 보이거든요."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아무리 아픈 마음의 상처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알아주는 힘]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인생에 걸쳐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정해준다는 것은 능력이나 조건, 외형 등에 대한 거예요. 또한 상대가 원할 때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지요." "알아준다는 건 능력이나 조건, 외형 같은 것을 넘어서는 의미라고 봐요. 존재 그 자체, 그러니가 잘났거나 못났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뜻이거든요." 혼자서도 마음을 추안하게 채움으로써 '온전한 나'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나. 스스로를 책임질 줄 아는 나. 외로운 사람을 돕는 최선은 '알아주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깊은 절망에 빠졌더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음을 확인할 때,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는 탄력을 발휘한다. 이해하는 것은 곧 '마음을 연 경청'이며, 위로는 '진심 어린 관찰'이라는 것이었다. 알아주기를 기대하기보다 먼저 알아주는 사랑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뻗어나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시작이 건강한 관계의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준다. 사랑이란 평생에 걸쳐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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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 맘에 들어서 선택한 책.
정말 읽히기도 잘 읽히거니와, 뻔한 얘기 같지만 홀로서기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책.